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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트럼프의 승리'..탄핵 사태가 남긴 것들

[분석] 공화당의 계산된 '트럼프 감싸기'...만신창이 된 ‘미국식 민주주의’

공식적으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재판의 최종 판결은 오는 5일(현지시간) 오후 4시 상원에서 표결을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결과는 쉽게 예측 가능하다. 상원의원 67명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탄핵안은 부결될 것이다. 5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중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을 표명한 의원은 한명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말부터 4개월간 자신을 괴롭히던 탄핵 이슈로부터 곧 벗어날 예정이다.

'정치는 생물'이라며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해임)안 부결은 탄핵사태 시작 때부터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결과다. 4개월 전 예측이 현실이 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사태가 확인시켜준 사실들에 대해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1. 2020 선거 앞두고 '트럼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화당'

지난 1월 16일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상원으로 송부된 이후 가장 큰 변수는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의 증인 채택 여부였다. 존 볼턴 전 보좌관은 오는 3월 출간할 예정인 책에 트럼프 대통령 탄핵 여부와 관련해 핵심적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31일(금요일) 밤 상원의 존 볼턴의 증인 채택 여부와 관련된 표결 결과, 찬성 49명, 반대 51명으로 증인 채택이 무산됐다. 공화당 의원 중 볼턴의 증인 채택에 찬성한 의원은 밋 롬니, 수잔 콜린스 2명에 그쳤다.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이나 이번 회기를 끝으로 은퇴를 하는 라마 알렉산더 의원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알렉산더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탄핵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의 증인 채택이 실패하는 순간, '탄핵 드라마'의 막은 사실상 내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민주당 입장에서 챙긴 정치적 이득은 최종 표결을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예정된 4일에서 하루 지난 5일로 미룬 정도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당이 탄핵안 표결을 트럼프의 국정연설 다음날로 미룬 것에 대해 "작은 승리"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이 상원으로 송부되던 시점부터 공화당에 "2주 안에 마무리 지으라"고 종용했다. 탄핵안을 부결시키고 '무죄 선거'를 받은 대통령으로 국회의사당에 입장해 국정연설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원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31일 볼턴 전 보좌관 증인 채택이 부결된 뒤 최종 표결도 밀어붙이려 했지만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또다른 기사에서 매코널 대표의 전략 덕분에 상원 탄핵재판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구상대로 마무리 지어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매코널 대표는 거의 매일 공화당 의원들과 전략회의를 열었고, 테드 크루즈 의원을 통해 볼턴 전 보좌관을 증인으로 부를 경우 헌터 바이든(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매코널 대표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탄핵 절차를 전적으로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의원들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에 탄핵절차를 누구보다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이 이탈표가 예상되는 의원들에게 일절 접촉하지 않은 것도 매코널 대표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이같은 매코널 대표의 '관리' 전략과 하원에서 탄핵절차가 시작된 이래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 '탄핵 반대' 여론 때문에 상원에서 공화당은 흔들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의 철저한 '트럼프 비호'가 오는 11월 있을 선거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 및 주지사를 새로 뽑는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2. '답정너' 유권자들, 민주당의 선택은?

'트럼프 탄핵 사태'가 확인시켜준 또 하나의 정치 현실은 공화, 민주당 양당 지지자들로 뚜렷하게 양분된 여론 지형이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이미 양극화된 정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트럼프 집권 동안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각종 정치적 의혹이나 공격들에 대해 '가짜 언론과 야당의 정치적 음해'라면서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위해 싸워줄 것을 요청했고, 이번 탄핵 사태 때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반복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 하루에 수십개에서 많게는 150건(1월 22일, 상원 탄핵재판 이틀째)의 트위터 메시지를 올렸다. 야당과 언론을 비판하며 지지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을 들어맞았고, 탄핵 사태 시작부터 끝까지 탄핵에 대한 여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과 나란히 갔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90%에 육박했고,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10%를 밑돌았다. 전체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여론은 때로는 50%를 갓 넘기기도 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선 적은 없었다. 탄핵 반대 여론은 40% 초중반대를 꾸준히 기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층과 엇비슷한 숫자다. 미국 정치 분석가들은 30% 후반에서 40% 중반에 이르는 트럼프 열성 지지층이 현재 정치 여론의 흐름을 크게 좌우한다고 보고 있다.

애당초 이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은 먹히지 않는 이슈였다. 앞서 '러시아 스캔들'(러시아가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 때부터 확인된 '답정너' 유권자층(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어떤 정치적 이슈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정 지지층)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 셈이다.

▲ 트럼프 대통령 탄핵 해임에 대한 여론조사 추이. 민주당 지지자들은 절대적인 다수가 찬성하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절대적인 다수가 반대하는 경향이 계속 됐다.


이들의 존재는 2020년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 고민을 안겨준 셈이다. 탄핵 사태가 사실상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면서 트럼프 지지층의 결집도를 재확인한 민주당 입장에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견고한 트럼프 지지층을 상수로 둘 때, 중도 전략으로 가서 '스윙 보터'(양당 지지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유권자)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유리한 싸움일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에 맞서는 선명한 노선과 정책을 내세워 '바람'을 기대하는 것이 대세를 뒤집을 수 있는 길인가? 아니, 이 두 가지 전략 중 어느 하나를 성공적으로 체화할 인물이 현재 후보들 중에 존재하나? 민주당이 풀어야할 숙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3. '협상'이 본질이었던 '미국 정치 시스템'의 붕괴...대통령 권한만 강화됐다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 예고된 '패배'인 탄핵을 밀어붙여서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탄핵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3번째로 하원에서 탄핵된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특히 탄핵 과정에서 확인된 트럼프 대통령의 '사익 추구 정치' 행태는 대선 정국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대한 의구심은 상원 회의장에서 선거운동 공간으로 그 무대를 옮겨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독불장군' 스타일인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정국이 마무리된 이후에 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 내지는 도덕적 책임 차원에서 다른 대통령이라면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할 가능성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것을 민주당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탄핵 사태 때 일부 확인된 '사실'들을 '정치적 공방'의 영역에 남겨둘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민주당이 얻은 성과는 현 시점에서는 초라해 보인다.

CNN은 탄핵 사태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미국 정치 시스템의 본질은 타협(compromise)이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항상 제로섬이고 할 수 있을 때마다 경쟁자를 차버려야하는 시스템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 언론은 "타협은 마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현재 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비 뿐"이라며 "의회의 마비는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쥐게 했다"고 '트럼프 탄핵 사태'가 보여준 정치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은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다음 주 월요일 시작하는 선거(2020년 대선의 첫번째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런(정치 시스템)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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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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