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양파 농사가 풍년이라 양파 가격이 폭락했다. 수확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봤자 생산비도 건지지 못해 그냥 갈아엎는 밭이 많다는 뉴스를 보니 농민들 시름이 깊어질 것이 걱정이다. 양파나 쌀과 같은 농산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생필품이지만, 가격이 싸다고 해서 무한정 수요를 늘릴 수 없다.
부동산은 다르다. 양파나 쌀처럼 인간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재화라는 점은 같지만,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는 기대가 클수록 무한정 수요를 늘릴 수 있다. 또한 부동산은 공급이 늘어나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부동산은 투자재로 인식돼, 가격이 계속 오를 것 같으면 끝없이 투기 수요가 유입되기 때문이다.
과연 경기가 나빠서 힘든 걸까?
법원 감정인으로 일하다보면,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임대료 분쟁과 권리금 분쟁이 제일 많다. 현장에 나가보면 한결같이 듣는 말이 있다. 요즘 경기가 너무 나쁘다, 가게를 내놓아도 나가지 않는다, 예전 같지 않아서 상권이 많이 죽었다, 장사하기가 힘들다는 등의 말들이다. 그런데 정말 예전에 비해서 지금이 살기 힘들고 경기가 나쁜 걸까?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역의 특징은 상가 투자자가 유입돼 급격히 임대료가 올랐다는 것, 주변 지역에 유사한 성격의 대체 상권이 생겨서 상권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이다. 삼청동 상권은 서촌, 익선동으로 분산, 이동하였고, 홍대, 신촌 상권은 연트럴파크 연남동과 망리단길로, 이태원 상권은 경리단길과 해방촌으로 분산되었다.
잘나가던 상권이 지속되지 못하고 너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이동해, 유사한 성격의 상권이 생겨나다 보니 기존 상권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다 경기가 나쁘다고 느낄 수밖에. 한때 장사가 잘 되서 돈 좀 만져본 임차인들은 유동인구가 줄고 매출이 줄면 경기가 안 좋다고 푸념할 것이다. 매출 잘 나오는 좋은 상권이라며 권리금 비싸게 주고, 인테리어 비용 투자해서 들어온 새 임차인도 점차 쇠락하는 상권에 한숨만 짓고 있을 터다. 높은 임대료 수입을 기대하고 많은 대출을 끼고 상가 건물에 투자한 건물주도 임차인들의 한숨소리와 늘어가는 공실에 불만이 쌓여 있을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신규 상권의 기존 임차인 역시 부담을 안고 살아간다. 끊임없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확장하는 신규 상권에서 내몰리는 종전 임차인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다.
상권은 왜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 걸까? 대한민국 국민의 부동산 불패 환상과 낮은 금리에 기대어 갈 곳 없는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현상과 함께,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하여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영업자 대기수요, 준비되지 않은 예비창업자에게 창업이 손쉬운 것처럼 포장하여 점포수를 늘리려는 프랜차이즈 업체, 끊임없이 건물주와 임차인을 부추겨 더 많은 임대료나 권리금을 받아주겠다고 유혹하는 일부 창업 컨설팅업체나 부동산의 마케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비싼 부동산 가격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가?
그런데 우리에게 부동산 가격을 끝없이 올릴만한 능력이 있을까? 즉, 우리에게 비싼 임대료의 상가가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는 물건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는 물건이 월등히 많아졌다. 우리는 샴푸, 화장품 같은 생필품은 물론이고 감자, 양파와 같은 농산물도, 심지어 입어보거나 신어볼 수 없는 의류나 신발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다.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간 대형 마트나 백화점도 매출부진을 겪고 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다. 은행 영업점은 역세권 1층에서 자리를 빼고 점차 온라인 영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은 페이스북에 개인정보유출 책임을 물어 약5조8000억 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 엄청난 금액의 벌금도 놀랍지만, 페이스북이 이정도의 벌금을 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사이버 세상의 영향력과 온라인 상거래의 규모가 커지면서 게임업, 온라인 광고업, 물류업, 정보관리업 등의 관련 산업이 커지고 새로운 직업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중이다. 우리가 부동산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동안, 사이버 공간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매출과 이윤이 창출되고 이를 통하여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이버 관련 산업은 우월한 입지, 즉 임대료가 비싼 부동산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르나?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생산 활동과 관계없이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노후 대비 수단이자 투자 상품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온라인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사장님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도, 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보상금을 많이 받은 땅주인도 다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 가격은 생산 활동에 기여하는 만큼 상승하지 않는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잉여가 부동산으로 몰리다보니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부동산 컨설팅, 창업컨설팅, 부동산 전문가 등의 이름으로 자금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을 몰고 다니면서 변화하는 상권을 따라가 상권 이동을 가속화하고, 온 천지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를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결국 상권이 너무 빠르고 쉽게 확장하고 이동하게 되면, 종전 상권의 임차인, 새로운 상권의 임차인뿐만 아니라 종전 상권의 건물주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보게 된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청담동 명품거리, 종로3가, 이대앞 상권 등 이미 쇠락한 곳은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생산력의 향상을 전제하지 않는 부동산 투자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다. 부동산을 거래하는 데는 세금, 부동산수수료 등을 포함하여 큰 위험과 비용이 따른다. 눈치 싸움에 발 빠른 컨설팅업체 쫓아다니며 이동하는 상권을 끊임없이 따라 다니는 이만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컨설팅비용, 중개수수료, 세금, 관리비용, 기회비용, 임차인과의 분쟁비용 등을 고려하고 나면 실속이 별로 없다. 하지만,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누구누구가 부동산에 투자해서 얼마가 올랐다더라, 수십억을 벌었다는 광고성 기사가 심심하면 한 번 씩 나온다. 돈 가진 자들끼리 폭탄 돌리기를 하는 와중에 임차인들은 안정적인 이용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모두가 불확실성과 운에 재산을 내맡기는 처지가 될 뿐만 아니라, 본래의 생업을 내팽개치고 부동산업체를 따라다니며 부동산 정보만을 쫓아다니는 좀비 신세로 전락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 보호 규정의 의미
부동산이 과연 이용의 대상인지, 투자의 대상인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의 욕망에 기대어 부동산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을 내모는 구조 하에서, 생산성에 기반하지 않은 부동산 가격 상승은 결국 사회구성원과 공동체 모두를 공멸로 이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가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 규정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적용 범위를 결정하는 환산 보증금 기준을 증액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며, 임대료 인상률을 9%에서 5%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2015년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상 상가권리금 보호 규정이 법제화되었다.
