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더이상 정치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몇달간의 침묵을 깨고 노무현 정권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쏟아내, 향후 적잖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강 교수는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게재한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는 노무현:2004년 7월의 한국정치'라는 제목의, 원고지 2백20매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통해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노무현은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고 있다"**
강 교수는 글의 서두에서부터 노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내가 노무현을 처음 지지하고 나섰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한참 있다 보니 시큰둥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국가’, ‘민족’, ‘개혁’ 따위를 떠들어대며 노무현 열혈지지자가 돼 있었고, 나는 이제 노무현으로부터 멀어졌다"며 노대통령 주변인사들에 대한 힐난으로 글을 시작했다.
강 교수는 이어 "노무현은 예전의 노무현이 아니다. 그는 어느새 어설픈 마키아벨리가 되었다. 조악한 이분법을 휘두르며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선동가가 되었다. 한편에선 과거 그의 지역문제에 대한 진실성, 그 아름다운 도전조차 의심케 하는 발언들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고 노대통령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강 교수는 "한나라당도 대화와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게 정치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보기 싫어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영남인들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러나 노무현 일행은 지금 정치를 그런 식으로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지금 ‘증오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증오의 정치’에 대한 유일한 면죄부는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한심한 작태다. 왜 그들을 그토록 과대평가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강 교수는 "나는 노무현이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무현을 화나게 만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비판이 워낙 수준 이하인데다 악의적이라 효과는 마찬가지다"라며 노대통령이 조중동의 덫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이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린다는 건 노무현이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이분법의 장점은 아무리 조악하더라도 반(半)은 거저 먹고 들어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지금 노무현은 그 유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20%대의 지지율에서 40~50%대로 뛰어오를 수 있는 이분법의 마력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게 바로 조중동이 원하는 구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안타까와했다.
강 교수는 "개혁세력이 말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이 전 국민의 반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게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이분법이 누구 좋은 일 시키는 건가? 지금 당장 급하다는 이유만으로 40~50%의 지지율에 눈독을 들인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그런 지지율은 잠시 올랐다가도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지는 비상사태용 지지율이다. 그 지지율 좀 얻자고 늘 정국을 비상사태로 이끌 수는 없잖은가"라고 질타했다.
그는 "진짜 정치개혁을 하고 싶으면 국민에겐 '정치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고 외치면서 작으나마 실질적인 변화로 국민을 감동시켜야 할 텐데 노 정권은 그간 정반대로 해왔다. 입만 열었다 하면 웬 허풍이 그리도 센지! 허풍은 더 센 허풍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허풍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언행일치가 될 리 만무하다. 예컨대, 신기남의 경우, 민주당 분당 전의 태도와 열린우리당에서 크게 한자리 차지하고 난 이후의 태도 변화는 너무도 드라마틱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어 "그 ‘허풍의 악순환’에 기여한 게 바로 조중동이다. 노무현과 노 정권은 그간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해왔다기보다는 조중동을 상대로 정치를 해왔다. 조중동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문제점과 약점을 파고든다. 아주 얄밉게 악의적으로 파고든다. 그들의 왜곡․과장보도와 악의적인 비난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조중동이 박정희 미화까지 하고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이들을 이들이 사랑한다는 박정희의 방식으로 다룰 수 없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될 정도다. 나는 조중동에 대한 노 정권의 분노를 120% 이해하고 공감한다"라며 조중동의 정파적 보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강교수는 이어 "그러나 노 정권은 일개 지식인이나 시민운동단체가 아니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까지 점하고 있지 않은가. 조중동과 멱살 잡고 싸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는가? 한나라당에 대한 대응도 그렇다. 박근혜의 정수장학회 문제만 하더라도 그건 시민운동단체가 제기할 문제이지 집권여당이 제기할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부터 대판 싸움을 벌이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왜 그렇게 매사에 싸움을 못해 안달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좋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겠다. 국정운영을 잘해나가면서 이길 자신이 있는가? 승패(勝敗)에 관계없이 옳은 일은 해야 한다고? 그건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가가 할 수 있는 말이지 정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라크 파병 건은 뭐라고 변명하겠는가?"라고 아픈 구석을 치고나왔다.
