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0일은 박찬식 제2공항 저지 비상도민회의 상황실장이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 취소를 대통령이 결단하라'며 단식농성을 시작한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초저녁에도 농성장을 방문하였다. ‘박찬식 상황실장의 건강은 어떤지, 또 어떤 특별한 상황은 없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렇게 찾는 것이 박 실장은 물론 농성 중인 주변 사람들에게 연대의 힘을 실어 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찬식 상황실장의 내력을 알게 된 것은 그 자리에서였다. 박찬식 상황실장은 요즘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서울대학교 법대 82학번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 나경원 의원, 원희룡 지사 등과 동기동창인 것이다. 재학 중 김민석 민주당 전 의원과 총학생회장 경선을 벌이기도 했던 그는 학생운동으로 제적당했다가 복학하게 된 이력이 있다. 대학 졸업 후 대구 등지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두 차례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마치고 영국으로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는 여러 대학에 교수로 출강하였다.
노동운동과 학문 연구를 병행하면서 박찬식이 또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고향 제주의 사회 문제였다. 대학에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재경(在京) 제주 사람들과 함께 펼쳤던 ‘제주사회문제협의회’ 등의 활동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는 '육지사는 제주 사름들' 모임의 대표를 맡아 제주 4.3과 강정해군기지 반대 운동 등을 꾸준히 전개해왔고, 2018년에는 '4.3 70주년 범국민운영위원장'을 맡아 전국 20개 지역에서 제주 4.3 70주년 행사를 다양하게 치러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제주 제2공항 문제'가 제주 사회의 현안으로 떠오르자 그는 객원교수로 있는 충북대 강의도 중단하고 가족들은 서울에 남겨둔 채 제주로 내려간다. 지난 3월부터는 제주에 방을 얻어 살면서 '제주 제2공항 저지' 운동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몇 사람이 밥을 굶으며 자신의 몸을 녹여내야 이 문제가 풀리나
박찬식 상황실장은 지난 10월 말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서울에 올라와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광화문 정부청사 인근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하였다. 9월 24일 제주 도의회는 도민들 1만 3000명의 '제2공항 공론화 청원'을 받고 전체 회의에서 그 청원의 수용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11월 1일 열린 제주도의회 10명의 운영위원들이 모여 진행한 ‘공론화특별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심사 보류'였다. 박찬식 상황실장은 이런 결정에 항의하면서 "대통령 면담과 제주 제2공항 백지화를 대통령 결단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11월 1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제주 제2공항 문제는 제2공항 예정지인 난산리 주민 김경배 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2015년 제주 성산지역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 사람들은 "왜 성산이냐? 신도는 어찌되고?" 정도 관심을 보였을 따름이다. 제주에 제2공항 문제는 오래 전부터 그 필요성에 대하여 70%가 넘는 도민들이 지지해 왔다. 다만 성산지역이 결정이 되었다고 하니, 그곳은 공항을 짓기에 장애가 많은데, 하필 그곳을 택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정도의 반응이었을 뿐, 제2공항 건설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크지는 않았다. 2017년 10월 10일부터 42일 단식농성을 하고, 올해도 30일 단식 농성을 하면서 제주 제2공항 저지를 위해 싸우는 김경배 씨는 이런 제주의 답답한 상황에 대하여 절규하였다.
"국토부는 고향을 잃고 난민신세가 되고 말 주민에게 단 한 번의 예고도 없이 날벼락처럼 예정 부지를 발표했다. 부지선정 과정의 부실의혹을 밝혀내기 위한 검토위원회를 아무 결론이나 권고사항 의결도 없이 종료시키고는 제2공항 확정절차인 기본계획을 일방적으로 진행시켰고 속전속결로 확정고시 공고를 이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 같은 국토부의 국민기본권 유린행위에 대해 저는 몸을 녹여내는 단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확정 절차만은 목숨을 열 번이라도 기꺼이 버릴 각오로 막고 싶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 저지를 위하여 김경배 씨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단식농성을 하며 싸우고 있다. 김경배 씨에 이어 윤경미, 최성희, 엄문희 씨 등이 제2공항을 반대하면서 장기간 단식농성을 벌이다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였다. 김덕종 민주노총 제주본부장, 김형주 성산읍 난산리장, 이정훈 목사가 단식농성을 벌였다. 제주청년 노민규 씨는 10월 19일부터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등이 있는 세종 정부청사 인근에서 17일 간 단식농성을 벌이다 병원에 실려 갔다. 같은 시기에 환경부의 영산강유역청이 있는 광주에서도 농성 중이다.
