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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제국'도 부쉈는데 '악의 축' 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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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제국'도 부쉈는데 '악의 축' 쯤이야"

[기고] 마지막 '냉전해체자' 되고픈 콘디의 야망과 한반도

***"냉전해체자', 콘디의 대북핵정책**

콘돌리자 라이스. 그녀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다.

부시 현 대통령은 그녀를 '콘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부시 대통령의 신임이 듬뿍 묻어 있는 애칭이다.

***"워싱턴의 흑진주"**

그러나 그녀의 이름 콘돌리자라는 말은 원래 이태리 말이다. 그것도 단순한 이태리 용어가 아니라 음악 용어이다. 콘돌리자라는 용어는 음악적으로는 '안단테'라는 뜻의 "느리게"라는 말보다는 조금 빠른 의미를 갖고 있고 '모데라토'라는 뜻의 말보다는 조금 느리게 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음악적 용어다. 이를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 조금 느리면서도 부드럽게"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태리 음악적 용어인 것이다.

콘돌리자는 원래 음악을 좋아했다. 그것도 가창력을 자랑하는 음성을 기반으로 한 악성의 음악이 아니라 악기를 다루는 데 있어서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가졌던 기악의 음악적 재능이었다. 그 재능은 바로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는 예술적 감각이었다. 이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기 보다는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체득된 것임에 틀림없다.

원래 콘돌리자의 집안과 성장배경을 얘기한다면 '교육'과 '종교'라는 이 두 마디 외에는 별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머니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교회 장로였다. 성장의 왼팔인 어머니로부터는 혹독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랐고, 성장의 오른팔인 아버지로부터는 엄격하고 절제된 종교적 신앙과 신념을 주입받으면서 자랐던 한 인간이 바로 콘돌리자 라이스이다.

콘디(이하 애칭)는 흑인이자 여성이다. 백인과 남성이 지배한 미국 사회에서 소수종족과 유색인종의 한계는 물론 성적차별까지 극복해낸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녀를 "워싱턴의 흑진주"라 불리기도 한다.

상처입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듯이 그녀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성적, 계급적 차별을 극복하고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대통령 안보담당 참모라는 자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이라는 직위를 뛰어 넘어 국제질서를 주무를수 있는 미국 국무장관에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등극했는지도 모른다.

벌써 그녀에 대한 기대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마 다음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세기의 대결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미리 나오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힐러리라는 백인 여성 과 콘디라는 흑인 여성간의 극적 대결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예단 때문이다. 벌써 현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까지 콘디를 견제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나돌 정도이다.

***부시보다도 독실한 개신교신자**

콘디는 그야말로 자신의 할머니는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음악적 가정에서 자란 때문에 본인 역시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연주법을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즐겨한다. 오죽했으면 콘디의 집에는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콘디 자신의 피아노까지 모두 합쳐 세대의 피아노가 있었을까?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콘디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무척 교육열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콘디를 교회로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엔 콘디가 교회의 작은 방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닐만큼 교회라는 가정에서 성장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콘디의 종교적 신앙심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의 기도실로 향해 하루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는 부시 대통령보다 깊고 강하다고 할까?

콘디는 음악을 좋아했고 그것도 종교음악을 즐겨 불렀다.그래서 그녀는 맨 처음엔 음대에 진학했다.그리고 피아노를 전공했다.그러나 어느새 음악이 자신의 소질에 맞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바로 바꾼 전공이 정치학이었으며, 그것도 국제정치학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항을 발견하게 된다. 국제정치학을 가르킨 지도교사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때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메덜린 엘브라이트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도 가끔 회고하고 고백한다. 자신의 인생을 단 두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러시아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고...

콘디는 국제정치학 가운데서도 러시아문제 전문가였다. 노틀담 대학과 덴버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고, 26살의 젊은 나이에 미국의 최고 명문중의 하나인 스텐포드대학의 부교수가 되었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전공을 정치학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3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교육영향으로 그녀의 첫 꿈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으며, 바로 이런 꿈을 갖고 처음 진학하게 된 대학이 바로 버밍햄 대학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음악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열정에 압도되어 대학을 바꿔가면서까지 전공을 바꾸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공 이외의 시간에는 지금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만큼 음악적 애호가 깊다.

콘디가 일생을 받쳐 열정을 쏟고 싶은 분야가 러시아와 음악 이외에 또 있다면 그것은 아마 미식축구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콘디의 아버지는 한때 미식축구 코치였고, 늘상 아버지를 따라 미식축구 경기장에 나갔던 그녀는 미식축구에 매력을 느꼈다. 사실은 4년전 부시 대통령의 선거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꿈은 내심 백악관 안보보좌관보다는 전미국 미식축구협회 회장직을 맡는 것이 소망이었다.

