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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엘리트보다 평범한 대중이 더 현명하다"

<화제의 신간> "독립성.다양성.통합메커니즘 없이는 위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보통사람들의 상식은 거의 도움이 안 된다."

독설적인 비평으로 유명한 미국의 평론가 H.L 멘켄이 한 이 말은 이제 통념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요커>의 논설위원이자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영 칼럼니스트 제임스 서로위키는 근저 <대중의 지혜>(제임스 서로위키 지음.랜덤하우스 중앙 간)에서 "멘켄의 유명한 이 말은 틀렸다"고 정면반박하고 있다.

***집단의 놀라운 지적 능력. '대중의 지혜'**

서로위키는 "문제해결 방안을 찾거나 혁신을 추진하거나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특히 미래를 예측할 때 소수 엘리트보다 평범한 대중이 더 현명하다"면서 "이제까지의 통념이나 상식에 반하는 주장 같지만 이는 기업 운영, 학문 연구, 경제 시스템,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최고 엘리트들의 집합소라는 미항공우주국(NASA)이 치명적인 의사결정 실패로 우주에서 콜롬비아호를 폭발시킨 사례, 또 9.11 테러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미중앙정보국(CIA)의 무능력 등을 제시한다.

물론 저자는 대중이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는 경우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우는 자신의 이해가 별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분야에 참여할 때라는 것이다.

저자는 집단을 경멸하는 시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구스타프 르봉의 1895년 작 <대중: 대중의 지성에 관한 사례연구>를 소개했다. 르봉은 이 저서에서 "집단은 단순한 구성원들의 모임을 넘어선 일종의 독립된 유기체로서 고유한 정체성과 의지가 있으며, 구성원들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면서 "대중은 언제나 어리석게 행동한다. 집단은 용감할 수도, 비겁할 수도, 잔인할 수도 있지만 현명하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르봉도 "만일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모아서 공익에 관련된 사안을 결정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집단의 결정이 개개인의 결정보다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며 "개개인이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많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대중의 지혜를 일부 시인했다.

서로위키는 대중을 가장 혹평한 르봉조차 다양성과 독립성이 부여될 경우 대중의 지혜를 인정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대중의 지혜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 효과가 우리 주위 모든 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가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대중의 지혜'라고 명명한 집단의 지적능력이 작동하는 원리는 개별적 지능의 합이 아니다.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정보가 부족한 현실에서 각자의 불완전한 판단이 적절한 방법으로 합쳐질 경우 특정 구성원의 것이 아닌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이 수십억개의 웹페이지를 검색해서 우리가 찾는 정확한 정보가 담긴 한 페이지를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지난 15년간 아이오아 전자시장에 모여든 아마추어 거래자들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보다 선거 예측을 더 잘해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의 지혜'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

저자는 '대중의 지혜'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를 우선 소개한다. 수준이 전혀 다른 문제같지만 집단적 지적능력은 간단한 문제와 복잡한 문제에 대해 동일한 원리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간단한 문제 사례. 1884년 런던 국제박람회장 한 켠에서 도살돼 손질된 소의 무게 맞추기 내기가 벌어졌다. 영국의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튼이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했다. 소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8백명이 참가한 이 내기가 끝난 후 골튼은 모든 참가자가 써낸 추정치의 평균값을 구한 결과 1천1백97파운드였다. 실제 소의 무게를 측정한 결과 1천1백98파운드였다.

복잡한 문제 사례. 1968년 미국 잠수할 스콜피온이 본토 귀환 중 사라졌다.해군장교 존 크레이븐은 수학자.잠수함 전문가, 인양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그는 팀원들이 서로 상의해서 한 가지 최선의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스콜피온의 실종에 관한 가장 그럴싸한 시나리오를 각자 따로따로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답변을 모두 모아서 베이즈 정리라는 통계공식으로 분석했다. 베이즈 정리란 어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나왔을 때 사건 발생 확률이 얼마나 변하는지 계산하는 방식이다. 크레이븐은 팀원들에게 질문하고 대답한 수치를 입력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진 후 다시 수치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반영해서 최종 수치를 얻어냈다.