제2공항 저지 비상도민회의 박찬식 상황실장의 광화문 단식농성 소식을 듣고, 강정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계속해 오고 있는 문정현 신부, 허찬란 신부, 강정마을 정선녀 공소회장 등 천주교 사제와 신도 등이 청와대 앞에서 '제주 제2공항 계획 취소'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매일 100배 기도와 묵주기도, 미사 등을 9일 간 지속하면서 대통령이 나서서 '제주 제2공항 계획 취소'하기를 염원하는 미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제주는 이미 관광객 등 수용할 수 있는 수용 능력이 임계점에 이르러
박찬식 상황실장이 청와대 앞 천주교 미사 말미에 '제주 제2공항 저지 운동'에 뛰어들게 된 동기를 밝혔다.
"2016년 1월 버스를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분이 ‘제주 제2공항 계획 중단하라’고 피케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주의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고민과 연구, 연대 활동을 해 오던 자신으로서는 궁금하여 버스를 내리고 피케팅을 하는 분에게 향했습니다. 차나 한 잔 하면서 어떤 사연인지 좀 들어보자 하였더니,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하여 그날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김경배 씨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제2공항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2공항 반대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육지사는 제주사름들’ 모임 대표인 제가 중심이 되어 국회에서 최초로 제주 제2공항 관련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러자 성산에서 제2공항 반대 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여섯 분이나 올라와 ‘이렇게 관심을 갖고 세미나까지 열어주는 것은 처음이다’고 하면서 반겼습니다. 한 번은 ‘육지사는 제주사름들’ 모임에서는 ‘물숨’이라는 해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도 보았습니다. ‘해녀들은 물속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물위로 올라와 숨을 쉬기를 반복하면서 작업을 하는데, 그 숨의 길이에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해녀가 큰 전복 하나를 발견하고 물숨의 한계를 넘어 그걸 채취하려고 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제주 제2공항 문제도 바로 그 ‘물숨’과 같습니다. 이미 제주는 2016년에 관광객 2600만 명 시대를 열고나서 쓰레기 처리 문제, 생활하수 처리 문제, 지하수 고갈, 교통체증, 범죄 증가 등 이미 물숨‘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수용능력의 임계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제2공항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현 제주공항 시설을 보완하면 제주의 관광 수요를 다 충당할 수 있어
국토부가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는 ‘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하여 국회환경노동위원회의 이상돈과 이정미 의원이 주최한 지난 11월 26일 국회 토론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들이 밝혀졌다.
▲ 2030년에 항공 수요가 4500만에 이를 것이라는 사업타당성은 너무 부풀려 진 것이다 ▲ ADPI(프랑스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용역 결과에서는 현 제주공항을 보완하면 4500만 명의 이용객을 수용할 수 있다는 용역 결과를 국토부는 숨겨왔다 ▲ 성산지역은 철새도래지가 네 곳이나 있어 조류 충돌 등의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데,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배제되었다 ▲ KEI(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권고를 무시하여 환경수용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 환경수용성이 대단히 낮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 관광수용성 문제와 지속가능한 제주 관광의 문제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 제주인들의 삶의 질 문제, 문화 보전 등의 문제들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ADPI 보고서 등을 보면 현 제주공항의 기존 활주로와 관제시설, 기타 부대 시설들을 보완하면 4500만 명의 항공 수요를 충당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합당한 의견 수렴 절차도 무시하면서 무리하게 추진되는 ‘제주 제2공항’은 제2의 4대강 사업이 될 것이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은 폐기하고, 현 제주공항을 보완하여 이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안이라는데, 토론회 참가자들 중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무튼 제주가 지속가능한 관광지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입도세나 환경세를 받고, 각종 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세금을 부과해서 적정 인원의 관광객만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하면서 제주인의 삶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제주인에게 도움이 되는 관광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마무리되었다.
