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은 자신의 부친이 일제시대에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후 월북해 북한정권의 차관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프레시안〉의 보도(2월28일자 "그 때가 언제입니까?")에 대해 "그 주장은 사실"이라고 확인하며 "아버지의 잃어버린 얼굴을 이제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 자신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소설가 최인호 씨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말한 뒤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소중한 가족들의 얼굴을 잃어버린 유일한 민족일 것"이라며 "언젠가는 그 잃어버린 얼굴들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이산가족의 상봉과 민족의 화해 문제와 관련해 정 추기경은 "내 생각으로는 6·25 전쟁 때 쌍방이 비인도적 행위를 많이 저질렀다고 생각한다"면서 "물질적으로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남북이 화해하는 것이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화해에 앞서 먼저 할 일은 서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현재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 안에 '민족화해센터 및 참회와 속죄 성당'을 건립할 계획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정 추기경은 자신의 방북 및 이복형제들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때가 있으면 방문해 만나게 되겠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북한에서 너무나 많은 요구를 해서…"라며 "방문을 조건으로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 추기경은 교황의 북한 방문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의 교회인 북한에는 지금 사제가 한 명도 없다"고 소개하며 "교황께서 북한을 방문하시는 것은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사목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선 북한에 첫 사제가 탄생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라고 말해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 추기경이 이 대담에서 밝힌 부친 정원모(鄭元謨) 씨와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 문제는 그 어디에도 고백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제야 제 입을 통해 직접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주장은 사실입니다. 당시 외조부는 서울 수표동에서 화장 거울, 즉 경대를 만들어 파는 재산이 넉넉한 사업가였습니다. 부친은 줄곧 처가살이를 하셨는데, 아마도 자신의 사회주의 경향이 처갓집에 부담을 준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친께서는 광복이 되자 자진 월북하신 것으로 느껴집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아버지의 존재는 전혀 모르고 자랐습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어머니(이복순·1996년 작고)의 입에서도 한번도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였던 것은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였을 때 호적초본을 떼어 보고 알았습니다. 그때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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