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예정된 총회 폐막에 맞춰 총회장 안팎에서 유엔의 폐쇄적 태도와 주요 국가의 협상 후퇴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기후파업)의 기운을 받아 이곳 마드리드에서는 기후총회에 참가한 단체들과 멸종저항 멤버들이 함께 했다. 이들은 기후총회가 또 한 번의 합의 실패로 지구를 구할 기회를 또다시 놓칠 것을 우려했다. 행동이 아닌 말 잔치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기후정의 진영은 기후위기 시대에 시장과 기술 중심의 잘못된 해결책에 집착하지 말고, 당면한 파국을 막기 위해 지구적, 국가적, 지역적 감축 목표를 높이고 지금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격적인 정치협상에 들어가기 전 11일, 총회장에서 활동가들이 쫓겨난 사건이 발생했다. 기후비상사태를 주제로 한 공개 대담이 끝나고, 이 행사에 연사로 참여한 그레타 툰베리, 그리고 방청석에 있던 청소년들이 단상을 점거했다. 그리고 행사장 바로 앞에서 기후정의 단체 대표들과 활동가들 역시 구호를 외치며 가짜 협상을 중단하고 진짜 필요한 의제에 논의를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200명이 사람들이 보안 요원들에 의해 총회장에서 퇴거 조치를 당했다.
옵저버 자격으로 총회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가장 열정적으로 기후행동에 나서면서 공식, 비공식 협상 과정을 감시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해왔다. 유엔회의에서 비정구기구와 엔지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드리드에서 유엔은 자신의 질서유지 방침을 어겼다는 다른 이유를 들어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반면 총회장 안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연장하려는 세력, 그리고 기후자본과 탄소수익에 몰두하는 옵저버들의 개입에는 무척이나 관대했다.
문제가 커지자 유엔은 쫓겨난 참가자들의 총회 재입장을 허용하는 선에서 정리했지만, 작은 소동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지구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기후파업과 기후변화에서 기후비상사태로 여론과 담론 지형이 바뀐 상황에서, 그리고 비록 큰 성과는 없었지만 뉴욕(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칠레-마드리드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의 흐름을 타고 이번 총회가 개최됐다. 내년 2020년 신기후체제의 서막을 예고하면서 세부 이행방안을 합의하는 의미를 갖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제안한 이니셔티브(Climate Ambition Alliance)의 명단만 보면 뭔가 진전된 것처럼 보인다. 현재까지 84개국이 2030년 감축목표(NDC)를 상향 조정할 의사를 밝혔고, 이 중 11개 국가는 이미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73개국이 2050년 넷 제로 목표를 설정하겠다는 입장이고, 이외에 14개 지역과 398개 도시, 786개 기업, 16개 투자기관이 넷 제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기후과학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기후운동은 거의 바닥난 탄소예산에 비춰보면, 넷제로 시점을 2050년보다 앞당겨야 하고 2030년 목표를 더 높게 잡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런 배경에서 기후총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 중 하나가 ‘ambition(목표 상향)’이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보다 탄소배출이 4%나 증가한 상황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1.5도 상승으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매년 7.6%를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판을 바꿀만한 플레이어도 히든카드도 없었다. 앞으로 1.5도는커녕 3도를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되는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기후파국을 예방할 2030년까지 남은 마지막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체제 전환적 탄소감축과 함께 회복 탄력적 기후적응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지금과 같은 전통적 의사결정 방식의 한계는 명백하다. 국제관계의 현실주의에다 파리협정에 내장된 자발성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칠레-마드리드 기후총회가 내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넘긴 결정문(Chile Madrid Time for Action, Decision 1/CMA.2과 Decision 1/CP.25)은 불타는 지구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다. 기후비상사태를 인정하면서 2020년 NDC 제출을 재요청하는 내용이 전부인지라, 그것을 결정문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선언문에 불과하다. 유엔 사무총장조차 트위터에 쓴소리를 남길 정도다. COP25 결과에 실망했고, 기후위기를 막을 완화, 적응과 재정 목표를 올릴 중요한 기회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화석연료 시스템을 주도하는 거대 오염자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국제온실레짐의 리더십을 방해하는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들, 특히 이번에는 미국과 호주, 브라질, 중국과 인도가 협상장의 주적이었다. 선진국은 2차 교토체제(2013~2020)의 감축과 지원 노력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신기후체제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일부 국가는 국제탄소시장(파리협정 6조)에 함정을 파서 ‘비정상적’ 탄소시장을 만들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중계산(double counting)과 상응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s), 청정개발체제(CDM) 탄소배출권(CER) 이전 등의 의제에서 각자 빠져나갈 구멍을 뚫으려고 시도했다. 무엇보다 국제적으로 이전된 감축실적(internationally transferred mitigation outcomes; ITMO)이 전 지구적 감축보장(overall mitigation in global emissions; OMGE)을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탄소시장이 감축목표 상향과 감축성과 효과에 바람직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환경 건전성 증진은 물론이거니와 탄소시장 활성화로 인한 부작용을 예방하는 사회적 안전장치도 거의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신기후체제의 국제탄소시장은 교토체제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까. 모든 국가가 탄소감축에 참여하기 때문에 배출권거래제와 제로섬 탄소상쇄의 형태가 기본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나 국제탄소시장 지지자들의 주장과 달리 비용 효율적 방식의 녹색 분칠(green washing)로 귀결될지 모른다. 기후비상 국면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실험(탄소 상품화)을 하면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탄소 자유시장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기후정의 진영은 더 직접적인 규제 방식(국제탄소세 포함)을 선호한다. 물론 아직까지 다수의 국가나 기후행동 활동가들은 잘 설계된 ‘정상적’ 6조, 즉 탄소시장 개정 논리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마저도 누더기 탄소시장 옵션을 끝까지 주장한 나라들 때문에, 기후총회 최대 의제인 파리협종 6조는 아무런 진척 없이 끝났다.