그 날 토론회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 같은 나라는 세계 제1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나라지만 관광과 농업 등 기존 산업을 위하여 절대로 훼손할 수 없는 지역을 정해 놓고 거기에는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개발도 제한된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관광할 수 있도록 지정된 곳만 둘러보게 한다는 것이다. 제주가 이를 배워야 한다.
제주 제2공항 반대진영에서는 "제주도지사가 나서서 제2공항을 반대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원희룡 지사는 "제주 제2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강하게 밀고 가고 있다. 이에 대하여 더 이상 제주를 난개발로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도민들이 일어났다. 제주 지역의 140여 시민, 환경, 사회단체가 모여 ‘제2공항 저지 비상도민회의’를 결성하고 국토부 등 정부와 제주도, 제주도의회 등을 상대로 지속적인 싸움을 해 오고 있다.
이번 광화문 농성을 통하여 11월 9일에는 ‘제주 제2공항 저지’ 운동은 전국 300여 개 단체들이 모여 ‘제주 제2공항 백지화 전국행동’을 결성하여 ‘제주 제2공항’의 문제가 제주만이 아닌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하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지난 11월 19일 대통령의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에서 ‘국민과의 대화’에서 나온‘제주 제2공항 문제’에 대한 질문에 문대통령은 ‘제주 도민들의 의견을 모으면 따르겠다’고 한 것조차도 원 지사는 아전인수식으로 해석을 하여 논란을 낳고 있다. 원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여 확인했다고 하면서, ‘국토부는 원래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혀 반대진영 도민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한편 그의 처사촌 오빠이면서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송재호 위원장은 제주 도의회를 찾아서 전했다. 대통령의 뜻은 ‘제주 도민들의 의견을 모으면 그에 따르겠다’라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였다.
제주 제2공항은 우리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라서, 안 돼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며, 대학 때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다다 얼마 전 나는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 제주를 나는 1년에도 10여 차례 들락거린다. 장남으로서 설 명절이며, 추석 명절은 물론, 성묘와 벌초, 기제사,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참석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주 제주를 들락거리기 때문에 제주 소식은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또 누구 못지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더구나 요즘 교직에서 물러나 시간이 많기 때문에 고향 집에 가서 며칠씩 묶었다 오기도 한다.
내가 제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지금처럼 감귤 농사를 많이 짓지 않았다. 여름에는 고구마, 조, 밭벼 등을 가꾸고, 겨울에는 보리와 유채 농사를 주로 지었다. 그리고 소를 키웠다. 항상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부모님 농사일 거들어드리느라 방학 때 그 흔한 해수욕도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밭고랑에 김을 매거나 소를 먹이면서 자랐다. 용돈이 궁하던 시절이라 제주 중산간 지역에 널려 있는 돌들을 들추어 거기에 숨어사는 지네를 잡아서 팔기도 하였다. 봄에는 고사리를 꺾으러 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어 울기도 하였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면서 산딸기를 따먹고, 청미레덩굴 나무의 순, 찔레나무의 순, 삐리를 뽑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하였다. 인동초 꽃을 따서 말려 팔고, 학교에 가면 송충이를 잡으러 고근산으로 오르는 것은 연례행사였다. 엉또폭포나 통물 등 바다로 흘러가는 내가 있는 곳에서 참게를 잡고, 지천에 널려있는 개구리들을 잡아 뒷다리를 잘라 구워 먹고, 겨울에는 올가미를 놓아 꿩을 잡아 모처럼 고기 맛을 볼 수 있는 밥상을 차리기도 하였다. 물때가 되면 바닷가에서 대나무를 잘라 만든 낚싯대로 ‘어랭이’를 낚고, 바닷가 갯바위들 틈에 낚시에 보말을 잡아 미끼로 끼워넣고 한참 물놀이를 하다 와 보면 낚싯바늘에 걸려있는 ‘볼락’을 잡아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물이 빠질 때는 바닷가 갯바위 틈에서 소라와 오분작, 보말 등을 한 구덕 잡아와서 반찬을 하기도 하였다.
