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가을을 타는 사람들, 혹시 '우울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가을을 타는 사람들, 혹시 '우울증'?"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28> 우울증 이야기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요. 겨울 바람처럼 살을 에지는 않지만 왠지 가슴속을 깊숙히 파고드는 가을 바람이 불면, 가슴 한구석이 왠지 텅 빈 듯 허전해지고 인생이 괜히 허무해지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죠. 낙엽이 구르는 걸 보면서 내 인생도 한 줄기 담배 연기처럼 무심히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념에 잠기기도 하구요. 특히나 학생들은 이맘 때 있는 입시철로 오히려 가을이 겨울보다 더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을이 되면 일조량의 저하와 기온의 감소로 신진 대사율이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감정의 기복을 겪게 됩니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우울증이지요.

우울증은 약 15%의 사람들이 평생에 한번쯤은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어떻게 보면 아주 흔한 질병입니다. 성별로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2배 정도의 높은 비율로 우울증이 발생하는데, 여성은 임신과 출산 등 급격한 호르몬 변화와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겪는데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오해들**

우울증은 여러모로 많은 오해를 받아온 병 중 하나입니다.

첫 번째 오해는 우울증은 정신력의 문제로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낫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울증은 어떠한 계기, 예를 들어 실연이나 절교 등 인간관계의 중요한 변화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들-직장, 입시, 가정, 돈, 신체 등-에서의 실패 혹은 상해로 인한 좌절, 환경 변화-이사, 전학, 이직, 정년 퇴직 등-로 인한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자,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봅시다. 생각만 해도 우울해질 것 같지요? 그래서, 우울증은 이렇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해소되고 변화에 적응하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기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그 말이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병적 우울증이 아니라 단지 '우울한 기분'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원인이 해소되면 쉽게 사라지고, 이로 인해 병적인 우울증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병적인 우울증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며, 때로는 심각할 수도 있는 질환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유전적인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자신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나 의심되시는 분이시라면 이곳(http://drchoi.pe.kr/scale-cesd.htm)으로 들어가서 테스트를 해보세요. 어떤 병이든 병은 심각해지기 전에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몸과 정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데 익숙합니다.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기 때문에 정신력만 강하면 뭐든지 이겨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정말 많이 들어왔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육체는 필멸(必滅)하는 존재인 반면, 영혼은 불멸(不滅)하는 존재로 봅니다. 그래서 멀리는 피노키오나 인어공주가 가까이는 <A.I.>의 로봇 데이비드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런 인식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습니다만, 어쨌든 간에 아무리 그래도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은 진리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우리 머리 꼭대기에 존재하는 '뇌'가 사람의 정신활동을 관장한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이제 많은 과학자들은 정신 활동이란 뇌세포의 네트워킹과 프로세싱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뇌 역시 우리 몸의 일부이므로 몸과 정신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우울증 혁명, '프로작' 세상?**

이런 생각이 퍼지자, 정신적인 이상에 대한 치료도 신체적 치료-즉 뇌를 치료하는 것-를 통해 고칠 수 있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나타나게 되었지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신병원은 환자를 단순히 가둬놓거나, 심리치료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약물치료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울증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세로토닌의 저하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뇌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르몬에 의해 좌우됩니다(혹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이런 호르몬들이 나와서 기분을 조절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테지요). 예를 들어 위험한 순간에 처한 경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온 몸의 세포들을 각성시켜, 긴장된 느낌이 들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도파민은 흥분을, 엔돌핀은 행복과 극치감을 느끼게 해주며, 여러 가지 호르몬의 농도에 따라 기분이 변화됩니다. 세로토닌도 비슷한 작용을 하며 뇌에서 그 분비가 적어지면, 사람들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되죠.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이런 물질들을 넣어주면 인위적으로 기분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로폰 같은 마약류들은 엔돌핀과 비슷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체내에 들어왔을 때 엔돌핀처럼 엄청난 행복감과 만족감, 자극에 대한 예민함을 느끼게 해준다고 합니다. 각종 중독은 이런 짜릿함에 길이 들어 버려 헤어나지 못할 때 생겨납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서는 세로토닌(serotonin) 수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자주 발견됩니다, 또한 신경 전달 체계 중 5-HT1b 자가수용체(5-HT1b autoreceptor)라는 세포 단백질이 너무 많이 생겨나게 하기도 합니다. 이름이 좀 복잡하긴 한데, 이런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 5-HT1b 자가수용체가 많이 생기면 말 그대로 세로토닌을 붙잡는 단백질이 늘어나는 것으로, 세로토닌의 분비량이 적어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냅니다. 우울증 환자를 검사해보면 이 물질이 과도한 활성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들은 위에서 언급한 스트레스에 의한 신체 반응 결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 없이도 몸 속의 호르몬 균형이 깨져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면 갑자기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까지 알았으니, 이 세로토닌의 분비량을 조정하여 우울증을 치료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하겠지요. 따라서 항우울제 중에는 세로토닌의 분비량을 늘리거나,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방지하거나 해서 혈중 세로토닌 농도를 유지시켜주는 기작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학자 합니다. 지금까지 발명된 우울증 치료제, 즉 항우울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미국 일라이 릴리(Eli Lily)사에서 만든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Prozac)입니다.

