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교착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잇따른 권유에도 불구하고 4차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동안 북한과 유지해온 북미간 직접대화 통로인 '뉴욕채널'을 닫아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면서 조지 W. 부시 미대통령과 노무현대통령 등은 중국에게 보다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이 과연 '믿을만한 중재자'인가라는 점이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가 6일 본지에 한편의 의미심장한 글을 기고해왔다. 글의 제목은 '중국, 과연 정직한 중재자인가'. 6자회담 과정에 중국의 역할을 근원적으로 재고해야 한다는 상당히 충격적 내용의 글이었다. 장 대표는 김대중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을 거치며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북, 대미, 대중, 대일 고위급 커넥션을 확보했고 현재도 그 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몇몇 안되는 동북아전문가중 하나로, 이번 글 또한 최근 이같은 라인과의 접촉결과 도달한 결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6자회담 참여를 거부하는 등 최근의 심상치 않은 상황을 볼 때 부시 2기 행정부를 맞아 새로운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 다시 되었다고 판단한다"며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미국을 요리해 나가면서 북핵문제를 풀어 나가는 비전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이같은 글을 보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어 "아무래도 중국이 너무 즐기고만 있고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미-중 두개 국가들 가운데 한 나라의 속국이 되거나 아니면 보호령의 위치로 전락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판을 다시 틀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고 재차 작금의 상황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그는 이번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 미국-북한 라인과 두루 접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같은 연쇄접촉 결과 도달한 결론은 북한도, 미국도 중국을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컨대 중국이 북핵문제의 중재자라기보다는, 북핵을 계기로 자신의 패권을 극대화하려는 이중전술을 구가하며 도리어 북핵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북한과 미국 모두가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는 이에 우리도 중국을 북핵 평화해법의 더없는 '중재자'로 여기며 중국만 바라보는 방관자적 자세에서 벗어나 중국의 속내를 정확히 간파하고 경계하며, 필요하다면 '민족의 관점'에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북핵해법의 틀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장 대표가 보내온 글의 전문이다. 편집자주
***중국, 과연 '정직한 중재자'인가?**
미소 냉전의 대결 속에서 닉슨이 구상하고 레이건이 완성한 '신(新) 대소봉쇄정책'은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악의 제국"으로 명명된 구소련은 미국과의 힘의 대결에서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국가 자체가 해체되었다. 미국이 '붉은 러시아'의 위협적 팽창정책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대소봉쇄의 지렛대(leverage)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일정 정도 인정해 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오늘날 이 지역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비해 훨씬 큰 영향력을 갖게 된 원인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그런 미국이 다시 30년만에 '중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봉쇄의 대상과 목표가 구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에서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 확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국제정치의 단층선(fault line)도 냉전의 '반공'에서 테러전의 '반테러'로 바뀌었다. 문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년만에 다시 꺼내든 중국카드가 과연 이번에도 유용하게 작동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이다.
이는 지난 2년간 6자회담의 진행과 중국의 중재과정을 관찰한 결과 내린 필자 나름의 결론이다. 물론 그동안 중국의 중재자 역할은 북미간의 대결과 전쟁을 완충시켜 왔고, 북한을 6자회담이란 대화의 틀로 유도해 내어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해 왔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앞으로도 북-미간 긴장과 대립이 고조될 때 이를 완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행위자 역시 중국이란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북-미간 긴장과 대립을 막는 수준을 넘어서서, 과연 북핵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2년이 지난 오늘, 미국과 북한은 중국을 '정직한 중재자'로 보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을 불신하는 4가지 이유**
먼저 북한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첫째, 북한은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라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부터 중국의 '중재'는 미국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서만 압력을 행사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둘째, 북한은 핵 문제가 북미간의 직접 담판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중재는 오히려 북미간 직접대화를 피하려는 미국의 입장만 세워주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의 중재자 역할은 북미간의 직접대화를 유도하는 경우에만 북한에게 인정될 수 있다.
셋째, 미국이 중국을 중재자로 선택한 것은 북핵문제를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을 활용하여 핵포기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라고 북한은 보고 있다. 북한은 탈냉전 이후 미국의 10년 봉쇄를 "고난의 행군"으로 이겨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북한을 압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북한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넷째, 북한은 중국의 관심이 핵문제 해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중관계를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에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과 "다자주의적 이미지"를 분식시키며, 더 나아가 자국의 경제발전과 양안관계(중국-대만관계)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계산에서 핵문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 동안 북한은 북-중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은 북한을 경제발전과 대만통일에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북한 역시 중국의 이러한 태도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미국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대만통일의 기회를 놓친 것을 점점 더 크게 후회하고 있고, 북한 역시 이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은 대만문제 때문에라도 중국의 중재역할이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대만과의 통일을 위해 북한을 대미전략에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불신하는 6가지 이유**
다음으로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자.