비록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제주의 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면서 살았던 유년시절의 추억들은 나의 영혼을 키웠다. 당시는 이런 삶이 힘들어 도시를 동경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잊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런 서정을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과 나누고 싶은데, 그건 이루지 못할 꿈일 뿐인가? 점점 밀려오는 개발의 물결에 잠식을 당하고 그렇게 대자연 속에서 뛰놀던 기억은 우리 대에서 끝나는 것 같아 너무나 안타깝다. 사람은 원래 자연의 일부로서 그들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면 영원할 수 있는데, 우리는 모두 개발이라는 망령에 홀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 죽음의 길을 재촉하고 있지는 않은가? 유엔 기후환경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을 질타했던 스웨덴의 소녀 툰베리의 절규는 지금 제주인의 절규이다.
‘전국 탈핵 도보 순례’ 길에서 만났던 40대 아줌마 부산의 양은희 씨가 2019년 겨울 제주 탈핵 순례를 마치고는 제주의 우리 집에서 6개월 살기를 하겠다고 하여 집을 빌려준 적이 있다. 요즘은 그 남편이 아예 직장을 제주로 옮겨와서 제주에 당분간 정착하여 살 것이라고 한다. 그 양은희 씨는 제주에 있는 송당의 본향당을 비롯하여 여러 당들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도서관을 찾아 제주 문화를 공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비자림 벌채 반대 현장에도 나가고, 제2공항 반대 피케팅에도 나가고, 강정해군기지 반대 100배 운동에도 나가는 등 제주 자연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제주 사람 못지않게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그러지 못하는 내가 미안하다. 그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제주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느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20여 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를 처음 찾았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공항에 딱 내리니까 다가오는 제주의 나무들을 보면서 ‘나무의 자유’가 확 밀려왔다. 부산에 살 때는 길거리 가로수, 바닷가 같은 곳에 가서도 아왜나무나 후박나무 등과 같은 상록수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보는 나무와 제주에서 만난 아왜나무, 후박나무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육지의 나무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괴롭힘을 당하지만 제주의 나무들은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고 자유롭게 자라는 것 같아 그 자유로운 자연, 그것이 너무 좋았다. 그런 제주에 그 후 몇 차례 오면서 느끼는 것은 올 때마다 너무 개발이 많이 진행이 되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처음에 우도를 찾았을 때는 그 맑은 바닷물이며 꺼먼 현무암 암반과 바위들, 산호백사장, 굵은 동아줄로 엮은 초가집 등 꾸밈이 없는 원시 제주의 모습이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우도의 해안가는 팬션, 식당 등으로 들어찼고, 그것도 모자라 우도봉 쪽으로 더 올라가고 있다.
‘섭지코지’ 같은 곳에 중국인들이 많은 땅을 사들여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각종 시설들이 들어섰는데, 다시는 그곳을 찾고 싶지 않다. 제주 전체가 그렇다. 해안가 쪽에 호텔, 팬션, 게스트하우스, 카페, 음식점 등의 관광시설들이 엄청나게 들어섰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마치 우도가 그랬던 것처럼.
제주는 제주다워야 한다. 복작거리는 도시의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 제주를 찾지는 않는다. 몸과 마음이 지친 현대인들의 쉼의 공간으로 남겨지면 안 되나? 파리, 베니스나 로마, 아요르카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주를 개발하여 얻어지는 수익이 제주 도민들에게 제대로 오는가? 그렇지 않다. 대형 관광 시설들은 전부 외지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는가? 제주는 개발이 아닌 보전이 돈이다."
