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불리는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17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징용공 문제에 대한 괴리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좀 더 타협되지 않는 한 한일 관계가 풀리는 게 어렵지 않겠나"라며 문희상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안을 언급했다.
기미야 교수는 "해당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가 되면 이건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일본이 대항조치를 할 거라고 본다. 일본이 한국 산업과 경제에 가시적인 피해가 있도록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만일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고, (한일 양국이) 서로 보복하면서 경제 전쟁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위험성도 좀 있다고 본다. 이건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 기업에 대한) 현금화 조치는 무기한 연기를 할 수 있게끔 하거나 당장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더라도 파국을 면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의) 대법원 판결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도 존중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지불 주체가 반드시 일본 기업이어야 한다는 건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불주체가 반드시 일본 기업이 아니라 재단 등으로 유연하게 만들 수 있고, 거기서 관련 한국 기업이나 일본 기업의 출자가 있어도 된다고 본다"며 "물론 (출자 금액이) 얼마나 모아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판결과 협정을 양립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미야 교수는 한국 정부가 삼권분립을 이야기하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판결을 그대로 반영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판결의 핵심을 잘 살리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며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왜 좀 더 앞서서 해결책을 찾지 않았느냐는 부분이 좀 불만스럽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럼 문 의장도 삼권분립을 어기는 셈인가?"라며 "일본 정부 입장은 아예 협정이 끝났다는 것이기 때문에 판결과 협정을 양립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내야 하는 주체는 한국 정부밖에 없다"면서 한국 정부가 책임을 가지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희상 안‘에 대한 일본 내 평가는 어떠냐는 질문에 기미야 교수는 "한국 사회가 적극 관여하고, 괜찮다고 하면 일본에서는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 아닌가, 그 정도라고 본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10여 년 한국에서 취재활동을 했던 사와다 가츠미 <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은 19일 외교부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내에서는 일단은 안(문희상 안)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없는데 '진짜 되는거야?'라고 의심하는 분위기는 있다"고 전했다.
'실속 없는 싸움' 벌인 한일, 관계 봉합할 수 있나
기미야 교수는 지난 7월 전격적으로 발표된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와 이에 따른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종료 결정 등 일련의 한일 정부 간 움직임에 대해 "한일 모두에게 불이익"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에 대항해 (일본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없다. 일본은 (지소미아가) 있으면 아주 좋은 것이지만 없어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왜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라는 빗나간 선택을 했는지는 조금 의아하다"고 말했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이 조치 역시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에 뭔가 좀 해야겠다는 것으로 수출 관리 재검토 조치를 내렸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것 때문에 한일 경제에서 피해를 보는 건 한국보다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기미야 교수는 "일본 관광업은 한국 관광객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에 어려워졌고 일본산 맥주 소비 등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한국의 (일본산) 반도체 부품 수입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수출 통제 조치는 일본 정부가)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의 타협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보지만 실패했던 조치"라고 꼬집었다.
사와다 외신부장 역시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바보 같은 것"이라며 "실효성이 없고 일본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한국 반도체 사업에 영향을 주면 일본이 다른 나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었다고 분석되고 있냐는 질문에 "수출 업체들은 수출이 지연됐으니 그 부분에서 피해를 본다. 또 지방 관광업체는 영향을 받는다"라며 "물론 일본 경제 전체로 보면 크지 않지만 여러 기업이나 당사자들은 힘들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일 양측이 출혈을 감수하며 외교전을 벌였지만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지난 10월 24일 이낙연 총리가 일본에 방문하면서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기미야 교수는 "이낙연 총리가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에 일본 정부가 안심을 했다"며 "일본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정) 틀을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양측이 갈등을 수습하려는 배경에 대해 "2019년 들어서 북미, 남북 관계가 불투명해지면서 한국이 외교적으로 어려운 처지가 됐다. 여기에 한일관계까지 악화되면 한국 외교가 다뤄야 하는 문제가 너무 커진다고 보고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일본 정부도 북핵 문제 긴장이 고조되면서 한일관계가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공유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미야 교수는 양국관계가 쉽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한일 정부 모두 관계가 안좋은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문재인 정부가 내년 4월 총선까지 일본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19일 기자단과 만난 이종원 와세다대학대학원 교수는 한일 양측 정부가 "역사 원리주의"에 빠져 있어 강제 동원 문제에서 입장 차를 좁히는 것이 쉽지 않다고 예측했다. 한일 양측 모두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한일 갈등을) 봉합하려면 일본도 약간의 양보를 해야 한다. 징용 문제 자체의 기술적인 처리는 지혜를 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아베 총리는 '우리는 1mm(밀리미터)도 못 움직인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일관계를 봉합하려는 의지가 어느 정도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국은 민주화, 일본은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보수화와 (역사) 수정주의가 생기면서 구조적인 골이 깊어졌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일본의 욱일기 문제가 한일 간 갈등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사와다 외신부장은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욱일기는 증오의 깃발이라는 내용의 트위터를 게시한 것과 관련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지"라며 "서경덕 교수 같은 분이 하는 것과 한국 정부가 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욱일기 같은 것은 (일본의) 보통 사람들은 신경 안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욱일기에 대해 언급하니까 문제를 삼으려고 하는 걸로 (일본에서는)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와다 부장은 지난해 제주도 국제관함식에서 욱일기 문제로 일본 측이 불참한 사안을 언급하며 최근 한일 간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요즘따라 왜 이렇게 시끄럽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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