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 종목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종목은 여전히 프로야구지만 그 열기만큼은 최근 2년 동안 차츰 식어가는 모양새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특히 지난 2016년부터 열었던 800만 관중 시대가 처음으로 깨졌다. 가까스로 800만 관중 선을 유지했던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무려 10%(78만7734명)에 달하는 관중이 빠지면서 올 시즌 728만 명 관중 동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시즌 초반부터 고착된 5강 5약 구도
역대 최고 관중을 기록했던 2017년과 비교해도, 100만 명이 넘는 팬들이 사라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올 시즌엔 초반부터 고착된 5강 5약 구도가 전반적으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됐고, 하위권 팀 팬들의 감소 현상을 불러왔다. 다른 구단들보다 홈에서는 물론, 원정 구장에서도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 인기 구단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동반 부진은 특히 뼈아팠다.
올 시즌 경기 보는 재미도 '뚝'...관중도 '뚝'
하지만 단순히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 부진의 이유를 전통적 인기 구단의 성적 부진에만 돌리기엔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다른 구단의 관중 동원 지표 또한 좋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새 홈구장 효과를 본 NC를 제외한 모든 구단에서 지난해보다 관중 수가 줄었다. 이는 예년보다 그만큼 야구가 재미없어졌다는 방증이다.
특히 공인구 반발력을 낮추자마자 벌어진 ‘투고타저’ 양상은 그 의도와는 달리 흥미 반감 요소가 됐다. KBO 입장에선 야구 경기 시간을 늘리는 주범으로 지적된 지나친 ‘타고투저’ 현상을 막는 데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진 모르지만, 이를 통해 야구의 꽃이라는 홈런을 줄여버렸고 타격 관련한 각종 지표가 곤두박질쳤다. 실제로 지난 시즌 30홈런을 넘긴 타자는 모두 11명이었지만, 올해는 3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키움의 박병호 단 1명에 그쳤다.
여기에 올 시즌 프로야구는 유독 수준 낮은 실책성 플레이와 팬들의 비웃음을 살 만한 안일한 플레이까지 연이어 나오면서 팬들로 하여금 유달리 올 시즌 전체적 경기 수준을 떨어져 보이게끔 했고 심판들의 어이없는 오심 또한 팬들의 비난을 샀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 등으로 한껏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민타자 이승엽 같은 전국구 스타플레이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으면서 프로야구 팬들의 저변을 넓히는 데 실패했고, 몇몇 구단의 경우엔 세대교체 과도기까지 겪으면서 구단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로 프로야구 인기 하락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기 외적 요인도 일조...선수들의 끊이지 않는 사건 사고
경기 외적 요인도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 부진에 일조했다. 올 시즌에도 변함없이 터졌던 선수들의 각종 사건 사고는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고, 다른 프로 스포츠와 비교해서 늘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야구 선수들의 팬서비스 문제는 올 시즌에도 어김없이 빈축을 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침체 또한 야구 인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 구단 관계자는 “경기 침체도 올 시즌 8백만 관중 돌파 실패의 한 원인”이라며 “경기 침체로 가장 먼저 줄이는 게 여가시간에 쓰는 비용”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국제대회 선전이 기회였지만...프리미어12에선 '절반의 성공'
우리나라에서의 야구 흥행 여부에 영향을 끼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의 성적이다. 실제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승 신화를 일궈낸 뒤부터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상승했고,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불거진 선수 선발 기준 논란 당시부터 이미 프로야구 흥행엔 위기 신호가 감지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프로야구 흥행을 노리기 위해선 지난달 있었던 프리미어12에서 우리 야구 대표팀이 2연패 달성이 프로야구의 흥행을 끌 만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애매한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우리 대표팀은 준우승하며 도쿄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시아 라이벌인 ‘숙적’ 일본과 ‘난적’ 대만과의 경기에서 모두 패하는 바람에 일본과는 늘어나는 야구 격차를, 대만과는 줄어드는 야구 격차만을 확인했다는 비판에도 휩싸였다.