협력 메커니즘에 포함된 비시장적 접근은 협상장에서 관심을 덜 받지만,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기술이전과 역량배양 등은 호혜와 평등의 원칙에 기초해 실질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기존 기술메커니즘과 재정매커니즘의 개선 없이는 이 역시 효과를 보긴 어렵다. 시장이든 비시장이든, 협력 메커니즘의 전제는 기후변화기본협약과 이를 계승한 파리협정의 정신이 전제돼야 한다. 바로 차별적 책임과 공동의 노력의 원칙이다. 기후취약 국가와 지역과 계층에게 배상 혹은 보상돼야 할 정당한 재정적 몫을 인정하고 집행하지 않고서는 기후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 손실피해에 법적 성격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한사코 반대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제기후정의재판소를 세워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이와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면 된다. 주요 국가들이 공약한 녹색기후기금(GCF)의 성장도 더딘 상황에서 손실피해 조항은 기후재정 확대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14일 저녁부터, 총회 의장국과 유럽 등 몇몇 나라의 타협안들이 제출됐지만 절충은 불가능했다. 협상 막판,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화한 미국의 행보는 총회 실패를 부채질했다. 재정 확대와 목표 상향 분위기를 후퇴시키는 발언으로 어깃장을 놓으면서 협상 교착상태를 불가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총회장에 모인 기후정의 단체와 개인들은 미국을 비롯한 총회 당사국들을 비난했다. 선진국들에게는 협상 결과물을 바꿀 시간이 남아 있고 개도국들은 오염자들의 의제를 거부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통과된 젠더행동계획(Gender Action Plan)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총회는 파국으로 향했다. 코스타리카와 군소도서국가연합 등 취약 국가들의 호소와 제안은 탄소시장과 손실피해 의제 협상 타결로 이어질 수 없었고, 그 어떤 ambition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배출 간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지의 간극일 것이다. 그러나 칠레와 마드리드 그리고 모든 곳에서 거리를, 지구를, 생명을 되찾자던 기후정의도 새판을 짜는 데 힘이 부족했다. 정의로운 전환과 기후소송을 주장하고 채굴주의와 탄소 식민주의를 반대하고, ‘안티 COP’ 주장도 다시 나왔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구적 연대와 대항권력 구성의 과제는 보다 깊고 넓어져야 한다. 탄소시장은 신기후체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아니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목표와 실천이고, 좋은 정치가 없으면 과학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분열 책동을 일삼는 기후 깡패국가들의 당사국 자격을 박탈해야 기후대응의 다자주의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각국에서는 생태사회국가의 비전을 갖는 세력들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최소한 우익 포퓰리즘과 우파 정당들이 사라져야 기후총회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COP25의 허무함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
기후가 우리의 미래, 지구의 미래라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유엔이 취합하는 2030과 2050년 목표에 한국 정부의 이름은 없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총회 연설(12월 11일)에도 진취적인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한 기후변화대응계획은 탄소예산과 경로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정부 협상은 해외감축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도 감축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2050 넷 제로 도시에 서울이 있고, 기업 두 곳(트리플래닛, 한솔섬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0월, 기후비상상황을 선언하고 2050년 넷 제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충남은 명단에 빠져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낙관적 의지와 근거로 시스템 전환적 그린뉴딜 기획과 추진이다. 칠레-마드리드 기후총회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는다면 기후변화 대응조치 이행영향(KCI 및 관련 포럼) 정도가 아닐까 싶다. (협의의)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화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지만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급선무다. 글래스고로 가는 여정은 대전환이냐 대탈출이냐, 두 갈래 길이 전부다. Be ambit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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