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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타투이스트 끌어안은 화섬노조

타투이스트 노조가 만들어졌다는 소식, 정확히 말하면 타투이스트들이 '타투유니언지회'라는 틀로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노조')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화학과 섬유같은 전통적 제조업이 주축인 화섬노조는 파리바게트 제빵사와 네이버 개발자를 조직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일하는 직종을 조직하는 노조로 주목받아왔다.

사전에서 '타투(tattoo)'를 찾아보면 '문신'이라고 나오지만, 한국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서 타투와 문신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문신은 불법적 조직폭력 집단이나 탈법적 군대 면제 시도 등 부정적인 연상을 갖게 한다. 하지만 타투는 인간 개성을 발양하는 예술 행위로 느껴지면서 거부감이 덜한 듯하다.

민주노총에 집착하는 <조선일보>


그래서일까. 극우 반노동 논조의 <조선일보>는 타투이스트들이 화섬노조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타투와 문신의 어감 차이를 파고들며 노동조합 혐오 기사를 내놨다. 곽래건 기자가 쓴 기사의 제목은 "문신업자까지 끌어들인 민노총"이다. 기사를 읽어보면 두 가지 불순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첫째 민주노총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 화섬노조가 민주노총 산하 가맹 조직인 건 맞지만, "문신업자를 끌어들인" 조직은 민주노총이 아니라 화섬노조다. 제목을 "문신업자까지 끌어들인 화섬노조"로 바꿔야 사실에 좀 더 다가가게 된다. 기자가 접촉한 곳이 민주노총이 아니라 화섬노조였음이 분명할 텐데, 기사에는 민주노총이 다섯 번이나 언급되는 데 반해, 화섬노조는 단 한 번 언급되고 만다.

둘째 노동조합에 가입하려는 타투이스트와 그렇지 않은 타투이스트를 분열시키려는 교묘한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기사의 "문신업자"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일보> 기사들을 검색해보면 문신업자는 "구속", "성폭행", "용 문신", "불법"이라는 기사로 검색되는 데 반해, 타투이스트는 "이색 취미", "방탄소년단 열애설", "흡족", "사랑하는 이의 얼굴" 등의 기사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기분에 좌우되는 명칭, 문신업자와 타투이스트

<조선일보>의 사고 체계에서는 타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 타투이스트고, 노조에 가입하면 문신업자로 전락하는 것일까. 사실에 충실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기사라면 "타투이스트 끌어안은 화섬노조" 혹은 "문신 노동자 조직한 화섬노조"로 제목을 뽑았을 것이다.

팩트에 대한 기사의 자신감 부족은 "문신사들 입장에선 민노총을 등에 업고 정부와 사회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취재원이 누군지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노동계 관계자"로 모호하게 처리한 데서 잘 드러난다.

기사에 나온 "노동계 관계자"는 누굴까. 민주노총이나 화섬노조에서 일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한국노총에서 일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노동 문제를 팔아 돈을 버는 교수나 변호사일까. 노동계가 있으면 자본계도 있을 텐데, 필자는 기사에 언급된 관계자가 노동계보다는 '자본계'에 더 우호적인 사람일 거라 확신한다.

타투 산업 양성화는 지지?

타투이스트 노조와는 별개로 문신 시술 합법화 문제에서 <조선일보> 논조는 우호적인데, 이는 '문신 시술은 범죄? 양성화로 위생·윤리의식 지켜야'(2019년 7월 15일 자), '웬만한 문신사들은 '집유' 한 번씩 받는 나라…연간 300만회 시술 국가의 초상'(2017년 9월 17일 자), '직업 500개 만들어 고용률 올린다던 정부…3년간 헛걸음'(2016년 10월 20일 자) 등의 기사에서 잘 드러난다.

작년 세밑 <조선일보>는 공정거래위원회 ‘2019년도 경쟁제한 규제 개선방안’ 관련 기사에서 "주요 개선내용으로는 우선 비의료인에 의한 문신 시술 자격을 내년 하반기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을 통해 신설할 계획이 담겼다. 현행법상 의료인만 시술이 가능해 음성화된 문신 산업을 양성화해 관리체계를 확보하자는 취지다. 뷰티 관련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닦겠다는 것이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타투협회(Korean Tattoo Association), 한국패션타투협회(Korea Fashion Tattoo Association), 대한문신사중앙회(Korea Tattoo Federation) 등 타투이스트들의 단체는 이미 여럿 있다. 이들은 타투 합법화를 위해 헌법 소원, 국민 청원, 국회 입법 청원 등의 활동을 펼쳐 왔다.