이 미식 축구는 정치와는 달리 성적, 계급적 차별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모든 미국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통합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치는 적과 아를 구분지어 자칫 잘못하면 나라와 국민을 분열시킬수 있지만, 미식축구는 적과 아를 구분짓지만 정치와는 달리 나라와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미식축구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가 독신으로 지내고 있지만, 한때 결혼을 결심할 만큼 친하게 지냈던 남자친구도 바로 미식축구 선수였다고 고백했던 점은, 미식 축구에 대한 콘디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쉽게 알 수 있게 만든다.

***부시일가 "콘디는 우리 가족이에요"**

이런 한 흑인 여성이 어떤 계기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매우 큰 우연이었다. 콘디가 부시가문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래프트에 의해서였다.

그 장소와 시기는 1987년 스탠퍼드대학에서 열린 군축관련 세미나 장이었다. 이때 러시아 정치를 전공한 33세의 흑인 여교수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 세미나에 참석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스코크래프트는 훗날 "라이스 교수의 직설적이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한 논리가 매우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할만큼 강한 첫인상을 가졌다고 말했다.

이런 깊은 인상을 지우지 못했던 스코크래프트는 포드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을 맡은 이래, 88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을 맡음으로서 두번째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을 맡게 되는데, 이때 자신의 러시아 문제를 조언해줄 중심인물로 라이스 교수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이 될 라이스가 정치와 인연을 맺게된 결정적 계기였다.

콘디는 스코크래프트 안보담당 보좌관과 함께 구소련을 해체시킨 로드맵을 창안, 기획했는가 하면, 구소련을 해체시키는 정책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사실상 미소 양극체제와 냉전체제를 종식시키는 데도 결정적 기여를 함으로써 아버지 부시대통령으로부터 탁월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89년 냉전을 해체시킨 몰타회의에 아버지 부시를 따라 고르바초프 구소련 서기장을 만난적이 있었는데, 오죽했으면 고브바초프까지 "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소련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여성이었다"라고까지 평가를 했을까?

이때부터 맺게된 아버지 부시와의 관계는 자동적으로 아들 부시와의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고, 바로 아버지 부시가 콘디를 아들 부시에게 소개한 것이 오늘의 콘디가 된 결정적 계기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의 가문은 더이상 콘디를 자신들을 돕는 참모나 비서로 생각지 않는다고 할 만큼 그녀에 대한 부시가문의 신뢰는 깊다. 현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였던 바바라와 아내인 로라는 " 콘디는 우리 가족이죠"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콘디 또한 " 부시 가문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은 더 이상 깊어질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할 만큼 콘디와 부시가계의 충성과 신뢰는 강하고 깊다.

***라이스의 5대 외교원칙**

그러나 정작 콘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북핵에 대한 그녀의 시각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두번째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당선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세계는 미국의 뜻대로 움직여야 평화스러울 것이다" 라고.

이제 비둘기 파인 콜린 파월의 자리마저 매파인 콘돌리자 라이스를 앉히게 된 것은 다름아닌 세계를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기 위한 첫 포석인 것이다. 압도적 힘의 우위에 기반한 부시 2기 행정부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이 더욱 강화될 첫 신호탄인 것이다.

워싱턴의 네오콘 가운데 유일하게 전세계 여론에 맞서 싸울수 있는 논리를 갖고 있는 인물이 바로 콘디다. 그동안 콜린 파월은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이라크등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된 국제사회로부터의 반미여론에 적절히 맞서지 못했으며,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득력있게 전달하지도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었다. 바로 콘디는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을 전략적으로 기획 집행함은 물론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국제사회의 반미여론에도 맞설수 있는 논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부시 2기 일방주의 대외정책의 강도를 측정케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이다.

콘디가 집행할 미국의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첫번째, 미국의 군사력은 전쟁을 억제하고 무력을 시위하며, 억제가 실패하였을 때는 언제라도 국방을 위해 전쟁에 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천명한다.

두번째, 미국의 원칙에 공감하는 서구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게 자유무역과 국제통화체제를 확산시키며 이를 통해 세계의 경제성장과 정치자유화를 촉진한다.

세번째, 미국 가치관에 공감하고 평화, 번영, 자유를 증진하는 임무를 공동 수행할 수 있는 동맹국과 강력하고 친밀한 관계를 재정립한다.

네번째, 국제정치체제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강대국,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의 포괄적인 관계에 집중한다.

다섯번째, 불량국가(rogue state) 혹은 적대적 국가의 위협에 단호히 대처하고, 특히 이들의 증가하는 테러 가능성과 대량살상 무기(WMD) 개발에 대비한다.