강 교수는 "조중동이 아무리 나쁜 신문들이라 하더라도 그들도 한국인의 피를 가진 한국인들이 만드는 신문인데 아무려면 100% 말 안 되는 말만 할까? 적어도 7․3제는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노무현과 노 정권이 ‘허풍의 악순환’과 극렬한 전투태세에 빠져들면 들수록 조중동의 몫은 커지고 있다. 조중동을 키워주는 건 수구기득권세력이 아니라 노무현과 노 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언제까지 조중동에 휘둘리는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강 교수는 노대통령 열혈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그는 "열혈 지지자들의 무조건적이고 전투적인 노 정권 지지는 지금 노 정권에게 독(毒)이 되고 있다"며 "비극은 이 사실이 주로 노 정권에 대해 원초적인 적대감정을 갖고 있는 세력에 의해서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열혈 지지자들은 노 정권에게 더욱 무조건적이고 전투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를 발견한다. 노 정권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들마저 조중동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그것이 조중동에 의해 지적되면 그건 배척해야 옳은 것인 양 간주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 분위기는 살벌하기까지 해서 온건한 지지자들조차 입도 열지 못한다. 까딱하다간 변절자로 욕먹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유시민에게서 부끄러움의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
강 교수는 노정권의 권력운영 방식을 '헤게모니 투쟁'으로 규정하며 신랄한 비판을 가햇다.
그는 "노 정권의 행태적 정체성은 80년대 반독재투쟁을 하던 시절의 그것, ‘진영 의식’과 ‘헤게모니 투쟁’"이라며 "노 정권이 목숨을 건 모험주의도 불사했던 건 모두 헤게모니 투쟁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라크 파병 건에는 대단히 신중하거나 소심하거나 비굴했다. 그건 헤게모니 투쟁과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라고 규정했다.
강 교수는 이어 "노무현의 허황된 진보 수사는 지지자 잡아두기용이다.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석에서라도 노무현의 실속 없는 전투적 자세를 비판하면 날아오는 답은 늘 같다. 노무현을 둘러싼 적(敵)의 규모와 사악함의 강조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이는 김대중 정권 때부터 유행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던 게 수구기득권세력의 공격이었던가? 아니었다. 내부에서부터 무너졌다. 노무현 지지자들은 김대중 정권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예전에 설전을 벌였던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을 향해 화살을 돌려 "유시민에게서 부끄러움의 능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는 지금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니면 노 정권이 무너진다는 ‘독수리 5형제’ 정신으로 충만하다. 그에게 있어서 정치의 본질은 싸움이며, 그것도 혈투(血鬪)다"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이어 "노 정권은 수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혈투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혈투로 계속 성공해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가능성이 없진 않다. 대안 세력이 없거나 노 정권보다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하지만 이 과정에 "노 정권이 내세웠던 원래 목표와는 달리,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염증은 더욱 깊어질 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염증’을 팔아 먹고사는 인구의 규모가 만만치 않은 만큼 너무 우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적(敵)’은 내부에 있다**
이처럼 신랄한 비판을 가한 강 교수는 결론적으로 노대통령에게 '독선의 정치'를 그만두라는 조언을 했다.
강 교수는 "노무현은 독선(獨善)의 기운을 빼야 한다"며 "아무리 쓰레기 같은 수준의 비판이라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일리도 있고 쓸모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왜 내 진심을 몰라주느냐? 피를 나눈 부모형제간에도 진심을 몰라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법인데,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억울해하고 답답해하는 건 과욕이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노무현의 보이지 않는 적은 노무현 안에 있다"며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무현은 자신이 매우 겸허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며, 그러나 이어 "또 외람되지만, 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한동안 내가 매우 겸허한 사람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친구에게까지 존댓말을 써서 딸로부터 '아빠는 이상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겸허했다. 그렇게 믿은 것이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그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엄청난 독선과 오만이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라고 실토한 뒤 "그러나 노무현의 독선과 오만은 감히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대인관계에서 고개를 낮추고 겸허하게 행동한다고 겸허한 게 아니다. 속이 더 중요하다.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그 누구 못지않게 ‘독선과 오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다. 그게 바로 노무현의 보이지 않는, 가장 큰 적이다"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의 이같은 글은 그동안 그의 글이 발표될 때마다 그러했듯 금명간 거센 반격을 받을 게 확실해, 앞으로 이 글을 둘러싼 적잖은 논쟁이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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