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고유가 시대가 앞으로도 계속될 게 예상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각계 에너지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수요관리 대책, 대안 에너지 개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독자적 자원 개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3차 석유 위기는 글쎄…저유가 시대는 다시 안 와"**
환경운동연합 반핵·에너지위원회가 주최한 '고유가 시대의 에너지 정책이 나아갈 길' 토론회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당에서 15일 2시에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산업자원부, 정부 산하 연구소, 시민단체 에너지 전문가들은 "1986~1998년의 저유가 시대는 다시는 안 온다"면서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의 구자권 팀장은 "최근 고유가 상황은 공급차질이나 대응능력, 유가상승 속도와 수준면에서 지난 두 차례의 석유 위기 당시 상황과는 다르다"면서 "3차 석유 위기를 염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반핵·에너지위원회 우석훈 박사도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파동 당시 실제 유가를 현재 물가 수준에 맞춰 환산하면 80~90달러 수준에 달한다"며 "더구나 현재는 국제 에너지 수급구조가 석유 외에 다각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에너지 수요 증가율이 안정화됐기 때문에 고유가 충격이 그 때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동감을 표시했다.
우석훈 박사는 통상적으로 석유 가격을 교란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돼온 원유 선물 거래 제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우 박사는 "현재와 같이 항상적인 투기와 분산에 의해 움직이는 선물시장 체계는 위험성을 6개월 이전에 사전 흡수해, 공급 위기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시장의 교란을 최대한 막아주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한다"며 "정부간 직접 계약에 의한 자원 거래 방식에 비하여 오히려 시장을 안정시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최근의 고유가 시대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데는 전망을 같이 했다.
구자권 팀장은 "3차 석유 위기를 염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소위 BRICs 국가들의 석유 수요가 증가한데다. 비OPEC 국가들 특히 이라크나 러시아의 공급 증대가 한계에 봉착해 OPEC 국가들의 시장 점유율과 통제력이 증가했다"며 "더 이상 과거의 저유가 시대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 윤성규 국장도 "단기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내 석유시설에 대한 테러 가능성이 상존하는 등 중동 정정 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국제 유가는 당분간 현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며 "장·단기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적극적 수요관리, 대안에너지 개발, 독자적 자원 개발"**
발표자들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큰 방향으로 "적극적 수요 관리, 대안에너지 개발, 독자적 자원 개발"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에너지시민연대 김태호 처장은 "정부가 전력 공급을 늘리는 데 치중하면서 수요 관리에 너무 소극적"이라며 "강도 높은 수요관리 정책을 추진할 경우 원자력 발전소 신규 8기가 생산하는 만큼을 절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태호 처장은 "대형 화력발전소나 원전과 핵폐기물처리장은 환경문제와 사회 갈등을 야기한다"면서 "사회 갈등에 따른 불신과 사회비용을 고려했을 때도, 수요 관리 중심으로 전력 정책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경제분석연구부 문영석 부장도 "화석연료 사용에 제한을 두는 국제 환경 규제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구태의연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염두에 두고 에너지 정책을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문영석 부장은 "선진국은 석탄, 석유, 원자력이 현재에 비해 그 비중이 감소하고 대안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만 다른 선진국과 달리 원자력 에너지의 비중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영석 부장은 "원자력 에너지는 환경 및 안전에 대한 우려로 사회적 수용성 확보가 관건"이라며, 풍력·태양광과 같은 대안에너지에 대한 보급 확대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소한 향후 30~50여년간 지속될 석유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자권 팀장은 "세계적으로 석유 위기가 안 오더라도 우리나라는 중·장기적으로 수급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동북아 지역의 수요는 급증하는 반면 공급은 제약돼 있어 치열한 공급 확보 경쟁도 가속화될 것"이라며 "대륙붕 개발과 사할린,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송유관, 카스피해 등 중동을 대신할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성규 국장도 "외환위기 이후 민간 부문의 투자 축소, 공공 부문의 역량 미흡 등으로 해외 자원 개발의 기반이 약화된 게 사실"이라며 "해외 자원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중동 이외 지역의 공급선을 확보하고 시베리아, 카스피해 등에 대한 개발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유가 시대, 기업 엄살에 넘어가면 안 돼"**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우석훈 박사는 '고유가가 산업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고유가 시대에 대한 기존 정부 대응을 강하게 비판해 관심을 끌었다.
우석훈 박사는 "유가 상승이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산업계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는 것은 옳은 얘기"라고 전제한 뒤, "국내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경우 에너지 사용효율이 세계 1류군에 해당된다"며 "고유가로 이들 기업이 경쟁국 기업보다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흥미로운 지적을 내놓았다. 고유가가 우리나라와 경쟁국인 중국 등에 동일하게 작용하면 노동원가에서 뒤처진 경쟁력을 에너지 사용효율을 계기로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 끝에 우석훈 박사는 "고유가 시대에 기업의 엄살에 정부가 끌려가서는 안 될 것"이라며 "기업 엄살에 각종 에너지 관련 조세를 인하한다면 국가 에너지 전환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고유가 시대에 대한 대응은 개별 기업이나 가구에게 혜택을 주기보다 고유가 시대에 맞는 체질 개선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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