제2공항이 지어지게 되면 반경 15km 지역은 죽은 사막과 같은 땅이 될 것은 뻔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착륙을 하고 하늘을 나는 항공기 때문에 새나 짐승 등 모든 생명들은 무서워서 떠날 수밖에 없다. 공항이 들어선다는 곳에 있는 오름도 깎아내야 하고, 70여 개나 된다는 숨골들이나 동굴들이 파괴되어 없어진다. 제주 특산종인 1급 보호종인 비바리뱀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저어새 등 1급 보호종 철새 등도 찾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의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며 묻혀있는 조상들의 산소들도 다 철거가 되어야 한다. 당, 절집, 각종 문화유산들도 사라져야 한다. 아름다운 밭담이며, 온 들판을 노랗게 물들이던 유채꽃이며, 귤 향기는 어디에서 맡아볼 것인가? 가을에는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감귤 빛이며, 오름을 뒤덮고 있을 억새풀들은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제주 땅 1/8에 해당하는 땅이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바뀌는데, 거기에 무엇이 볼 게 있어 사람들이 몰려오겠는가?
이렇게 사라질 성산 땅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가치까지 포함하여 돈으로 환산한다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별 근거도 없이 이러 저러한 계산을 해 보았다. 땅 한 평당 1억 원씩을 미래가치로 잡아서 계산을 하면(15km×15km÷3.3×1억원) 6818조 원 가량이 나온다. 물론 땅 한 평의 미래가치가 1억 원이라는 것은 택도 없는 얘기다. 현재 명동 땅 한 평의 값이 2억이니까 너무 과소평가한 것일지 모른다. 100년을 내다보면 땅 한 평의 기회가치는 최소 10억은 되지 않을까? 숨골이 담수 기능과 보존되었을 때 나무와 숲들이 공기정화, 홍수와 가뭄의 예방, 동식물의 서식지 제공, 관광가치, 자연치유 기능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가치들을 돈으로 따진다면 땅 1평의 가치를 1억으로 환산하는 것도 너무 낮게 책정된 값이다. 땅 한 평당 1억이 아니라 10억, 100억으로 평가를 한다면 그 가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수치인 ‘조’ 단위를 넘어서 ‘경’ 단위에 이른다. 그야말로 접해보지 못한 천문학적인 수치다.
물론 제2공항을 지어서 얻어지는 수익은 얼마일지 계산해 볼 수도 있지만 그 수익은 현재의 제주공항을 보완해도 가능하기 때문에 그 수익은 현 제주공항에서 찾으면 되지 굳이 제2공항을 지어서 입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포기하면서 제2공항을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비록 성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 태어나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다가 뼈를 묻었던 제주인, 우리 선조들의 영혼의 깃든 이 대지를 아스팔트와 비행기 소음으로 뒤덮어 질식시키는 것은 우리의 근본과 정체를 부정하는 것이거늘 어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혼을 팔자는 것인가? 대한국인들의 조상 대대로 살면서 우리의 혼이 넘실대는 반도 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나 제주인들이 제주 땅을 지켜내고자 함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현재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조상들은 고양부 삼성은 몇 만 년 전부터 살았다 치고, 나머지 성을 가진 사람들의 조상들은 대개 고려 때 자리를 잡았거나 조선이 건국되는 시기를 전후한 여말선초에 대거 제주로 유입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나의 입도조도 고려말, 고려 조정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에서 피난하여 제주에 들어왔다고 한다. 대체로 그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물론 최근에 감귤농장 붐이 일어날 때 들어온 분들도 있지만 여말선초에 들어와 정착을 하면서 토착민들과 피를 나누면서 현재의 제주 사람들을 이루었다. 일단 제주에 들어온 사람들은 조선의 출륙금지 정책에 의하여 싫으나 좋으나 제주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다.
제주민란이다, 이재수난이다, 4.3이다 하면서 변방에서 힘들게, 힘들게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려서라도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우리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선조들의 혼이 묻혀있는 탐라 땅을 돈이 좀 될까 싶어 이제는 내 주자고? 아니 될 말이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제주의 근본을 부정하는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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