그 이후에도 권리금 인정 요건, 규정의 해석에 대한 하급심 판결이 엇갈려왔는데, 권리금과 관련하여 지난 5월과 7월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임차인이 주선한 새 임차인과 임대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힌 임대인(건물주)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한 대법원은 임대차기간 5년을 초과해서 임차인이 계약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때에도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부동산 소유권과 이용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부동산 이용자의 권리를 일부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투자자는 부동산 투자 시 이용권에 따른 소유권 제한의 정도를 반드시 고려하게 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부동산 투자수익률은 하락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판결의 실효성을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권리금을 어떤 방법으로 산정할 것이며,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지에 관한 부분이다.
권리금 법제화 및 대법원 판결 이후의 과제
권리금이란 영업자가 갖고 있는 영업시설, 거래처, 신용, 영업상 노하우, 상가건물의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유형·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이용대가다. 임대인, 임차인에게 보증금과 차임 이외에 지급하는 금전 등의 대가로 규정된다.
권리금 분쟁 시 감정평가 현장을 보면, 영업시설의 목록이나 구매영수증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무형자산의 산정 기준이 되는 손익계산서 등 수익 자료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과 상이한 경우가 상당수다. 이러한 현장 상황에 기반해 불충분한 자료를 근거로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세부적 연구도 전무한 상태다.
권리금은 임대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우 임차인이 누리는 초과 이익이 권리금과 합쳐져서 거래되므로, 임대료 분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건물주가 바뀌면서 갑자기 임대료를 올렸을 경우 늘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어느 곳도 임대료 등록 제도를 마련해두지 않아, 임대료 관련 데이터 구축도 전무한데다 감정평가사는 지역의 임대료를 조사할 권한도 없다. 권리금 분쟁으로 법정까지 온 사건의 경우 법원에 등록된 감정평가사가 감정평가를 진행하게 되는데, 양측 당사자가 취득해온 정보를 기초로 하여 무작위로 탐문하는 방법으로 시장조사를 해야 하고, 그마저도 지역 부동산의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감정평가사들 사이에서 권리금 감정평가가 기피대상이 된 이유다.
주식회사 한국감정원이 국가예산으로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과 상가 권리금을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기는 하지만, 감정평가사 입장에서는 의미 없는 수치만 열거된 수준인 무용지물의 통계다. 표본의 수, 조사 방법, 조사 내용이 무엇인지, 현장에 나가보기는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서울의 도매 및 소매업종의 2018년 평균권리금이 5325만 원라는 수치가 제대로 검증된 결과인지도 의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권리금 법제화를 다룬 대법원 판결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는 달리,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조정하고 규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전무하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하여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이 신기할 지경이다.
상가 권리금 등록제 시행하자
주택임대차 시 임차인이 주민센터에서 임대차계약사항에 관한 확정일자를 받는 것처럼, 상가임대차의 경우에도 임대차내용 및 권리금을 등록하는 등록 제도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권리금 내용을 등록하면서 유형 자산의 구체적인 시설 목록과 영업 권리금이라도 구분해서 등록하도록 제도를 시행했으면 좋겠다. 이런 기초적인 자료가 있다면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경우에 분쟁조정위원회 등을 통해서 조정을 유도하는 것도 훨씬 수월하고, 유사한 분쟁에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 상가권리금이 어떤 원리에 의하여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는지를 시장 참여자들이 충분히 예측가능하게 된다. 어떠한 공신력 있는 정보 없이 오로지 부동산컨설팅업체에 의존하여 시장에 참여해야하는 건물 투자자, 임대인, 임차인에게 예측가능하고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해야 시장이 투명해지고 왜곡되지 않는다.
시설 권리금과 영업 권리금 내역, 상가임대차 내역의 등록과 투명한 관리, 적절한 제공은 현재 지역별, 가격대별, 소유자별, 용도별로 매우 불균형하게 산정되어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공시지가의 현실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 된 정보에 기초하여 분석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해야한다. 언제까지 부동산업자들의 '카더라' 정보에 의존하여 이리저리 몰려다닐 것인가. 부동산을 이른바 최고의 투자 상품으로 놔둘지, 부동산 환상이 지속되도록 방임할지, 우리 사회의 모든 잉여를 부동산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시스템을 유지할지 우리가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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