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접촉 없이 한국을 떠나면서 북미 간 관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북한이 연말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시험과 같은 고강도의 군사적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1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갑식 통일정책연구실장은 "크리스마스 즈음에 한중일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 북한은 북중관계를 고려해 올해 하반기 (군사적) 도발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홍민 북한연구실장 역시 "한중일 정상회의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앞두고 또는 그 직후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것은 중국을 배려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곤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홍 실장은 "북한이 이미 '새로운 길'로 진입했다고 해도 초반부터 ICBM을 발사하면 이후 선택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또 미국도 ICBM을 쏘면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며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이라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ICBM 발사와 같은 고강도 군사적 행동은 벌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서보혁 평화연구실장도 북한이 ICBM 발사를 감행할 가능성이 낮다면서 "만약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김정은 정권 유지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ICBM을 발사하면 핵무력을 전제로 한 경제발전 노선의 완전한 좌절을 스스로 자초하는 셈이 된다"고 평가했다.
서 실장은 "미국 역시 (북한이 ICBM을 발사하면) 트럼프의 재선은커녕 상당히 일이 어렵게 진행될 수도 있다"며 북미 양측이 "현재와 같은 교착상태를 지속하면서 서로 타협이 가능한지 탐색하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갑식 실장은 북한의 향후 행동에 대해 "북한의 도발은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지 않는, 레드라인을 밟는 수준 정도의 한 극단과 북미 및 남북 대화를 지속하는 다른 한 극단 사이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가장 강력한 도발 수준은 인공위성 발사 정도"라고 예측했다.
홍민 실장 역시 "북한이 이야기한 '새로운 길'은 고정된 어떤 하나의 길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상황에 맞게 추가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본다"며 "저강도 군사적 행동을 시작해서 상황을 보며 그 정도를 높일 수는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은 이미 핵무력이 검증됐다고 했다. 그런 마당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겠다고 하면 이것 자체로 ICBM 발사와 같은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즉 북한의 선택지가 좁혀지는 것"이라며 "북한은 자위적 국방력 강화라는 차원에서 전략‧전술 무기를 지속 개발하겠다는 정도를 발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실장은 "북한이 ICBM 범주에 들지 않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번개 6호 (S-400) 대공미사일, 준중거리급 다탄두미사일 실험 등을 할 가능성은 있다"며 "미국이 제재로 바로 나아가기 어려운 정도의 공간을 찾는 행보를 보여줄 수는 있다"고 내다봤다.
김갑식 실장은 "미국의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2020년 2월까지 북한과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입장에서는 2020년 초 북미 실무회담 또는 정상회담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대선 직전인 9~10월 핵 협상 타결을 선언하는 것이 재선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분석하며 내년 북미 간 협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과 접촉을 가지지 못하고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북한이 거부했다는 평가와 관련, 홍민 실장은 "(미국이) 제안했다고 덥석 손을 잡는 것도 어색할 수 있다"며 "북한이 미국에 셈법을 바꾸라는 메시지와 관련해 선결조치에 대한 무게감 있는 내용이 (미국으로부터) 나와야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실장은 "비건은 균형 잡힌 합의에 준비돼있다고, 또 실현 가능한 조치를 이야기했는데 북한식 단계론에 대해 수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 아닌가 싶었다"며 "의제와 관련해 추상적인 대화 이야기만 나온 상태에서 북한이 (미국의 손을 잡으며) 덥석 (대화 테이블에) 나올 것이라는 게 무리한 기대"라고 평가했다.
서보혁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야 한다면서 한국의 역할을 인정했고 그 와중에 비건이 한국에 방문했다"며 "비건이 (북한에)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 협상 전략 차원에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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