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공급 대란 사태가 이어지면서 급기야 정치적 문제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마스크가 코로나19 감염 예방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지만, 시민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마스크가 의학적 의미를 넘어 사실상 사회적 의미를 지닌 상징이 되어버려, 이 상황에서 공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과장 홍보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방대본으로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마스크 착용을 코로나19 예방법으로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 세계보건기구(WHO)도 마스크 착용을 우선적으로 권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본부장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보건용 마스크(KF 인증 마스크)는 일반인이 아니라 에어로졸 노출 위험이 큰 의료진을 위한 것"이라며 "시민은 마스크 착용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키는 게 예방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부본부장은 다만 기침 환자는 자신의 침방울 전파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했다. 기저질환자나 고연령자 등 코로나19 고위험군의 경우도 병원 등 대중 밀집 시설 방문 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전했다.
요약하면, 몸이 아픈 사람이 아닌 이상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이 같은 지적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전파하면서 각국 방역당국으로부터 제기됐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남에 따라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의료진 등의 마스크 수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공중보건국(PHS) 책임자인 제롬 M 애덤스 박사가 "마스크 구입을 중단해 달라"고 트위터에 호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의료진의 마스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의료진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커져 사회 전체가 더 위험해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방역 전문가들의 입장과 달리, 대중은 마스크 구입을 위해 긴 줄도 마다하지 않는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 수급이 차질을 빚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3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방역 전문가들의 '마스크 불필요성' 의견을 근거로 긴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려는 대중이 지나친 공포에 매몰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때문에 장기간 '마스크가 필요하냐 아니냐'를 두고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 현상을 '과학적 의견'만으로 극복하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코로나19가 번지지만 불안한 시민은 특별히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다보니 '손해는 안 볼 것 같은' 마스크 착용에 집중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가 있어도 우매하게 행동하는 시민'이라는 식으로 지적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며 "지금은 '있는 마스크를 잘 세탁해서 써도 효과에 차이가 없다'는 식의 긍정적 메시지를 내는 게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스크 대란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 달 일본 후쿠오카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이 기침을 하자 다른 승객이 비상신고 버튼을 눌러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일이 일어났다. 마스크 구입 줄 새치기를 한 이를 다른 시민이 폭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마스크 사재기 현상은 코로나19와 함께 세계적으로 번지는 현상이 돼 버렸다.
김 교수는 "마스크 대란 사태에서 근본적 문제는 '마스크가 사회적 의미를 가져버렸다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마스크는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는 시민 정신'의 표상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다른 이의 시선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마스크는 감염 예방에 필수적이지 않다'는 방역당국 말을 믿더라도, 다른 이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이는 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게 돼 버렸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마스크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코로나19 전파를 막으려는 시민 의무의 상징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엄격하게 '시민은 손 씻기와 사회적 거리두기만 잘 하면 된다. 마스크는 착용하지 마라'고 방역당국이 메시지를 관리해야 하지 않았을까. 김 교수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다수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간략하고 명확하게'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방역당국의 일차 목표가 바이러스 감염 차단이라면, '시민이 감염 차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게 더 간단명료하다"며 "'손만 씻고 마스크는 쓰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오히려 혼선만 더 야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결국 시민이 '마스크는 꼭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수용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마스크 공급을 최대한 원활하게 관리하는 데 정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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