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으로 볼 때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1천달러를 넘을 때 쇼비니즘이 극성을 부리곤 했다. 중국의 1인당 GDP가 지난해 1천70달러로, 1천달러를 막 돌파했다. 요즘 중국이 하는 거친 행태가 꼭 그렇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선 반드시 따라잡아야 할 상대로, 한국에 대해선 깔아뭉개도 되는 존재로 우습게 보는 경향이 짙다. '지금 우리보다 조금 잘 산다고 해서 까불지 말라'는 식이다. 중국을 정확히 보아야 할 때다."
중국에 정통한 한 경제기관 고위간부의 말이다.
***"한족, 이민족에게 복속했을 때 강대국 행세"**
그는 "우리가 마치 중국을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중국을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중국통들 사이에 돌고 있는 얘기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중국을 일주일정도 둘러본 후에는 책 한권을 후딱 쓸 수 있다. 한달정도 둘러본 후에는 간신히 레포트 하나를 쓰게 된다. 일년이상 둘러보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만큼 중국을 정확히 알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껍데기 인상이나 정보에 기초한 '중국관(中國觀)'이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 언론이나 정치권 및 기업 등의 중국관이 너무나 일천하며, 말 그대로의 '중국전문가'가 너무 적다는 따가운 지적이다.
그는 근래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 지도층도 중국에 대해 역사는 역사로 반박할 정도의 역사 지식과 역사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얼마전 중국에서 중국 지도층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들을 시쳇말로 '열 받게' 만들었던 자신의 '역사 반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보고 중국의 변방 운운하는데, 중국 한족(漢族)이 뭐 대단한 민족인가. 솔직히 말해 중국사를 보면, 한족이 이민족에게 복속했을 때 중국은 세계사에서 강대국 행세를 하지 않았던가. 한 예로 당나라를 건국해 중국의 위명을 크게 떨친 이세민은 선비족 출신이었고, 원나라가 전세계에 떵떵거릴 수 있었던 것도 몽골의 징기스칸 후손들이 중국을 지배했기 때문 아닌가. 또한 청나라의 지배층 역시 중국인구의 5%에 불과한 만주족 아니었던가. 이민족이 지배할 때 중국이 세계속의 강국이었지, 한족이 지배했을 때 중국은 뭐 내세울 게 있었던가."
중국의 '중화주의', 환언하면 '한족 우월주의'의 허상에 대한 정면 공박인 셈이다. 아무리 외교라는 게 평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필요가 있는 것일지라도, 상대방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릴 때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치면서까지 대차게 맞받아칠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패권주의 대응법**
중국이 요즘 '커진 경제력'에 고무된듯, 연일 '패권주의 냄새'를 풀풀 피우고 있다. 중국이 빈한하던 지난 1954년, 제3세계 외교의 기치로 내걸었던 '평화공존 5원칙' 즉 주권과 상호영토 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평등˙상호이익, 평화공존의 노골적 파기인 셈이다. 현재 중국이 범정부 차원에서 자행하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 등 '역사 침공 행위'는 평화공존 5원칙의 다섯가지 항목 모두를 일일이 위반하는 제국주의 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력이 생기자 '제3세계'의 가면을 벗고 '제국'의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중국을 '깨지지 쉬운 유리그릇'에 비유하며, 지난해부터 노골화된 중국의 역사침공을 애써 '조용한 외교'를 통해 해결하려 해왔다. 북핵 6자회담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위치, 한국경제에서 나날이 커지는 중국경제의 비중 등을 고려한 조처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시에도 많은 학자들은 이같은 정부 대응을 앙이한 상황판단에 기초한 "잘못된 대응"이라고 비판했고, 결국 정부도 최근 더이상 '조용한 외교'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란 본디 '전쟁의 정치적 표현'이다. 그러기에 상대방이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릴 때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초반에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비근한 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 5월 대만 첸수이볜 총통의 취임식때 중국은 주한대사관의 리빈 대사를 통해 취임식에 참여하려는 여야 의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그중 일부가 취임식 참석을 포기하게 만든 일이 있다. 이같은 사실은 취임식에 참석했던 장성민 전의원이 귀국후 그 사실을 폭로해 외부에 알려지면서, "중국의 시건방진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국내여론의 강한 반발을 초래했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후 중국이 보인 반응이다. 