줄어든 야구 관중...반면 늘어난 축구 관중
올 시즌 관중이 줄어든 야구와 달리, 되레 올 시즌 지난 2013년 승강제 도입 이후 최고 흥행몰이에 성공한 프로축구는 구단 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팬들이 몰린다는 점을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고 할 수 있다. K리그1에선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치열한 선두다툼은 물론 상위권 팀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대구FC도 새로 개장한 DGB대구은행파크 효과에 성적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며 프로축구 흥행에 힘을 보탰다. 결과적으로 올 시즌 K리그는 1부, 2부리그 합쳐 지난 2013년 승강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230만 관중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진 전북과 울산의 우승 경쟁, 리그 3위에 주어지는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티켓 경쟁, 잔류 경쟁 등 단두대 매치는 프로축구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경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는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관중이 모여들었고, 각 구단 차원에서 펼쳤던 마케팅 아이디어도 빛났다.
고무적인 부분은 중흥을 꿈꾸는 프로축구와 달리, 현재 한국 야구가 위기라는 데 KBO와 구단, 그리고 선수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KBO는 이번 윈터미팅 행사에서 성공적 시즌을 보낸 프로축구연맹 뿐만 아니라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와 미국프로축구까지 경쟁 종목인 축구로부터 쓴소리를 들어가며 한국 프로야구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선수협 측도 위기론에 공감한 상황이다.
FA 선수 등급제로 달라지는 2020 한국 프로야구
야구 대표팀조차 절반의 성공에 그치며 내년 시즌 팬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별다른 흥행 요소를 찾지 못한 구단과 KBO, 선수들이 한국 야구 위기론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일단 내년 시즌부터 프로야구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2일, 선수협에서 KBO이사회가 제안한 자유계약선수(FA) 제도 개선안에 대한 투표를 통해 KBO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프로야구는 우선 FA 선수 등급제가 실시되고, FA 자격취득 기간은 1년 단축된다. FA 자격 요건이 낮아지고 보상 제도 또한 완화되면서 선수들의 이적은 향후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지금보다 자유로워지는 외국인 선수 기용 방식
외국인 선수의 진입 장벽도 내년부턴 낮아지게 됐다. 현재는 외국인 선수를 모두 3명 등록하되 2명 출전에 3명 모두를 동일 포지션으로 할 수 없었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외국인 선수를 3명 등록, 3명 출전으로 변경해 구단의 선수 기용 폭을 더 넓히기로 했다. 외국인 선수 출전이 늘어나게 될 경우, 팬들 입장에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고, 함께 뛰는 국내 선수들에게도 어느 정도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시즌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내후년인 2021년부터 시행되는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후년부턴 유망주급 외국인 선수를 구단별로 투수 1명, 타자 1명을 영입할 수 있고 연봉 30만 달러 이하로 다년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돼 현재 주로 미국과 중남미 등에 한정된 외국인 선수의 폭을 다른 나라들로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선수 확대와 육성형 외국인 선수 제도는 야구팬들의 볼거리는 물론, 한껏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에도 부합할 만한 제도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팽팽한 줄다리기 예상되는 샐러리캡 도입
KBO가 리그 활성화를 위해서 내놓은 제도 개선안 가운데, ‘샐러리캡’ 도입은 각 구단의 전력 평준화를 위한 방안이다. 한 구단의 총연봉상한제를 의미하는 ‘샐러리캡’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선수들의 이적이 잦아지도록 유도하면서 전력 평준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리그 흥행을 이끌 수 있는 요소임엔 틀림없다. 구단 입장에서는 또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지금까지 프로야구에서 모든 구단이 투자한 돈에 비례해 좋은 성적을 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샐러리캡’이 전력 평준화라는 문제 해결의 만능키는 아니다. 여전히 갈등의 불씨도 남아 있다. 일단 지난 2일 선수협은 일단 KBO가 내놓은 ‘샐러리캡’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이 부분에 대해선 향후 추가 논의하기로 하면서, KBO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했다. 양 측이 향후 어떤 식으로 논의를 이어갈지 주목되는 가운데,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국형 샐러리캡’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숨어 있는 야구 팬들의 니즈 파악이 필요
