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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어떻게 '말 잘하는 사람'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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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어떻게 '말 잘하는 사람'이 됐을까?

[노회찬정치학교를가다] 강상구 정의당 전 교육연수원장 '노회찬의 말하기'

풍자와 해학의 정치인. 말이 무기였던 정치인. 노회찬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그리워한다.

"전화 두 통으로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벌어들이는 전관예우의 법정에서 과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합니까? 만 명만 평등할 뿐입니다."

"(특목고에 대해) 강북에 루이비통 명품관 지으면 강남북 격차가 해소됩니까? 강남북 부자들의 격차를 해소했을지는 몰라도 강남북 격차를 해소한 것은 아닙니다."

"돈 많이 벌어서 비싼 음식 먹은 거 누가 탓합니까. 그런데 옆에서 굶고 있다는 겁니다. 옆에서 굶고 있는데 암소 갈비 뜯어도 됩니까? 암소 갈비 뜯는 사람들 불고기 먹으라 이거에요. 그럼 옆에 있는 사람 라면 먹을 수 있다 이거예요."

노회찬은 어떻게 가슴을 울리면서도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말을 그리도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언제나, 노회찬 어록>, <노회찬의 말하기>의 저자인 강상구 정의당 전 교육연수원장이 1일 노회찬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노회찬재단정치학교 스물 여덟 번째 강의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한 노회찬의 말들'에 대해 강연했다.

▲ '우리를 행복하게 한 노회찬의 말들'을 주제로 강연 중인 강상구 정의당 전 교육연수원장. ⓒ노회찬재단

중요한 건 말 자체가 아닌 말하는 사람의 삶과 철학

강 전 원장은 서두에 정치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강 전 원장은 정치가 "동료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더라"고 말했다. 노회찬은 그 말을 참 잘하던 정치인이었다.

강 전 원장은 그런 노회찬의 말에 우리가 감동을 받는 이유는 말 재주가 좋아서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말이 얼마나 잘 꾸며져 있나보다 말에 담긴 철학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처음 노 대표님의 말을 듣고 놀란 건 2004년 총선 때 TV 토론 하러 가서 하신 말씀이었어요.

'대통령 선거 불법 대선자금으로 들어간 국회의원 같은 경우에 3선 의원이므로 형을 낮춘다. 한국경제에 오랫동안 이바지한 바가 크므로 낮춘다. 다 그런 식이예요. 그러면 직장 생활 한 30년 하다가 감호소 들어간 사람 재판할 때 국가 경제를 위해서 30년 동안 노동자로 일해 왔기 때문에 지난 25년 동안 농사 짓느라고 땀 많이 흘렸기 때문에 형을 경함한다. 이런 판결 있습니까? 없잖아요.'

엄청난 비유가 있나요. 저건 철학이죠.

한창 초반에 유명해지셨을 때 '나는 이들을 306세대라고 부른다'는 말도 하셨어요.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막 떠오를 때였어요. 306에서 가운데 0은 대학 안 나왔다는 뜻이었어요. 306은 학번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모두가 386을 쳐다볼 때 대학을 안 나온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가 보이잖아요. 우리가 말에 감동받는 건 말재주가 아니라 그 밑에 담긴 철학 때문이에요."

강 전 원장은 철학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과 다른 철학이 담긴 말을 할 때 메시지와 메신저가 충돌하면서 말의 힘이 약화된다는 것이었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오해가 있어요. 정치는 말만 하는 게 아니에요. 실제 하는 것과 말이 다르면 그 말에는 힘이 없어요. 예를 들어 작년에 '독재 타도, 헌법 수호'라는 말을 가장 많이 외친 사람이 누구죠? 황교안 대표에요. 우리가 저 말을 들을 때 감동을 받나요. 나는 과연 내가 말하는 메시지와 일치하는 사람인가. 내가 하는 말을 강화시키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노회찬의 공적인 삶은 비교적 알려져 있다. 인민노련을 위시한 노동운동,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까지 이어지는 진보정당운동이다. 그럼 노회찬은 일상은 어땠을까. 강 전 원장은 "타임머신이 있다면 안 탈거에요"라는 노회찬의 말에 그 힌트가 담겨있다고 짐작했다.


