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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벗으라면 벗어야 하나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전교조 '명단 공개'와 학부모의 '알 권리'

지난 주말, 한국방송(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출연했습니다. 주제는 교원단체 명단 공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게시판에 시청 소감과 댓글이 1000여 개가 달릴 정도로, 매우 뜨거운 토론이었습니다.

최근 교원단체,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 공개 논란이 거셉니다. 지난 19일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22만여 명의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에 가입한 교사 명단을 공개한 이후,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명단 22만여 명 중 16만여 명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원이고, 6만여 명은 전교조 조합원, 그밖에도 한국교원노동조합·자유교원연합·대한민국교원조합 소속 1000여 명의 명단이 공개됐습니다.

타깃은 물론 전교조입니다. 조전혁 의원의 명단 공개에 앞서, 지난해 말 보수 성향 시민단체의 연합인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이 직접 조사한 전교조 교사 4950여 명의 재직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정보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공개하는 쪽의 의도에 따라 변형될 우려가 큽니다. 이번 교원단체 명단 공개는 정보 인권의 수준을 크게 낮추는 것이면서, 동시에 교육계의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조전혁 의원이 명단 공개를 강행하기 불과 4일 전, 서울남부지법은 "교사 및 노조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명단 공개 금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평소 '전교조 저격수'를 자처하며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책까지 펴낸 사람이라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법원의 결정조차 무시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입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한도에서 소신을 펴나가야겠지요.

정보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공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정보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할 것이고, 외부 공개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엄격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조전혁 의원실

조전혁 의원은 명단 공개의 명분으로 '학부모의 알 권리'를 주장합니다. 학부모 알 권리는 어디까지일까요?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1000원 짜리 상품을 구매할 때도 정보를 알아야 골라 사는데, '교육 수요자'로서 당연히 교사에 관련한 정보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교사가 어떤 성향의 교원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지, 그 활동이 떳떳하다면 당당하게 회원 명단과 활동 내용을 알리고 교육 소비자의 평가와 선택을 받는 것이 옳다"고도 주장합니다.

교육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전교조 명단이 공개되면 전교조 활동 역시 위축될 것이라는 속내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명단 공개에 반대하는 학부모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 학부모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교사가 어느 단체 소속인가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학부모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가 일차적"이라며 "명단 공개와 학부모의 알 권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학부모가 알아야 할 '대상'과 알아야 할 '정보의 범위'도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한다는 지적입니다. 대체로 학부모들에겐 자녀의 성적과, 학교의 대학 입학률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학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이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받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꽃피우면서 상호 신뢰하고 협동하는 교육을 원합니다.

학부모의 참여를 제한하고 오로지 성적 경쟁, 입시 경쟁만 부추기는 정보에서 벗어나는 것을 '학부모의 의식 개혁'이라며 현 정부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명단 공개는 이율배반적입니다.

학부모의 소망은 자녀가 좀 더 좋은 환경, 좋은 교사, 좋은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칙없이 모든 정보를 '학부모의 알 권리'를 내세워 공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학부모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학부모가 알아야 할 '대상'과 알아야 할 '정보의 범위'도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합니다." ⓒ프레시안(선명수)
남이 벗으라면 벗어야 하나요? 예컨대 소위 '몸짱'이 있는데, 우리가 그 벗은 몸을 보고 싶다고 해서 벗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벗고 싶을 때 벗을 수 있는 것처럼, 교원단체 명단 공개는 그 당사자들이 공개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공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설령 때로 사이비 종교단체가 문제가 되어도, 국가는 개인의 사상과 종교의 자유를 들어 그
자유를 보장할 뿐, 명단 공개를 요구하진 않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종교를 배경으로 불법을 저질렀을 때야만 비로소 처벌을 합니다. 처벌을 한다고 해도, 교인 명단 공개를 요구하진 않습니다. 모든 이들의 인권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전교조 명단을 공개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은 "우리 교육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 중 하나가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편향적인 교육을 해오고, 또 이들 때문에 사교육이 팽배해졌기 때문에, 학부모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어느 교사가 전교조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국 교육이 늪에 빠진 이유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는 정부와 교총, 전교조 등이 다 함께 책임질 문제이지 전교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 교육의 위기와 교원단체 명단 공개는 분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원단체 명단이 공개된다고 해서, 한국 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원 정보 공개로 한국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고 초점을 흐리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인 것이고, 이를 이용해 국회의원 개인의 이름을 알리거나 선거에 활용하는 것은 더욱 '정치적인' 것입니다.

혹자는 전교조의 '이념 교육'을 말합니다. 솔직히 작금의 교육 갈등은 전교조 역시 적지 않은 책임을 져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전교조 창립 20년, 그래도 초기 10년 동안은 한국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점에서 '참교육'을 열망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참교육'에서도 '입시 교육'에서도 멀어졌습니다. 학부모의 마음이 떠난 이유입니다. 이것을 전교조를 공격하는 정치 탓으로 모두 돌리기에는 솔직히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이렇게 불법적인 국회의원의 활동에 대해 적극 반대하지 못하고 관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교원단체의 활동과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사이의 논란이 거셉니다. 일제고사, 입시 제도, 학교 정보 공개 등 교육에 대한 철학이 정권에 따라 급격하게 바뀔 경우, 교사들은 그 영향이 교육 현장에 미칠 것을 우려해 자신의 견해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 집단이 이념적, 정치적이라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명단 공개의 파장이 큽니다. 벌써부터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우리 학교에 교총이 OO명, 전교조가 OO명인데, 좋은 학교인가요?"라는 어린 학생의 질문이 떴고, 학부모들 역시 학교 선택에 있어서 '전교조 숫자'에 대한 고려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의 교원단체 가입 여부를 놓고 교육의 질을 따지게 된다면, 교사들의 자기 검열이 늘어나고 소신 있고 자유롭게 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훼손된다는 점입니다.

▲ "전교조 명단 공개로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의 교원단체 가입 여부를 놓고 교육의 질을 따지게 된다면, 오히려 교사들의 자기 검열이 늘어나고 소신 있고 자유롭게 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훼손됩니다." ⓒ연합뉴스

'학부모의 알 권리' 차원에서 요즘 학교 정보 공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학교알리미' 사이트(www.schoolinfo.go.kr)는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의 일환으로 개설됐습니다. 2008년 말 개통된 후, 각 학교의 정보를 미리 공시함으로써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고 합니다. 내용도 다양합니다. 교육 과정 편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 학교 시설, 학생과 교원의 현황, 학교 회계 예결산, 학교 발전 기금, 급식 실시 현항, 학교 폭력 발생 및 처리 현황, 졸업생의 진로 현황 등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학부모의 관심은 온통 수능 점수 및 대학 진학률에 쏠려 있습니다. 정보 공개가 확대되면서 정부의 의도대로 학교 간 경쟁이 유발되고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학부모의 알 권리가 고작 이렇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학부모의 알 권리를 명분으로 교원단체 소속 교사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옳지 못할뿐더러, 불필요한 갈등만 낳게 될 것입니다. 정보 공개가 입시 경쟁을 완화하지도 않습니다. 정보 공개의 이유, 규모, 절차 등에 대해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은 학부모의 알 권리를 명분으로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챙길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시간에 한국 교육 정상화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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