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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선글라스, 그리고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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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회찬과 선글라스, 그리고 해바라기

[노회찬정치학교를 가다] 1기 노회찬정치학교 마지막 날 풍경

"많은 사람이 공정을 위해 일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
"내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고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것."
"1박 2일 워크숍 때 서로를 부를 호칭에 대해 밤샘토론한 일."
"같이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 바로 당신.”

작년 10월 26일 시작된 1기 노회찬정치학교가 지난 8일 마무리됐다. 수강생들은 정치학교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것, 기억에 남는 것, 더 알고 싶은 것에 대해 위와 같은 글을 남겼다. 한국 사회에 대한 시각의 변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같이 만든 추억이 읽힌다.

30여 명의 수강생은 15주 간 토요일 하루를 꼬박 함께하며 인권, 환경, 페미니즘, 정치, 평화, 노동, 복지, 그리고 노회찬의 꿈에 대해 공부했다. 생각을 나누고 뜻을 같이할 친구를 만들기도 했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 모두가 마음을 모아 만들어 낸 1기 노회찬정치학교의 마지막 날 풍경을 전한다.

▲ 1기 노회찬정치학교 수강생들이 남긴 기억에 남는 것, 알게 된 것, 더 알고 싶은 것. ⓒ노회찬재단


약자의 삶을 예리하게 드러내는 '노회찬 지표'를 만들자

오전에는 1기 정치학교의 마지막 강연이 열렸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고문과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강연자로 나섰다. 두 사람은 "노회찬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한국 사회 약자들의 삶을 드러내는 '노회찬 지표'를 제안했다. 이를 만들 때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전했다.

이 고문은 작년 7월 12일 노회찬 1주기를 앞두고 '노회찬을 기억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 고문은 그 글에서 노회찬이 생전에 주목했던 최저임금, 비정규직, 선거제 개혁 등에 대해 감시 목록을 만들고, 노회찬 지표를 만들어 연도별로 현황을 평가하면 "우리는 노회찬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 고문은 이날 강연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수는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며 "수출규모 6위, 3050 클럽(GNI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7개국, 외환보유액 9위, GDP 규모 12위와 같은 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일침했다.

이 고문은 "2015년 OECD '더 나은 삶의 질 지수'를 보면 6, 7, 9, 12위와 같은 수와는 동떨어진 우리 삶이 드러난다"며 "한국에서 아빠가 아이와 함께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은 하루 3분,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1시간 가량 짧은 7시간 30분, 주관적 삶의 만족도는 조사대상 36개국 중 29위, 일과 삶의 균형은 33위,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나'는 꼴찌"라고 전했다.

이 고문은 "우리가 어떤 수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방향, 삶의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며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시간, 청소년의 수면시간, 어려운 일을 친지와 이야기할 시간 등 작아 보이는 지표를 모아서 그 수로 국정을 평가하고, 이런 일이 축적되면 정치적 목표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위원은 "이 고문의 말을 이어 생각하면 한국은 GDP(Gross Domestic Product)에 미친 나라 같다"며 "정부 정책의 성과를 집권 초와 말 사이의 경제 성장으로만 평가하는데, 또 다른 GDP(Gross Domestic PublicIty, 총 국내 공공성)로 사회가 얼마나 망가졌는가를 평가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노 위원은 "그간 진보적 학자들은 OECD 행복지수, 한국 사회통합지수 등 끊임없이 (대안적인) 수치를 만들어왔다"며 "다만 정부의 무관심 등으로 인해 사회에 중요하게 수용되지는 않았고, 사회권 관련 지수는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며 힘이 약해진 면도 있다"고 전했다.

노 위원은 "노회찬재단이 노회찬 지표를 만든다면 큰 지표가 아니라 작지만 예리한 지표를 만들면 좋겠다"며 "노회찬이 6411 버스를 통해 이름 없던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처럼 지금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욕망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 강연 중인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고문. ⓒ노회찬재단

▲ 강연 중인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회찬재단

수업이 끝난 뒤에도 수강생들의 활동은 계속된다

오후에는 수강생들이 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기본소득 이슈화를 위해 길거리에서 가짜 돈 뿌리기 같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세액공제 중 10만 원을 진보정치인에게 후원하는 토대 만들기 같은 현실적 방안에 이르기까지 7개 프로젝트가 나왔다.

발표가 끝난 뒤 수강생들은 실현되길 바라는 프로젝트에 투표했다. △ 노회찬 의원의 말을 활용해 타이포그라피 형식의 영상 만들기 △ 1기 노회찬정치학교를 생생하게 기록해 책으로 엮기 △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주한미군 등 외국인에게 한국 역사를 알리는 책자 만들기 △ 투쟁 현장에 다양한 시민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식탁 차리기 등 네 개의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노회찬재단은 이 중 3개의 프로젝트에 100만 원을 지원했다. 남은 1개 프로젝트에는 오재영추모사업회가 100만 원을 지원했다. 선정된 4개 팀은 앞으로 두 달여에 걸쳐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 4월 25일 결과공유회를 통해 나눈다.

프로젝트 발표 및 선정이 끝난 뒤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정치학교를 만들 때 슬로건은 제2, 제3의 노회찬을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오늘 보니 스물 몇 명이 대거 출연하는 것 같다"며 "여러분이 있어서 우리 사회는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 같다"고 격려했다.

