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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포도는 같이 두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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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포도는 같이 두지 마세요"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26> 에틸렌 이야기

지난 주는 내내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굳이 가을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날씨가 선선해졌네요. 계절마다 그 계절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있지요. 봄은 푸르게 피어나는 새싹과 개나리와 진달래의 꽃 잔치가, 여름에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푸르게 빛나는 바다가 떠오르지요. 가을에는 뭐니뭐니 해도 누렇게 익은 벼이삭과 색색가지 색으로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이 제격입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무들은 노랗고 빨간색으로 잎사귀를 물들이다가 땅으로 떨어집니다. 오늘은 이 식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무는 사람을 많이 닮았습니다. 대지에 굳게 뿌리박힌 뿌리는 두 발을,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가지는 두 팔을, 가지마다 풍성한 나뭇잎은 탐스런 머릿결을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나무의 줄기에 생채기를 내면 그 곳에선 말간 수액이 흘러내려 상처 부위를 단단히 감쌉니다. 마치, 인간의 피부에 상처가 나면 피가 흐르고 딱지가 앉는 것처럼 말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나무의 수액을 인간의 피에 비교하곤 하는데요, 이 밖에도 식물에게도 사람처럼 호르몬이 존재한답니다. 옥신, 지베렐린 등이 대표적인데 생물학 교과서에서 식물이 해를 향해 자라게 하는 호르몬 성분들에 대해 배우셨을 겁니다. 이 밖에도 식물에서는 몇 가지 호르몬이 더 존재하는데요, 오늘은 아주 간단하지만 특이한 성질을 가지는 식물 호르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동물의 호르몬과는 구조가 다르긴 하지만, 식물에게도 호르몬의 역할을 하는 물질들이 있습니다. 원래 호르몬(hormone)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자극하다', '흥분시키다', '각성시키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생체 내에서 합성되어서, 생체 내에서 어떤 현상을 일으키거나 어떤 물질을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죠. 생물학적으로 정의를 내리자면, 호르몬이란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유기 생성물로, 체액을 따라 멀리 있는 세포로 옮겨가 다른 세포의 활성이나 활동에 독특한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 입니다.

일단 식물호르몬은 동물호르몬과 구조가 매우 다르답니다. 동물의 호르몬은 아미노산으로부터 유도된 고분자량 화합물인 폴리펩티드나 단백질 및 스테로이드가 대부분인 반면, 식물의 경우에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호르몬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에틸렌(ethylene)의 경우에는 탄소 두개와 수소 네 개로 이루어진 정말로 단순한 구조를 갖지만, 이것은 식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오늘은 주로 이 에틸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에틸렌은 기체 형태를 지니고 있는 식물 호르몬으로 식물의 성숙을 촉진하는 기능을 하는 호르몬입니다. 기체 형태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에틸렌을 뿌려줘도 똑같이 식물의 성숙을 촉진할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상업적으로 이용되어온 식물 호르몬입니다. 이 에틸렌은 가스나 석유가 탈 때 흔히 생기는 에틸렌 가스와 같은 물질입니다. 따라서 석유 스토브 근처에 푸른 레몬을 갖다 두면 노랗게 익는다던가, 아직도 유럽의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가스 가로등 옆의 나무들은 단풍이 일찍 든다던가 하는 현상이 나타나곤 해요.

이처럼 에틸렌은 식물의 성숙이나 또는 노화를 촉진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에틸렌에 노출되면 과일이 쉽게 익게 되고, 나아가서는 쉽게 상하게 됩니다. 따라서 에틸렌은 농산물을 취급하는 상인들에게는 양날의 매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에틸렌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서, 과일의 선도나 성숙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바나나를 봅시다. 슈퍼에 가면 가판대에 먹음직스럽게 익은 노란 바나나송이가 그득 올려져 있는데요, 그 바나나가 딸 때부터 그렇게 완전히 익어 있었을까요? 아니죠, 그랬다간 먼 나라에서 배에 실려져 바다 건너오는 동안 다 상해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보존해야 하는 과일들은 채 익기 전에 파란 상태에서 수확해 배에 실려집니다. 그리고 판매지에서는 이 덜 익은 과일들을 밀폐된 공간에 넣고 에틸렌 가스를 뿌려 주는 거죠. 에틸렌의 신호를 받은 과일들은 자신들이 이미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잊은 채로 맛있게 익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가판대에서 늘 싱싱하고 잘 익은 바나나를 사 먹을 수 있게 된답니다.

반면에 운반시에는 과일이 익지 못하게 하도록-식물 자체에서도 에틸렌이 어느 정도 자연발생하니까-다른 물질을 처리합니다. 주로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산화탄소 가스를 채운 채로 운반하면 과일이 익는 속도를 늦춰줄 수 있다고 합니다.

에틸렌은 특히 과일에서 많이 나오는데, 개중에는 특히나 에틸렌을 많이 방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과실이 사과와 멜론인데요, 덜 익어서 떫은 감이 있다면 사과랑 같은 봉지에 넣어서 냉장실에 넣어 두세요. 사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틸렌의 영향으로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땡감이 맛있는 단감으로 변할 테니까요. 대신, 무른 딸기나 포도를 사과와 같이 보관하는 것은 금물! 그렇잖아도 잘 상하는 것들이 금방 곯거나 알알이 떨어지게 될 테니까요.

자, 여기서 에틸렌의 재미있는 기능을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죠.

예전에 과수원에서는 나무에서 일찍 떨어져서 아직 덜 익은 귤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했지요. 물론 이 귤은 무척이나 시어서 먹기가 힘듭니다. 그 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이 건 그냥 먹지 말고, 한 나절 가지고 놀다가 먹으라고요. 실제로 아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조몰락거린 귤은 처음 받아왔을 때보다 훨씬 덜 시고, 더 달아져서 어느새 먹을 만하게 변해버리죠, 마치 마술처럼 말예요.

에틸렌은 다른 말로 식물 성숙 호르몬 또는 스트레스 호르몬(Stress hormone)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에틸렌은 식물체가 상처를 받거나 병원체의 공격을 받았을 때, 또는 가뭄, 산소부족, 냉해 등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활발하게 만들어지게 되거든요. 아마도 식물체가 각종 스트레스를 받아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면 빨리 과실을 성숙시켜 종자를 남겨서 후대를 기약하고자하는 진화적 전략의 결과가 아닐까 싶네요. 조금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 빨리 후손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거겠죠. 어쨌거나 모든 생명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유전자의 존속과 번성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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