"작년에 <어바웃타임>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법을 배워요. 하루를 두 번 사는 거죠. 첫 하루에 싸웠으면, 두 번째 하루는 잘해줘요. 그러면서 하루하루 겪는 일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요.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부터 타임머신을 안 타게 돼요. 매일매일 두 번째 하루처럼 살게돼서. 저는 제 방식으로 타임머신을 안 탄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매일 두 번째 하루처럼 사셨나' 생각해요.

동네에서 선거 나가면 어떤 칭찬이 제일 좋냐면, 그 사람 진짜 부지런하다. 두 번째는 사람이 됐대. 이 두 개가 있으면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요. 여기에 유머를 갖고 있으면 완전 막 많이 모이는 거죠. 성실하게 일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노 대표님이 공장에서 용접 일하실 때 그것도 잘 하셨대요."

노회찬은 그의 철학에 걸맞는 방향의 삶을 성실하게 살았다. 강 전 원장은 그래서 우리가 노회찬의 말을 들을 때 감동받는다고 주장했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강 전 원장은 노회찬의 말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또 다른 요인으로 노회찬이 누군가를 대변한다는 일의 무거움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말을 이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결심한 게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 탓을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국민 탓을 하면 제가 할 게 없어요."

"얼마만큼 급진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느냐, 또 그에 앞서 사람들의 삶에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가가 사회적 진보를 실현하는 갈림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대변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과 대변하는 일의 출발점은 듣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대변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남의 처지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아요. 내가 누구인지도 몰라서 헤매는데 남이 누구인지 상황이 어떤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나요. 그 어려운 일을 하려면 대변하는 사람과 늘 함께 해야 해요. 누군가를 대변하는 말을 하려면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사안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강 전 원장은 잘 듣기 위해서는 첫째 조롱, 비아냥과 같은 전투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선거를 처음 치러본 후배가 "선거가 정말 힘들어요"라고 말할 때 "너는 처음 해놓고 그게 뭐가 힘들어"라는 식으로 받아쳐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왜 힘들어하는지를 듣고 그 사람의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결정적인 말은 상대에게 양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말을 짧게 해 말할 기회를 사람들 사이에 "민주적으로 배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강 전 원장은 잘 듣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를 또 하나 이야기했다. 차이를 인정하는 태도와 평등의 시각이다.


"사람들은 말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미 세상의 이치를 알고 그 이치대로 삶을 살고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셔야 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지방민, 고졸이라고 할 때 그 모든 특징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이유가 돼죠.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대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서 뭘 배울 수 있겠어요."

강 전 원장은 다시 정치라는 화두를 꺼냈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예민하게 감지해 상대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는 사람, 또 그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야 타인과 정서적 신뢰를 만들고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는 "동료와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다.


▲ 노회찬 정치 학교 자료집. ⓒ노회찬재단


"노회찬의 말은 약자의 무기였다"


강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이 "노회찬 의원님이 언제부터 말을 잘 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강 전 원장은 "당 초창기에는 노 대표님도 최근처럼 말하지는 못했고, 민주노동당이 대중화되고 영향력이 커지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바뀌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내 말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을 전했다.

"누구나 노회찬처럼 말할 수는 없죠. 저는 누구나 하면 좋겠어요. 그 말이 약한 사람의 무기니까요. 그런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노회찬처럼 말할 수는 없죠. 그런데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말을 잘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노회찬처럼 말하는 기술을 습득하자라기보다는 이정표로 삼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노회찬의 길을 따르며 말을 다듬으며 가자는 거죠."

강연 내내 강 전 원장이 노회찬의 말하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화술이 아니었다. 노회찬이 삶을 살았던 방식,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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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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