조 이사장은 "노회찬이 평생을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에 집착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하며 많은 좌절을 경험한 끝에 그런 말을 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며 "노회찬을 배우되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게 아니라 그의 전략과 창의성도 함께 배워 스스로의 전략과 창의성으로 제2, 제3의 노회찬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으로부터 팀 프로젝트 지원금을 전달 받고 있는 수강생들. ⓒ노회찬재단

노회찬재단이 수강생에게 특별한 뜻을 담아 전달한 선물


준비된 교육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고 정치학교 교감을 맡은 오진아 노회찬재단 운영위원의 사회로 수료식이 진행됐다. 김형탁 재단 사무총장, 신장식 정의당 전 사무총장, 정광필 서울시50+인생학교 교장, 김수정 변호사, 주은경 참여연대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 최정식 법무법인지평 변호사 등 노회찬재단 이사와 감사 등 임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15주 동안 동고동락한 박홍순 인문학 작가, 김윤철 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기호 한신대 교수,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 등 정치학교의 각 영역별 담임도 참석했다.

수강생들은 수료증, 특별상 상장과 함께 노회찬 추모집, 15주 동안의 추억을 담은 사진집, 선글라스, 해바라기가 그려진 에코백 등을 선물로 받았다. 추모집과 사진집은 물론 생뚱맞아 보이는 선글라스와 해바라기 에코백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었다.

선글라스는 '멋진 진보'를 상징한다. 노회찬을 추모하는 한 시민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기도 하다.

김어준 씨는 2007년 노회찬을 인터뷰하며 "선글라스가 몇 개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운동 성직자"처럼 산 노회찬도 멋을 위해 뭔가를 해본 적이 있을까 궁금해 던진 질문이었다.

김 씨는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뒤인 2018년 11월 15일,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아, 그때 선글라스 사드렸어야 했는데. 선글라스가 뭐라고 그것 정도는 쓰고 다녀도 되는데 자기 멋 부려도..."라며 '진보 운동을 하는 사람은 항상 고생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야 하고 옷도 추레해야 한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진보는 멋있어야 하고 또 충분히 멋질 수 있으며, 그래야 대중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송 다음날 대구에 사는 한 시민이 노회찬재단에 선글라스 100개를 후원했다. 며칠 뒤 60개가 더 왔다. 그 선글라스가 1기 노회찬정치학교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한 이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염은비 동화작가가 그린 에코백의 해바라기에도 노회찬과 얽힌 이야기가 있다. 1991년 어느 봄,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노회찬은 철창 밖 화단에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해바라기 꽃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태양의 위치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환한 대낮의 해바라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두워진 후에 해바라기 얼굴은 빛이 마지막으로 사라지던 곳,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이면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하고 있어도 해바라기의 얼굴은 그날 새벽어둠을 뚫고 밝은 빛이 처음 새어 나오던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바라기가 보여준 것은 권세를 쫓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광명천지를 향한 희구였던 것이다."(노회찬, '해바라기처럼', <신동아> 1994년 10월호 칼럼)

이어 노회찬은 "진보정당운동은 권세를 쫓아 어둠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고 광명천지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해바라기 정치를 추구하는 운동인 것이다"라고 적었다.

▲ 상장을 받은 수강생과 조현연 1기 노회찬정치학교 교장(가운데). ⓒ노회찬재단

생전 노회찬의 꿈 중 하나였던 정치 교육


노회찬재단과 수강생들이 마음을 다해 진행한 '정치 교육'은 생전 노회찬의 꿈 중 하나였다.

1기 정치학교 교장인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는 "2009년 노회찬마들연구소에서, 2016년 창원 선거 끝나고 바로, 그리고 노회찬정치학교까지 노회찬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교육을) 세 번 시도했다. 앞선 두 번 모두 그(노회찬)와 함께 몇 달에 걸쳐 모색만 하고 실행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그가 없는 가운데 실행했고 그의 꿈을 조금이나마 이룬 것 같다"며 함께 고생한 6명의 운영진과 재단 상근자 및 임원들, 가장 중요하게는 "학생들"에게 그를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조 이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대표 대사인 "까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을 인용하면서 "그 영화의 이면에 담긴 자유와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힘든 시간, 어려운 세상이지만 한발 한발 뚫고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믿음과 신뢰를 보낸다"고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윤선주 씨는 수강생을 대표해 소회를 밝혔다. 윤 씨는 "수업 첫날, 젊은 기운으로 가득한 교실, 유연함과 친절함, 서로를 향한 적극적인 배려, 열의로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는 학생들의 눈빛, (학생들이 던진) 질문의 내용에 놀랐다"며 "(운영진과 교수님들의) 따뜻한 정성과 관심이 소소한 행복감으로 스며들어 공부하는 기간 내내 일상이 풍요로웠다"고 말했다.

윤 씨는 "소심하지만 소란스럽게, 미미하지만 강력하게, 슬픈 현실이지만 유쾌하게,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삶의 자리에서 소신 있는 행동가로, 뜨겁게 살아가는 노회찬정치학교 1기 졸업생이 되겠다"며 "함께 한 동무들,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수료식 후 노회찬정치학교 1기 동기회가 자발적으로 구성됐다. 7인의 운영진을 중심으로 3월 말 1박2일 졸업여행이 예정돼 있다. 월1회 정기적인 산행모임도 따로 준비하고 있다. 1기 동기회는 앞으로 정치학교 진행 등 재단 사업에 많은 자극과 힘을 줄 듯 했다.

노회찬재단은 9월 개강을 목표로 2기 정치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심화 과정을 신설해 1년에 두 번 정치학교를 진행할 계획이다.

▲ 1기 노회찬정치학교가 끝난 뒤 '멋진 진보'를 상징하는 선글라스를 끼고 찍은 기념사진.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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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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