중국의 리빈 대사는 사건 직후 총통 취임식에 불참한 6명의 국내 의원들을 초청해 '감사의 만찬'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장성민 전의원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며 "오해를 풀고 싶은데 제발 자리를 한번 주선해달라"며 신신당부했다. 이같은 제안은 장 전의원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으나,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거센 반중(反中)여론이 형성된 데 대한 리빈 대사와 중국정부의 당혹감을 여실히 읽을 수 있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리빈 대사의 인책성 교체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중국에 대한 경고, "우리를 反중국전선으로 몰지 말라"**
김대중 정부 시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외형적으로 북한,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조지 W.부시 미대통령의 MD(미사일방어) 동참 요구를 단호히 거절해 공개석상에서 "This Man"이라는 모욕까지 당할 정도로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보내야 했다. 반면에 중국은 장쩌민 주석은 김대통령을 사석에서 "따꺼(大兄)"라는 더없는 극존칭으로 부를 정도로 더없는 감사의 뜻을 표시해왔다. DJ의 선택은 강대국간 패권전쟁에서 우리의 무게중심을 분명히 하기 위한 어려운 '등거리 외교' 결단이었다.
이처럼 "따꺼" 운운하던 중국이 그러나 요근래 보이는 태도는 한마디로 '안하무인'이다. '한국 정도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중국의 이같은 오만에는 경제성장에 따른 뿌리깊은 중화주의의 부활이 바탕에 깔려있으나, 다른 측면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때 그렇게 못한 우리의 책임도 적잖다.
중국정부의 태도를 볼 때 앞으로도 역사침공 등 중국의 안하무인적 행위는 계속될 게 확실하다. 이때 우리는 중국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계속 우리국가의 정통성을 흔드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우리도 불가피하게 기존 외교방침을 바꿔 반(反)중국전선에 설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아울러 범국민적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최근 중국정부가 홈페이지에서 해방이전 역사를 전면삭제하고 의원들에게 비자를 발급하게 만든 가장 큰 동인도 다름아닌 범국민적인 '중국비난 여론'이었다. 앞으로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정부가 당당한 외교를 할 수 있게금 만드는 가장 큰 힘도 다른아닌 국민여론인 것이다.
이같은 국민여론을 상시적으로 조직화하고 강화하기 위해선 '고구려사 지키기' 운동을 가열차게 하는 동시에, 중국 한족정권이 자행한 '티벳 역사죽이기' 등 중국의 적나라한 실체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중국 바로알기'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의 냉소, "한국은 서독같은 경제적-정치적 수준 못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경제적 국력의 극대화 노력이다.
몇년전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한국 보수층 일각에서 '북한 흡수통일론'이 제기됐을 때 일이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통합하듯 남한도 북한을 흡수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중국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이때 중국을 방문한 우리측 인사에게 "남한은 서독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정치적으로 안정되지도 못하다"며 '흡수통일론'에 냉소적 반응을 보냈다. 중국이 지금 우리를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이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북한 흡수통일' 운운 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지향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중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근본시선대로, 요컨대 "경제적-정치적으로 별 볼 일 없는 한심한 나라"가 돼서는 안된다. 비록 땅덩어리나 인구로 따지면 중국에 비할 바 안되나, 정치-경제적으론 더없이 탄탄한 '강소국(强小國)'이 될 때만 비로소 우리는 중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에 당당한 대응할 수 있고, 주변국의 분단고착화의 방해를 뚫고 통일까지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침공은 내부에서 에너지를 소진하며 쇠락의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그 에너지를 외부로 분출하라는 시대적 경고음에 다름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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