이렇게 해서 크레이븐이 찾아낸 지점은 팀원 개개인의 대답과는 다른 지점이었다. 잠수함의 최종 위치는 집단 전체의 선택이었다. 스콜피온이 실종된지 5개월후 해군함정이 잠수함을 찾아냈다. 위치는 크레이븐의 팀이 지목한 곳에서 불과 2백미터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저자는 "이 사례에서 놀라운 점은 전체 집단이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증거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현명한 집단결정에는 독립성.다양성.분산화 필요"**

그러나 저자는 독립성과 다양성이 결여될 때 집단적 사고가 위험에 빠지는 경우들도 빼놓지 않는다.

우선 저자는 "동질적인 집단, 특히 작은 집단은 종종 심리학자 어빙 제니스가 '집단사고'라고 부르는 현상의 덫에 걸려든다"고 지적한다. 동질설이 강한 집단은 다양한 집단에 비해 더 쉽게 결집하며, 응집력이 높아질수록 외부 의견과 고립되고 집단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니스의 연구에 따르면 피그만 침공의 경우 케네디 정부는 작전 계획을 수립한 사람들에게 계획의 성공 여부를 물었을 뿐 성공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과는 전혀 논의를 하지 않은 채 밀어붙였다.

2003년 우주왕복선 콜롬비아 호가 28번째 비행을 마치고 귀환하다가 공중폭발된 사고도 소집단의 결정의 실패 사례다.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한 조직 문화와 만장일치를 강요한 팀운영, 그리고 심리학에서 '확신오류(고정관념에 따라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주왕복선 이륙후 공기층을 뚫고 나가면서 떨어져 나간 외부 연료탱크의 발포 단열재가 우주선 왼쪽 날개를 강타해 구멍을 내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충돌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낸 화면이 없어 기체가 어느 정도 손상을 입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파편조사반은 제한적이나마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통해 우선 그 파편의 크기는 얼마나되고 콜롬비아호에 부딪힐 때 속도는 얼마나 되었는지 계산해 본 후, 클레이터라는 알고리즘을 사용해서 파편의 크기와 속도로 미루어 볼 때 발포단열재 속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갔는지 예측해 보았다.

파편조사반은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지만 분명히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담당 비행관리팀은 이미 충돌사고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콜롬비아 호 사고조사위원회가 모은 증거를 종합하면 당시 비행관리팀이 조금만 다른 조치를 취했다면 콜롬비아 호 승무원들이 생존했을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결정이 동시에 이뤄지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뤄질 때도 문제가 시작된다. 몇 사람이 잘못된 정보를 믿고 결정하고 난 뒤 이러한 정보가 순차적으로 파급되면서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가는 '정보연쇄파급효과'라는 현상이다.

***미국이 국가정보국장직 신설한 이유**

반면 저자는 다양성과 독립성 그리고 분산화가 결합됐을 때 대중의 지혜가 발휘하는 위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리눅스를 꼽았다.

1991년 노르웨이 해커 리누스 노발즈는 유닉스를 변형한 운영체제를 만들고 리눅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직접 작성한 소스코드를 대중에 공개하고 "당신이 제작한 코드가 있으면 저도 보고 싶습니다. 그 부분을 시스템에 첨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는 메모를 붙였다.

리눅스의 역사에 따르면 리눅스를 처음으로 다운로드 받은 열 명 가운데 다섯 명이 버그 수정사항과 코드 개선사항, 그리고 새로운 특징을 첨가해서 다시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개선 과정이 제도화되어 대가없이 일하는 프로그래머 수천 명이 운영체제의 크고 작은 부분을 수정하는 데 공헌하여 리눅스를 더욱 짜임새 있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 방법은 놀랄 만큼 효과적이었고 리눅스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유일한 도전자로 만들어 놓았다.

저자는 여기서 9.11테러를 예측하지 못한 미국의 정보기구 체계가 지나친 분산화의 폐혜라는 점과의 모순을 설명했다. 분산화에는 통합메커니즘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리눅스에서는 리누스 토발즈 등 소수의 프로그래머가 이 기능을 담당한다. 시장에서는 가격이 통합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기구 체계가 분산화만 되어있고 통합메커니즘이 부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의회는 "다양한 정보기관 사이에 '정보의 공유'가 부족했다"면서 "각 기관은 미국이 직면한 위협을 큰 틀에서 보지 못하고 수많은 자잘한 틀로만 분석하고 있었다"고 결론짓고, 지난해말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안보국(NSA) 등 15개 정보기관들을 총괄 조정하는 국가정보국장(DNI)직을 신설하는 정보기관개혁법안을 통과시키고 조지 W.부시 대통령의 초대 국장 임명만 남겨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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