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무분별한 골목 상권 침투를 막기 위한 법안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대형 유통기업들이 가맹 SSM 등으로 사업조정을 피해가는 것은 당장 막을 수 있게 됐지만 영업품목 제한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22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에 합의하고 23일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지경위에서 합의된 상생법에는 가맹 방식의 SSM을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지난해 말부터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기업들이 가맹 SSM으로 사업조정을 피하려던 계획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중소상인들은 그동안 가맹 SSM의 약관상 대기업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 왔다.
신규철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전국 47개 지역에서 사업조정이 걸린 홈플러스는 이들 점포에 대해 가맹점주 모집공고를 냈던 상태"라며 "당장 이들의 진출을 막아냈다는 사실 자체는 유의미하게 평가한다. 일단 전반적으로는 60점"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SSM 입점 제한 범위, 정부 주장 수용
하지만 지경위는 SSM과 중소상인들과의 경쟁 환경을 대등하게 하는 영업품목 및 영업시간 제한 등은 상생법과 유통법 개정안에서 모두 제외해 사실상 정부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날 합의된 유통법 개정안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SSM의 등록 제한 범위는 전통시장과 전국 39개 전통상점가의 경계에서 반경 500미터 이내로 정해졌다. 전통시장이 아닌 상점가는 대형마트와 SSM에 그대로 노출된 셈으로 그간 지식경제부가 '강화된 등록제'라며 주장해온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가맹 SSM으로 범위가 조금 넓혀졌을 뿐, 중소상인들은 사업조정 제도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각 지자체에서 중소기업청으로 사업조정이 이관된 후 나온 강제조정 결과는 대부분 대형 유통기업 측 손을 들어줬다. 특히 서울에서 처음으로 강제조정이 내려진 가락동 롯데슈퍼의 경우 담배·쓰레기봉투 등 일부 품목의 판매 제한에 그쳐 인근 상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중소기업단체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에 부산시가 중기청에 전달한 사업조정 의견은 영업품목과 영업시간 규제 등 적극적인 규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서울시의 태도가 더욱 상인들의 분노를 샀다"며 "최근 서울시가 이를 의식해 재조정에 들어갈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앞으로도 사업조정 과정에서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합의된 두 개정안은 WTO 서비스협정 양허안에 없는 육류·제과·유제품 등의 영업품목을 제한하는 내용 역시 포함하지 않았다. SSM 규제에 가장 거세게 반대했던 외교통상부는 지난 1996년 유통시장 개방으로 영업품목에 대한 규제는 WTO 규정에 위반된다고 밝혀왔지만 양허안에 포함되지 않는 품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아 왔다.
이에 관련해 조승수 의원은 21일 "총리실에서 '영업품목 제한은 도하개발아젠다(DDA)나 자유무역협정(FTA) 통과 시에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밝혔다"며 "이는 영업품목 제한이 WTO 위반이라며 도입을 거부해왔던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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