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북 제재'에 그만 집착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북 제재'에 그만 집착하자

[정욱식 칼럼] 같이 변해야 비핵화의 문이 열린다

북한이 경제 제재가 고통스럽다며 비명을 지를 때, 제재 옹호자들은 '제재가 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고 호소할 때에도, 이들은 '제재가 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이 제재에 맞서 정면 돌파를 선언해도 같은 말은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로 '제재 만능주의'이다.

그런데 대북 제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제재가 강해질수록, 그래서 심리적·물질적 고통이 커질수록 북한이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기도 강해지는 속성을 말이다.

신년사를 대체한 김정은 위원장의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어김없이 드러난다. 그는 "조미 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었다"며, 오늘날 북미 관계가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경제 제재 해결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껏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 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나라의 존엄"을 지켜나가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2년 4월 15일 태양절 100주년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 다시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다고 말한다. 왜? "나라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북한의 결기는 고문당하는 사람이 고문에 무릎을 꿇기보다는 끝까지 저항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핵을 만든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아왔는데, 그 제재 결정권을 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모두 핵보유국들이다. 또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도 국제규범을 어기고 핵을 만들었는데, 이들 나라는 제재는 고사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친미 무죄, 반미 유죄'다. 적어도 북한의 눈에는 대북 제재가 부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북한이 저항을 선택한 본질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피고문자가 고문에 굴복하는 것을 자존감을 잃는 것으로 여기듯이 제재에 굴복하는 것은 "나라의 존엄"을 잃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게 '있는 그대로의 북한'이다. 그리고 북한이 이러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제재를 계속 가하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이미 공언한 것처럼 한편으로는 경제적 자력갱생을 통해 그럭저럭 버티기에 나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전략 무기" 개발 및 과시를 통해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김정은이 "객관적 요인(제재)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순응하는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 객관적 요인이 우리에게 지배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제재를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도 협상의 법칙을 바꿔야 한다. 북한에 경제적 고통을 가하는 방식은 북한의 대미 불신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하여 이제부터는 비핵화 프로세스를 제재 해제 프로세스와 병행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뢰 구축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정은은 '미국과의 장기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도 조속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도 아니고 한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선언한 것도 아니다. 북한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다. 그것은 바로 미국도 변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