"위장된 고용"과 "종속적 자영업"

이미 관련 종사자들의 단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화섬노조 타투유니언지회가 결성된 것은 스스로를 "사장"이라기보다 "노동자"로 느끼는 타투이스트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군가에 고용된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주"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근무조건을 볼 때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타투이스트와 같은 직종을 두고 "위장된 고용(disguised employment)" 혹은 "종속적 자영업(dependent self-employment)"이라는 말을 쓴다. ILO는 공식적인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종속된 자영업자"들이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결사의 자유와 교섭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을 개선하라고 각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타다 운전자들의 고용상 지위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뜨거운 한국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최대 2만 명으로 추정되는 타투이스트들이 현실의 일터에서 사장인지 노동자인지는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향후 타투 산업이 합법화된다면 타투이스트들의 실제 고용관계가 사용자와 노동자로 갈리는 현상이 보다 뚜렷해 질 것인 데, 공정한 경쟁 문화 조성과 종사자 보호를 위해 고용관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영국의 '타투피어싱산업노조'

타투이스트 노조 조직화와 관련하여 해외 사례는 어떤가 싶어 친분이 있는 국제 노동계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노동조합의 천국'이라는 스웨덴에서는 타투가 합법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노조로 가입하고 있지는 않다는 답변이 왔다.

만약 남의 가게에 속해서 보수를 받으며 일한다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그 경우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조 가입이 당연하다면서 위생과 안전상의 이유로 타투 업종이 보건 당국으로부터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덧붙인다.

두터운 노동자 복지로 유명한 벨기에의 노조 친구는 타투이스트들이 대부분 자기 가게 주인이거나 독립 종사자이기 때문에 노조로 조직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답해주었다.

영국 친구는 '타투피어싱산업노조(Tattoo & Piercing Industry Union)' 사이트를 알려주며,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빨리 합법화하여 위생 기준과 감염 관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의 중요성


한국의 타투유니언지회가 화섬노조라는 산업별노조에 속해 있듯, 영국의 타투노조도 조합원 60만 명을 둔 산업별노조 GMB에 속해 있다. 노조 사이트에는 타투노조가 영국 정부 산하의 공중보건국과 보건안전연구소 그리고 비정부 전문기관인 환경보건원과 공동 제작한 <타투 피어싱 가이드 (Tattooing and body piercing guidance)>가 올려져 있다.

"노조 설립과 더불어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만들고 모범적으로 운영하여 감염 부작용의 우려도 말끔히 씻어내겠다... 지회는 의료계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더욱 현실적이고 완벽한 위생 및 감염관리 가이드를 만들 계획이다"고 화섬노조 보도자료에서 밝힌 타투유니언지회의 포부와 일맥상통한다.

자유민주주의 부정하는 <조선일보>

타투이스트가 화섬노조에 들어간 게 못마땅한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에서 '문신 잉크 쓴다고 화학노동자?'라며 비아냥거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었다. 아니, 음악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가 있는데, 그것도 전에는 금속노조에 가 있었다. (중략) 아마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망교회를 다니든 어디를 다니든 그것은 다 본인의 자유다. 이를 종교의 자유라 한다. 곽래건 기자가 <조선일보>를 다니든, "세 확장에 혈안 된 민주노총, '불법' 문신사들 영입 논란"이라 쓴 <뉴데일리>를 다니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다. 이를 직업 선택의 자유라 한다.

자유 민주주의가 종교의 자유나 직업 선택의 자유 이상으로 중시하는 자유가 있다. 결사의 자유가 그것이다. 타투이스트가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기성의 문신사협회에 들어가든, 따로 직능 단체를 만들든, 자신들만의 노동조합을 만들든, 아니면 이미 있는 기성 노조에 들어가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다.

스스로가 사장이라 믿는 이들은 문신사협회를 통해 상급단체를 경영자총연맹(경총)으로 하면 된다. 스스로를 소상공인으로 여기면 최저임금제 무력화에 별동대로 앞장서는 소상공인단체에 가입하면 된다. 반대로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면 화섬노조에 가입해 민주노총과 연관을 맺으면 된다. 이런 자유를 우리는 결사의 자유라 부른다.

타투이스트 노동권 보호해야

화섬노조 타투유니언지회는 "새로운 직업이나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동권이 배제되거나 자본의 성장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략) 이에 지회는 타투 일반직업화 이후 산업 확장에 따른 노동권과 건강권 보호, 공정한 고용 문화 정립, 노동 존중의 노사관계 정립이 이뤄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가는 활동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 천명했듯 "현실에 맞지 않는 법제도 때문에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타투이스트들을 보호하고, 세계적으로 앞선 (한국) 타투 문화의 모델을 제시해 나갈 수 있는" 화섬노조 타투유니언지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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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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