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단일화는 평화·개혁세력들에게 난해한 선택이 아니라, 1987년의 패배를 반복할 것이냐 아니면 1997년 같은 승리를 다시 맛볼 것이냐는 단순한 선택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황태연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
"후보단일화 논리는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승리지상주의'다. 후단협의 논리는 정태적이며 97년 대선 경험에 함몰돼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평화적 정권교체'와 '한나라당 집권 저지'는 결코 같은 무게의 명분이 아니다."(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후보, 합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현재 대선 국면에 던져진 최대의 화두이자, 향후 정국의 최대 변수다.
이 화두를 둘러싸고 황태연, 강준만 두 논객이 맞붙었다.
***현 대선국면의 최대화두 '후보단일화'**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번 대선구도를 '평화·개혁세력과 냉전·수구세력간 대결'로 규정하며 단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로 상징되는 냉전수구 세력의 집권을 막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이다.
반면 후보단일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지금의 후보단일화 주장은 지난 87년 YS와 DJ간 후보단일화, 97년 DJP 연합과는 대의명분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지금의 후보단일화 주장은 '노무현 죽이기'에 불과하며 명분 없는 후보단일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행동에 들어선 분위기다. 반노파인 민주당 후단협뿐 아니라 대표적 재야의원인 김근태 의원과 386 세대의 상징격인 김민석 전의원까지 가세해 후보단일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근태 의원은 16일 자신의 후원회에서 "이번 대선의 성격은 지난 87년 대선과는 다르지만 1대 2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점에선 양상이 비슷하다"며 "냉전기득권파가 집권하는 것을 막고 시대정신인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많은 난관이 있더라도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후보단일화를 주장했다.
김민석 전의원은 17일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준)'에 전격 합류하면서 "이 길이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선 승리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마지막 대안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노·정 후보단일화 문제는 이제 정치권의 범주를 넘어서 진보적 지식인 등 진보진영 내에서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대선때 DJP 연합의 타당성을 함께 역설했던 황태연 동국대 교수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이번에는 <한겨레 21>(10월 24일자)에서 후보단일화 문제를 놓고 정반대 입장에서 서서 뜨거운 지상 논쟁을 벌인 것이다.
황 교수는 "작은 절차적 정당성과 색깔에 집착하는 건 평화·개혁세력의 소멸을 부른다"며 후보단일화를 지지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후단협 논리는 97년 대선 경험에 함몰된 정태적 발상"이라면서 "시대적 대세가 노무현을 원한다"며 후보단일화 불가론을 주장했다.
***황태연, "87년 패배와 97년 승리 중 선택하라"**
황 교수는 평화·개혁세력에게 후보단일화는 난해한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1987년의 패배를 반복할 것이냐 아니면 1997년 같은 승리를 다시 맛볼 것이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민주화 세력들이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소탐대실한 87년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97년 성공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 평화·개혁 세력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이는 승리지상주의가 아니라 중차대한 민족사적·세계사적 변화의 시기에 민족화합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영구평화를 정착시키고 이 평화를 바탕으로 반도강국을 건설해 통일비전을 구현할 '중도개혁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지면 냉전·수구 세력은 천재일우의 민족화합과 민족대도약의 찬스를 다 망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남북평화와 개혁을 통한 민족대도약'의 대국적 관점에서 노선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 간의 구체적 정책 차이는 '중도연합'개념을 가로막을 만큼 큰 것이 아니라는 게 황교수의 주장이다.
또 그는 민주당 지지층의 이번 추석 민심은 "어떻게든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막아야 하므로 후보단일화가 안되면 지지자들이라도 '될 놈 밀어주는' 식으로 표를 몰아주어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됐다"며 "유권자 차원의 자연발생적인 '단일화'는 자칫 '표쏠림'이 아니라 '표분산'으로 귀착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앙정치세력 차원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평화·개혁세력의 헤게모니 요구만 충족되면 가급적 많은 세력을 끌어모아 '국민통합세력'으로 올라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화개혁과 냉전회귀의 민족사적 갈림길에서 평화·개혁세력은 자민련까지 아우르려는 따뜻한 '덧셈정치'로 단일대오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군왕도 민심을 잃으면 옥좌를 내놓아야 했고 대통령도 지지기반을 잃으면 하야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작은 절차적 정당성과 자기 색깔에 사로잡혀 후보직을 고집하면 그것은 97년 당시 후보직을 던진 JP의 내공만도 못한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강준만 "2002년 대선의 최대명분은 정치의 재탄생"**
이에 반해 강준만 교수는 후단협에 대해 "당신들은 '자해'를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강 교수는 후단협 논리에 대해 "한마디로 얘기해 승리지상주의"라며 "이런 정치공학적 발상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단협의 논리는 정태적이며 97년 대선 경험에 함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평화적 정권교체'와 '한나라당 집권 저지'는 결코 같은 무게의 명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DJP 연합이라는 정치공학이 먹힐 수 있는 당시 상황과 지금 상황은 크게 다르거니와 후단협이 꿈꾸는 정치공학은 DJP연합과는 차원을 달리해 본말의 전도까지 낳은 수준의 것"이며 "유권자들이 그 차이를 눈감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97년 대선의 최대 명분이 정권교체였다면 2002년 대선의 최대 명분은 '정치의 재탄생'이라고 보았다. 그는 "민심은 '부패정권 청산'을 넘어서 '깨끗한 정권의 탄생'을 원한다"면서 "구태의연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노무현식 파격과 그 파격에 상응하는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가장 유력한 재집권 카드"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명분이 없거나 약해 실패할 것이 분명한 '후보단일화'로 한나라당 집권을 돕는 자해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해 문자 그대로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고 그걸 실천에 옮기라"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강 교수는 "민주당의 지리멸렬상에서 후단협보다 문제가 되는 건 김근태 고문의 이상한 처신"이라고 후보단일화 주장의 선봉에 서있는 김근태 의원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한국의 망국적 학벌주의가 교묘한 위장을 통해 집요하게 노 후보에게 타격을 입힌다는 점에서 김 고문의 전폭적 노 후보 지지는 더욱 소중하다"면서 "김 고문이 시대적 대의를 앞세우는 대국적 차원에서 노 후보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그 순간 '노풍'은 다시 무섭게 불 것"이라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지지율 변화가 논쟁의 최대 외적변수**
이처럼 불붙은 '후보단일화 논쟁'은 인터넷상에선 이미 상당 기간 전부터 시작된 화두로 치열한 설전이 거듭돼 왔다. '황태연 대 강준만' 논쟁은 이처럼 인터넷상에서 진행돼온 화두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는 과연 논쟁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이다. 자칫 논쟁이 감정적 차원으로 발전할 경우 87년 양김 단일화 논쟁후 10여년간 재야가 그 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듯,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가 일각에선 이같은 논쟁의 큰 외적변수는 노무현,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변화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질 경우 후보단일화론이, 반대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질 경우에는 노무현 독자생존론이 힘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살아있는 생물인 정치가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한 본격적 대선 국면의 도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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