프로작은 플루옥세틴(Fluoxetine, C17H18F3NOㆍHCl)을 주성분으로 하는 약으로, 지난 1987년에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현재 세계에서 제일 많이 사용되는 항우울제랍니다. 프로작은 세로토닌의 분비량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프로작은 이전에 쓰이던 항우울제들이 지닌 부작용-불면증, 체중 증가, 시력 장애, 심장 부정맥, 입 안이 마르고 변비가 생기는 것-이 거의 없고, 하루에 딱 한 번만 먹으면 되기에 간편합니다. 게다가 식후, 식전에 상관없이 복용이 가능하며, 다른 약을 먹으면서도 먹을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시장에 나오자마자 다른 항우울제들을 KO시키고 항우울제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지요. 요즘 들어서는 프로작의 다른 치료 효과에도 주목한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프로작은 우울증 외에도 도벽이나 폭식증 등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세로토닌은 필수 아미노산의 일종인 트립토판(tryptophan)이 아래 그림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형성됩니다. 따라서 트립토판의 양이 충분하지 못할 경우에도 우울해질 수 있답니다. 트립토판이 많이 든 우유, 치즈, 생선, 땅콩 등을 섭취하는 것도 우울증 예방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답니다.

***"우울증, 위험한 질병"**

두 번째 오해는 우울증은 위험하지 않은 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항우울제의 효과도 좋고, 치료도 잘 되는 편이지만,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요하며, 재발 가능성이 많은 편입니다. 또한, 우울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자살 시도인데 절반 이상의 환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이 중에서 15%는 실제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울증에서의 자살은 자신, 또는 자신을 이렇게 우울하게 만든 세상을 응징하는 의미도 있고, '내가 이렇게 힘드니까 나를 좀 봐 달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만 잘 살펴보면 자살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해요. 환자들은 대개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죠.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약한 사람들의 일시적 정신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은데, 우울증도 일종의 '병'으로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몸과 마음의 분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몸의 이상은 병원을 찾아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면서도, 마음의 이상은 그냥 참고 견디거나 대수롭잖게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뇌 역시 신체의 일부이고, 마음은 뇌의 사고 작용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많은 수의 '마음의 병'이 실제로는 '몸의 이상'으로 인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뇌의 모든 작용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아서 치료가 힘든 경우도 있지만, 많은 수의 정신질환에 유용한 약이 개발되어 있고, 실제로 효과도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병도 무조건 참지 말고, 발달된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이 울적하다면..."**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지만,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괜히 감상적으로 변하고 우수에 젖습니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서글프고 파랗고 맑은 하늘조차 왜 그리 안타까운지…. 사람들은 괜히 우울해지고 감상에 젖으며 가벼운 우울에 빠져듭니다. 이는 낙엽 때문도 아니고 하늘 때문도 아닌, 바로 일조량의 변화 때문입니다. 세로토닌의 분비량은 일조량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름에 비해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에는 누구나 가벼운 우울증상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구의 추운 지방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으며, 일년 내내 태양이 빛나는 플로리다 지방에서는 그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기도 하구요.

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이 울적하다면, 햇빛 좋은 날을 골라 따뜻한 야외로 나들이를 나가보세요. 우울한 기분을 날려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과 같이 나간다면 금상첨화고, 그렇지 않더라도 따사로운 햇살을 흠뻑 받으면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