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들은 이미 검증된 역사와 전통, 관행, 경험을 중시한다.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미지의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시도된 적이 없는 것보다는 시도해본 것을, 신비로운 것보다는 사실을, 무한한 것보다는 제한된 것을,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을, 유토피아적 축복보다는 현재의 웃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Oakeshott)의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도 이런 본래적 의미의 보수가 존재할까. '가짜 보수' 말고 '진짜 보수'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자칭 보수주의자는 득실거린다. 하지만 보수 활동가는 별로 없다. 보수 허브는 관변 단체나 일부 대형 교회, 사회단체로 한정돼있다. 보수 언론에 기고로 이름을 날리는 ‘글 보수’는 여럿 있다. 종편 TV에 출연해 보수 정당을 옹호하는 '입 보수'도 적지 않다.
글 보수, 입 보수, 생활 보수, 교회 보수, 게릴라 보수, 생계형 보수 가운데 진심으로 보수주의 철학을 실천하며 보수주의 운동에 헌신하는 인물은 얼마나 될까. 전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의 한탄이다. 책은 ‘생활 보수가 아니라, 정치 이념과 정치 세력으로서의 보수’에 집중한다. 특히, 제2장은 붓보다는 칼이다. 한국 정치 궤멸의 주역들이자 가짜 보수의 5적을 거론하며 정면으로 공격한다. 국정원은 '정치 공작의 총 본산'이다. 검찰은 '권력의 사냥개'다. 친박은 천년 왕국을 꿈꾸는 종교적 컬트 집단이다. 재벌은 '권력 붕괴의 지뢰밭'이요, 관료들은 무능한 '특급 국민'일 뿐이다.
책은 가짜 보수의 '10대 실패'를 나열한 다음, 진짜 보수의 조건을 제시했고, 다음 세대를 위한 보수 재건축의 벽돌을 차근차근 쌓아나간다. 30년 장기 재건축을 제안했다. 그래야 떴다방 영업을 졸업할 수 있단다. 보수 진영 장기 재건축에는 필수 자재가 필요한데, 그 중의 첫째가 '한국 실정에 맞는 보수 진영에 대한 이념적, 철학적 논리에 대한 정리'라는 송 주필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 얼굴에 침을 뱉겠다. 한국의 진보건, 보수건 각자가 갖는 정치의 극단성, 협애성, 편향성, 이념성, 사익 추구성, 거기다 당파성까지 생각하면 새삼 정치가 구차하게 다가온다. 제대로 된 진보가 없으니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 가짜 보수가 폭력이었기에 역시나 가짜 진보도 장단을 벗어나지 못한다.
송 주필은 "책 한 권으로 한국 특유의 변태성 보수 이념에 빠져 있는 분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