이러한 콘디의 입장은 이미 2000년도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며(Promoting the National Interest)'라는 논문을 통해 밝혀졌고, 이미 1기 부시행정부에서는 이런 원칙과 입장에 따라 미국의 대외정책의 틀이 잡혔기 때문에 2기 부시행정부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이 보다 구체화될 것이다.

***6자회담의 창시자**

여기서 우리가 두 눈을 번쩍 뜨고 들여다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번째인 '중국과 러시아 카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부분과, 다섯번째인 '불량국가'에 관한 언급인 것이다.

콘디는 이미 북한 핵문제를 다뤄나가는 데 있어서 중국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6자회담의 틀에 러시아를 뒤늦게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이렇게 본다면 콘디의 대외정책은 그녀가 안보담담 보좌관으로 있으면서부터 구체화됐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그녀가 2000년도에 발표한 논문을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면, 깡패국가로 지정된 북한과 이라크에 대한 운명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그녀는 이 논문에서 이라크와 북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역사가 시장체제와 민주주의로 진보하는 데 있어서 몇몇 국가들은 탈선해 있다. 이라크가 그 전형적인 예다. 사담 후세인의 정권은 고립되어 있고 그의 재래식 군사력은 심각하게 약화되었으며,국민은 가난과 공포속에 살고 있고, 그 자신은 국제무대에서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그는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려고 결심했다. 사담 후세인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어떠한 상황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의 정적을 지지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그를 제거해야 한다."

이상은 이라크에 대한 그녀의 관점이었고, 이 논문은 이라크와의 전쟁이 있기 전에 쓰여진 것이었다.결국 사담 후세인은 그녀의 주장대로 제거되었다.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시가 석유와 중동 질서 재편을 위해서였건 그렇지 않았건간에 이 논문의 내용대로라면 이라크라는 불량국가는 콘디의 논리대로 제거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 군사력 사용하면 국가 자체 소멸시켜야"**

이런 입장에서 콘디의 북한관은 어떨까?

그녀는 북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정일 또한 너무나 불투명해서 악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 이외의 의도는 알기 힘들다. 하지만 북한 역시도 국제체제에서 탈선하여 살고 있다. 그리고 동독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국경너머 성공적인 정권의 못된 쌍둥이다. 그러므로 북한내의 궁극적인 붕괴와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을 두려워 한다. 평양 또한 국제경제체제에 편입될 경우 얻을 것은 거의 없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대량살상 무기의 개발은 김정일에게 있어서 파괴적인 자구책을 제공한다.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미국의 대북한 외교정책은 반드시 도쿄와 서울의 조율을 거쳐야만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를 대가로 매수한 94년 제네바 협정은 쉽게 폐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들에는 허점이 많다. 언젠가 평양은 미사일 실험을 한다고 위협할 것이고 미국은 더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무엇을 할 것인가? 그가 오산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상은 콘디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시각과 햇볕정책에 대한 불만이 명료하게 드러난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시 말해,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대북화해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남한과는 어떤 정책적 입장차이를 갖게 될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또 북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국은 북한과 같은 정권에 단호하고 과단성있게 접근해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라크의 경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가끔은 무력으로 시위를 하고 가끔은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실패했다. 깡패정권은 빌려온 시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대함에 있어서 공포감이란 전혀 필요가 없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어의 최우선 수단은 전통적인 억지책이다.

만약 그들이 대량살상 무기를 획득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할 경우 응징으로 인해 국가 자체가 소멸될 것이기 때문에 그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무기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가 위한 노력을 촉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국가미사일방어(MD) 체제를 배치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유사시 선제 북폭 및 핵폭탄 투하를 통해 북한이란 국가 자체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에 다름아니다.

아울러 왜 부시정권 출범이래 미국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MD체제 가입을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는가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악의 제국'도 무너뜨렸는데 '악의 축' 쯤이야...**

이제 '악의 제국'으로 불리웠던 구소련을 무너뜨려 냉전을 해체시킨 콘돌리자의 눈길은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되묻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악의 축'으로 명명되고 있는 북한에 부시 2기 행정부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이란이 스스로 핵무장해제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핵외교정책은 이미 그 방향이 잡혔다. 그리고 콘디는 '악의 제국' 구소련에 비해 '악의 축'인 북한은 모든 측면에서 구소련의 변방의 존재조차도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녀의 원칙에 대한 신념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해 갖는 신념보다 훨씬 강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회고록인 <냉전의 종식(THE End of Cold War)>이란 책을 스코크래프트와 함께 정리하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은 냉전체제를 완전히 종식시킨 최후의 '냉전 해체자'로 평가받고 싶어 할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폭풍 전야로 흐르고 있다.

***필자**

전 국회의원, 김대중대통령 비서실 상황실장, 저서 <부시행정부의 한반도리포트>(2001, 김영사), <9.11이후 부시행정부의 한반도정책>(2002, 김영사),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2004, 나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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