첫째, 미국은 중국이 9.11테러와 북한 핵문제를 미-중간의 관계발전과 자국의 내적통합을 위한 하나의 도구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지, 미국과 위기감을 깊이 공유하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어떤 측면에서는 중국은 북한 핵개발이 가져올 위협보다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더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둘째,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미국의 대북한 선제공격시 자국의 전쟁 참여 여부를 둘러싼 딜레마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전쟁이 몰고 올 동북아의 불안정이 자국의 경제발전에 장애가 되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셋째,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북한 핵개발을 쉽게 중단시킬 수 있음에도 대북한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영향력만 북한에 행사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중국은 북한 핵문제가 빨리 해결될 경우, 한반도에서 자국이 차지하고 있는 전통적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여 북-미수교의 길로 들어선다면 북한과 서구국가들과의 외교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고, 이 경우 중국은 자신만의 특수한 한반도 영향력을 상실하고 단지 여러 수교국들 중 하나로만 그 역할이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 중재를 구실로 오히려 핵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중국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빨리 종결지으면 지을수록 주적을 알카에다에서 다시 중국으로 전환시킬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북핵을 포함한 반테러전쟁이 장기화되길 바라고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여섯째, 미국은 중국이 북핵문제를 대만문제와 연계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핵 중재의 대가로 대만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쪽에 서서 대만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꼭 멀어진 그 거리만큼 중국은 북한으로부터 멀어져 미국쪽으로 기운다. 미국이 대만은 민주국가라서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 중국 또한 북한은 자주국가라서 자신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대만의 맞교환을 원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대만을 양보하지 않는 한, 중국 역시 북한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중국의 독특한 입장 때문에 그 중재역할은 핵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대만과의 통일 문제가 빨리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과연 북한 핵문제가 빨리 풀리길 원하겠는가 하는 점도 전략적 사고를 요하는 부분이다. 대만과의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미국은 중국의 코밑까지 진출하여 대중국 포위전략은 그 만큼 빨라진다는 사실을 중국이 모를까? 반면 북핵문제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남게 된다.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것이 중국의 국익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인가는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후진타오라는 제4세대가 중국의 지도부로 등극한 이래 북한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차후(김정일체제 붕괴후) 들어설 북한 정권이 친중적일 것이란 전제하에 미-중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미국이 대만문제를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조건만으로도 김정일 체제변화를 바라는 미국의 입장에 중국이 동의해 주지 않을까 하는 북측의 의구심이다.
***필요하다면 중국 배제할 수도...**
이럴 경우, 분명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략적 잇점을 얻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만일 중국의 중재자 역할이 객관적으로 지속되려면, 그 기능은 다음과 같이 재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북미간의 상호 입장을 상대국에 각각 전달하는 지금까지의 단순한 메신저 역할을 넘어서서, 6자회담틀 내에서 북-미간 직접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외교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북-미 양측의 직접대화를 통해 북한의 체제보장과 핵포기의 동시이행을 촉구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든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엔 반대한다는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입장을 천명한 다음에야, 북한에 대한 핵 개발포기 압력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중국의 중재자 역할은 더 이상 그 기능이 객관적으로 유효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북-미간 직접 담판을 통해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려는 시간을 지연시킬 뿐이다. 이미 북한과 미국은 중국의 중재자역할의 한계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북-미간 뉴욕접촉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와 북-미간 미사일 및 생화학무기 폐기 협상 시작을 전제로, 북한에 국교수립, 화력발전소 제공, 경제제재 해제 등의 포괄적 대북지원의 약속을 담은 "대담한 제안(bold approach)을 상호간 타진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시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팀들이 네오콘들로 모두 채워지고,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당분간 미루는 대결이 예시된 상황에서는 중국의 중재카드가 완충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대화에 의한 핵문제 타결'을 전제한 상황에서는 그 유용성에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핵문제 타결이후 북-미간의 관계가 진전되어 간다면, 이는 유라시아 대륙을 향한 미국의 전략이 중국의 국가전략과는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이 6자회담틀을 자신들의 핵무장 해체를 위한 압력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 6자회담이 과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대화 카드인가에 대해서도 재고해 봐야 할 것이다. 6자회담틀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화수단이 되려면, 6자회담틀 내에서 북-미간 직접담판을 짓는 길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역할은 중국의 몫이어야 한다. 이것만이 중국의 중재역할도 살리고 6자회담틀도 지속시키면서 북핵문제를 타결 지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틀이 대화에 기초한 다자적 협력보다는 대결을 전제한 미국의 일방주의 대행기구로만 작동되고, 여기에 중국까지 중재자 역할을 자국의 외교적 실리추구의 수단으로 계속 활용한다면, 6자회담 틀내에서 북핵타결을 기대하기란 연목구어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중재자 역할을 중국에서 UN이나 EU로 바꾸는 것이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 前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저서 <부시행정부의 한반도리포트>(2001, 김영사), <9.11이후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2002, 김영사),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2004, 나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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