제도적 차원의 접근과 함께 이와 함께 800만 시대를 연 뒤 올 시즌 경기장에서 발길을 돌린 팬들, 그리고 잠재적인 야구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인이 뭔지를 적극적으로 찾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내년 시즌부터라도 각 구단이나 KBO 차원에서 전력 분석에 들이는 노력 못지않게 과연 어떤 관중이 얼마나 많이 야구장을 찾는지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비롯해 신규 팬들이 얼마나 유입되고 있는지부터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정확한 통계 수치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주로 야구 경기장을 찾는 이들의 주력 나이대는 80년대 90년대 어린이 야구 교실 세대인 30대에서 50대 정도의 남성이라는 게 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고착화된 야구 소비층을 넓히기 위해선 무엇보다 젊은 팬들의 유입이 절실하지만, 야구 소비층의 저변을 확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구단 차원에선 무엇보다 젊은 팬들을 야구장에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야구장이 단순히 야구를 보러 가는 공간이 아니라, 놀거리가 가득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의 스토리를 잘 발굴해 내는 것도 필요하다.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벤트를 늘리고 다양한 선수들의 팬 서비스 제공을 독려해야 한다. 선수들도 매 경기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좋은 경기로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것은 물론, 팬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팬들이 경기장에서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야구 종주국 미국에서도 ‘야구 위기론’
물론 프로야구의 인기 하락과 젊은 세대의 외면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구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야구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보는 종목’이라는 위기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젊은 층들이 야구보다는 농구 등 다른 종목을 더 선호하면서 야구를 보는 시청자나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 자체가 노령화 현상을 겪게 됐고, 야구는 미국에서 농구 등 다른 스포츠와 비교해서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메이저리그는 젊은 신규 팬 유입에 사활을 걸고 있고, 이웃 일본 또한 야구 팬들의 노령화 현상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궁극적으로 야구의 경쟁 상대는 축구와 같은 다른 종목이 아닌 영화나 유튜브 같은 젊은 세대의 다른 놀거리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야구라는 종목 자체는 다른 스포츠 종목과 비교해서 다소 복잡한 룰을 가지고 있고,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 동안 긴 호흡을 함께 즐겨야 하는 스포츠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SNS에 익숙한 젊은 팬들은 유튜브와 같은 짧은 영상과 템포가 빠른 스포츠들이 지닌 박진감에 열광하고 있다. 경기 시간 최소화가 메이저리그의 지상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에 발맞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은 23세 이하 야구월드컵 대회에서 현행 9이닝이 아닌 7이닝 경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야구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생존을 위한 시간 단축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긍정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우리 프로야구도 내년부터 아예 야구의 룰 자체를 바꾸는 방안까지 포함해 야구 경기의 시간 단축과 빠른 템포의 경기 운영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정규리그 우승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포스트시즌 경기 방식을 파격적으로 바꾸는 안까지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 됐다.
‘위기론’의 결과물...내년 시즌부터 팬들에게 보여줘야
내년 프로야구 관중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내년이 지난해와 올해로 이어졌던 바로 관중 감소세가 고착화될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팬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 고착화된다면, 궁극적으로 프로 스포츠라는 존립 기반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내년은 어쩌면 한국 야구의 마지막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올 시즌 '프로야구 위기론'에 공감한 KBO와 구단, 선수들이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안을 도출해 내길 기원해 본다.
이들의 노력이 팬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져 내년 시즌 재미있는 야구로 이어지게 되면서 한때 발길을 돌렸던 팬들도 다시 야구장을 찾기 시작한다면, 한국 프로야구는 기적처럼 또 한 번의 중흥기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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