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소방 훈련(Fire drill Fridays).' 매주 금요일 미국 의회 앞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관련 집회를 이렇게 이름 붙였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고 빗댄 것에서 따왔다. 우리 집에 불이 났을 때처럼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올라가고 있다.(Fire drill Fridays 홈페이지 바로가기)
지난 10월 11일부터 매주 금요일 워싱턴 DC에서 열리고 있는 이 '소방 훈련'은 배우 제인 폰다가 함께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2월 21일에 82세 생일을 맞는 여배우는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매주 금요일마다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잡혀갔다. 폰다 덕분에 '소방 훈련'에는 적잖은 '셀럽'들이 참석했고, 함께 경찰에 체포됐다. 배우 테드 댄슨(10월 25일), 배우 로제나 아퀘트(11월 1일 집회), 배우 다이안 레인, 매니 자신토, 파이퍼 페라보, 모델 엠버 발레타(11월 22일), 아역배우 이안 아미타지, 배우 폴 쉬어(11월 29일), 배우 테일러 쉴링, 카이라 세드윅, 마우라 티어니(12월 6일), 배우 샐리 필드(12월 13일) 등이 참석했다.
폰다는 이 집회를 내년 1월 10일까지 계속할 계획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되는 좌담('Teach-In')을 통해 다음날 있을 집회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금요일 오전 1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행진을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폰다는 첫 번째 집회를 한 뒤 경찰에 체포돼 감옥에 수감됐다가 풀려나면서 "82세는 감옥에 가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대로 생일 전날(20일)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생일을 맞게 됐다.
'소방 훈련'에서 그동안 다룬 기후변화와 관련된 주제는 다음과 같다. 그린 뉴딜(10월 18일), 해양(10월25일), 여성(11월 1일), 전쟁과 군대(11월 8일), 환경과 정의(11월 15일), 물(11월 22일), 음식과 농업(11월 29일), 이주와 인권(12월 6일), 직업과 공동체, 전환(12월 13일) 등. 앞으로 건강(12월 20일), 숲(12월 27일), 석유화학기업에 대한 규제(1월 3일)를 주제로 집회를 연다. 그리고 1월 10일에는 마지막 집회를 갖는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 '훈련'을 위해 워싱턴 DC로 잠시 거처를 옮겼던 폰다는 '훈련'을 마치고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폰다는 그레타 툰베리 등 10대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을 보면서 이 '훈련'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신과 같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미래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기후는 위기에 처해 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기 위한 대담하고 야심찬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이 조금 안 남았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파리기후협약 탈퇴하고 툰베리 모욕하는 트럼프...폰다 "정신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
정치인들에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직접적으로 요구하려는 목적으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매주 금요일 집회를 벌이는 동안, 안타깝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들의 요구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1월 4일 유엔에 성명서를 보내 파리 기후 협약 탈퇴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유엔 차원에서 체결된 기후변화에 기본 협약인 파리 기후 협약 탈퇴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변화를 "사기"라고 주장해왔으며, 배기가스 배출 규제권을 놓고 캘리포니아주와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는 적극적인 '반 환경주의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에는 툰베리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에 대해 비난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타임>의 결정에 대해 "진짜 말도 안 된다"라며 "그레타는 자신의 분노조절 장애를 다스리고, 친구와 함께 좋은 옛날 영화를 보러가야 한다. 진정해 그레타, 진정해!"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에도 툰베리의 유엔기후정상회의 연설과 관련해 조롱하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폰다는 17일 기자회견에서 "그레타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너무나 공허하고 감정 이입과 연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그 행동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행동이 정신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상처 받은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동정은 가지만 트럼프에게 변화가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폰다는 이날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그를 직접 만나 기후변화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설득하려고 시도했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폰다는 "나는 트럼프 같은 남자들을 잘 안다. 그런 성향을 알고 있다"며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관능적이며 똑똑한 기후 운동가 서너 명과 함께 트럼프를 만나려고 했다. 파멜라 앤더슨도 그들 중 한명"이라고 말했다. 앤더슨은 미국 TV 드라마 '베이 워치'에 출연해 유명해진 배우다.
"우리 모두 트럼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에게 '트럼프 대통령, 당신은 전 세계의 영웅이 될 수 있고, 태어난 모든 인간 중 가장 중요한 인간이 될 수 있다. 가장 훌륭하고, 완벽하고, 멋지고,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지구를 보호한다면'이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폰다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에게 전화를 했으며, 그는 "트럼프 가족 내의 환경주의자"이자 자신의 부인인 이방카 트럼프에게 이 문제를 넘겼다. 이방카는 폰다의 계획을 듣기만 하고 실제 면담을 주선해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폰다가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쿨'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연륜과 오랜 사회운동 경험 때문으로 보인다. 폰다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평생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는 1960년대엔 시민권 운동에 참여했고, 1970년대 베트남전 당시엔 반전시위를 벌이다가 다섯 번이나 체포되었다고 한다. 폰다는 당시 북베트남 대공포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찍힌 후 "하노이 제인(Hanoi Jane)"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폰다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든, 민주당이 정권을 뺏어오든 간에, 환경운동가들은 "여전히 불길을 잡고 거리를 활보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대기업, 금융권 등의 이해에 종속되어 있는 기존 정치인들은 (툰베리가 지적한 것처럼) "정말 뭔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 하고만" 있을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폰다는 오늘(20일)에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소방훈련'을 벌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동정할 만큼의 '내공'을 가진 원로 배우는 재차 호소한다.
"나이를 드는 것의 장점은 당신이 뒤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과 여러 명의 대통령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명의 대통령을 봤는데, 우리가 집권한 이들에게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강제하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17일 기자회견 발언)...."그러니 제발 나와 함께 해줘."(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 호소문)
(이 기사는 10월 17일, 11월 8일, 12월 6일, 3번의 집회 취재와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 페이스북과 홈페이지 자료 조사를 통해 작성된 것입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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