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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법'에 아직도 '김용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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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법'에 아직도 '김용균'은 없다

[김용균의 죽음 1주기] '위험의 외주화', 불평등의 문제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김용균법' 국회 통과"

1년 전인 2018년 12월 27일, 거의 모든 언론매체가 비슷한 제목의 보도를 쏟아냈다.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산업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지난 연말 이루어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개정의 핵심 내용이었다. 이는 그동안 노동·안전단체가 산업재해 발생의 근본 원인으로 줄곧 지적해온 대상이다. 그렇기에 산안법 개정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도가 나간 후 세상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산안법도 개정됐고, 위험의 외주화도 금지됐고, 처벌도 강화됐고, 다 잘된 것 아닌가?" 심지어는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이들도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과연 사실일까? 정말로 그럴까? 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지난해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벌어진 투쟁의 핵심은 무분별한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라는 요구이었다. 김용균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고의 근본 원인이 다름 아닌 '위험의 외주화'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름을 딴 개정 산안법은 김용균 노동자가 담당했던 업무를 도급금지 범위에 포함하지 않았다. 새롭게 바꾸었다는 산안법은 결코 '김용균법'이 아니다. 법이 언급하는 도급금지 대상 작업은 개정 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도급이 이루어지는 경우 수급인(하청)의 안전보건 조치가 도급인(원청)의 작업자 또는 작업장 환경과 동일하게 이루어지도록 원청의 관리책임을 조금 강화했을 뿐이다.

ⓒ금속노조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하지만 몇몇 발암물질을 제외하고는 위험한 작업을 외주로 돌리는 것은 여전히, 제한 없이 가능하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지난 1년 사이 제2, 제3의 김용균은 그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우선 위험의 외주화는 안전보건 관리의 심각한 단절을 초래한다. 우리 산업현장은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식 고용구조이다. 위험한 작업이 외주화 즉 하청으로 넘어가면 소유와 운영이 분리되어 관리의 측면에서 심각한 단절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안전보건 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하청이 또 재하청으로 넘어가면 이런 단절은 더 커지게 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외주화한 현장을 보면 작업이 이루어지는 물리적 공간과 설비는 원청 소유이고, 설비를 운영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체는 하청이다. 따라서 안전보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원청은 '우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을 빼고, 하청은 '우리 설비가 아니기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며 손을 젓는다. 사람이 죽거나 다쳤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심각한 공백이 발생한다.

이런 무책임 상황을 놓고 어떤 이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측면에서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라는 현실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책임 강화만으로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산업재해는 결코 관리만 잘한다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리책임은 재해 예방의 측면에서는 2차 예방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예방책은 바로 생산설비와 시스템의 개선이라는 1차 예방이다. 낡은 기계를 놓고 백번 안전교육을 돌려도 안전장치를 갖춘 신형기계를 도입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이 외주화된 원·하청 생산구조에서 설비와 시스템 개선을 자기 임무로 인식하고 투자하는 사업주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위험의 외주화는 바로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의 문제이다. 노동환경에서 정의란 '누구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건강한 작업환경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모든 노동자에게 기본적 권리로서 환경의 위험과 이로 인한 피해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데, 특정 직군, 특정 지위의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다면 이는 결코 평등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발전회사의 산재사망 실태를 보자. 최근 5년간 국내 5대 발전사에서는 20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예외 없이 모두 하청 노동자이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비단 특정 사업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6년 약 4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를 보면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망 만인율은 원청 노동자보다 무려 8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동자의 산업재해, 특히 산재사망 부분에는 심각한 부정의(不正義)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의 삶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죽음에도 차별이 존재하며, 이런 차별을 만드는 원인이 바로 '위험의 외주화'인 것이다. 노동계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이를 위한 '원청의 책임성 강화'를 묶어서 주장하는 이유이다.

산안법 개정안이 놓친 도급금지의 대상 범위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 위험의 외주화 문제와 묶어서 생각해야 한다.

법을 다시 고쳐서라도 도급금지의 대상 범위를 유해물질을 포함한 고위험작업 중심으로 확대해야 한다. 개정된 법률의 도급금지 대상 작업은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 및 가열하는 작업', 그리고 석면 등 '허가대상물질 12종을 제조하거나 취급하는 작업'과 같이 고독성 물질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정작 위험의 외주화 금지 논의를 촉발했던 구의역 참사 작업(궤도사업장의 점검 및 설비 보수작업), 김용균 노동자의 작업(전기사업 설비 운전 및 점검·정비·긴급 복구업무)과 같은 위험 작업은 도급제한은 물론이고 도급승인 대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김용균 법에 정작 김용군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급금지 범위를 확대하는 것만으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도급금지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분적인 개선들이 산업안전이 너무나도 열악한 우리 조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는 하나 안전문제를 근본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를 경제논리나 기업규제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노동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안전과 생명에 대한 권리 즉, '모든 노동자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평등하고, 공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는 쪽으로 크게 넓힐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힘없는 하청 노동자가 위험한 노동 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불평등 문제는 계속될 것이고, 악순환이 만든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의 약자들에게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도금금지의 범위 확장 수준을 넘어 '위험의 외주화'라는 것 자체를 우리 사회가 정의와 평등, 공정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몰아내야 할 사회악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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