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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물주', 돈 벌려면 세입자 한 번 내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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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물주', 돈 벌려면 세입자 한 번 내쫓아야 한다

리모델링 이유로 내쫓은 뒤 건물주 누나 입점..."임차 상인 보호 충분치 않아"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9년 째 미용실을 운영하던 홍명기 씨. 4년 전, 홍 씨가 입점한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는모델링을 한다는 이유로 홍 씨를 비롯한 임차 상인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리모델링을 할 경우, 세입자들은 권리금을 보전 받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 다른 세입자들은 법적 분쟁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하나둘씩 짐을 꾸려나갔다.

반면, 홍 씨는 나가지 않고 버텼다. 이곳에 들어올 때 냈던 권리금을 받지 않고는 어디에서도 미용실을 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9년 전 이 가게를 열 당시, 전 세입자에게 1억 원이 넘는 권리금을 줘야 했다. 그 사이 시세도 많이 올랐다.

나가지 않고 버티던 홍 씨에게 건물주는 명소소송을 진행했고, 2년여간의 소송 끝에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건물주 손을 들어줬다. 홍 씨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관련기사 : 건물주가 '갓물주'인 이유...한 사람을 지옥에 보냈다)

홍 씨는 지난달 건물주로부터 강제집행을 당해 쫓겨났다. 현재는 지인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 쫓겨난 세입자 점포에 들어온 건물주 누나 약국. ⓒ프레시안

세입자 내쫓은 자리에 건물주 누나가 약국 차려

주목할 점은 이렇게 홍 씨처럼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쫓기는 세입자들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건물주들이 리모델링을 할 경우, 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세입자들을 무일푼으로 내쫓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정작 그렇게 세입자를 내쫓은 뒤, 계약해지의 근거가 되는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경우 역시 빈번하다는 점이다. 결국, 건물주가 '권리금'을 빼앗기 위해 '리모델링'이라는 탈법 수단을 사용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권리금'을 건물주는 빼앗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해보면 홍 씨 미용실이 있던 건물 1층에는 1월 초 새로운 약국이 입점했다. 이전에는 '깔세'라 불리는 단기 임대를 하던 장소다. 2017년까지슈퍼마켓 자리였으나 역시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했다. 슈퍼마켓 주인은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갔다.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 씨는 "약국이 입점한 곳은 2017년까지 슈퍼마켓이 있던 곳"이라며 "슈퍼마켓 역시 리모델링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면서 권리금 2억 정도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공간에 약국이 입점한 것이다. 문제는 이 약국 주인이 건물주의 누나라는 점이다. 결국, 건물주가 세입자를 내쫓은 뒤, 그 자리를 자기 가족에게 임대한 셈이다. 전형적인 건물주의 '권리금 빼앗기' 방식이다.

관련해서 건물주 황모 씨는 "해당 약국은 누나가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누나에게 점포를 임대한 이유를 두고 "(누나가) 다른 건물에서 계약해지를 당해 선의로 임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황 모 씨는 "다른 가게의 명도가 완료되면 (누나 가게도) 명도한다는 특약이 걸려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임차 상인들과 계속되는 분쟁에 지쳐 지난 9일 건물을 매도했다"며 "리모델링은 새로운 건물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재건축' 한다고 신고해도 '안 하면 그만'

쌔미(활동명)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활동가는 "재건축을 이유로 임차 상인과 계약을 해지하고 실제로 재건축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며 "소송 당시에는 법원에 재건축 사유와 일정 등을 소상히 제출해야 하지만 소송이 끝난 후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재건축 계획을 취소하는 등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많다"고 지적했다.

쌔미 활동가는 "그럴 경우, 이미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쫓겨난 임차 상인으로서는 손 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카센터 영업을 하던 이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 씨가 2007년부터 카센터를 운영하던 건물은 2013년 건물주가 바뀌었고, 2018년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결국, 이 씨는 권리금 6000만 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보증금만 반환받고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 씨가 퇴거한 지 4개월 후, 이 씨 카센터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업체가 입점했다.

쌔미 활동가는 "사기로 고소하는 것 정도를 검토할 수 있지만 소송 자체가 워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제도적으로 대항할 방법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15년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권리금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 입점한 가게에는 해당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를 통보받는 상인들은 2015년 이전에 입점해 권리금 보호를 받기 어렵다.

▲홍 씨의 미용실이 있던 건물. 다른 임차 상인들도 리모델링을 이유로 가게를 비웠다. 나간 가게의 간판에는 락커로 '철거예정'이라 써졌다. ⓒ프레시안

"건물로 돈 벌려면 세입자를 한번 내쫓아야"

건물주들이 이렇게 하지도 않는 재건축 등을 이유로 세입자들을 내쫓는 이유는 권리금을 가로채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일푼으로 기존 세입자가 나간 자리에, 새 세입자를 받으면서 권리금을 받는 것이다. 물론, 건물주는 권리금을 받을 수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즉 월세에서 일정 금액의 권리금을 반영하는 식이다.

하지도 않는 재건축, 즉 '가짜 리모델링'은 이렇게 '권리금 빼앗기' 이외에도 다른 혜택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건물주가 구청에 리모델링을 1000만 원 들여 한다고 신고하면, 신고한 금액만큼은 '건물 가치를 올린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렇기에 이 금액만큼 건물 양도 시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다.

종합하면 건물주는 임차 상인들을 한번 내쫓아야 리모델링을 핑계로 영수증 장난도 치고, 권리금도 빼앗고, 임대료도 대폭 올려 결국 건물을 되팔 때 시세차익을 크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모든 것은 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부동산중개업자 A 씨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상인들을 보호해주려면 보완해야 하는 사각지대가 너무나도 많다"며 "지금 허점투성이의 상임법은 건물주들에게 '나빠야 돈을 벌 수 있다'고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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