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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외교 진용'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기고] 지소미아 연장 발표에 대하여

정부가 일본과의 지소미아 종료를 연장하고 일본의 반도체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WTO 분쟁해결기구 제소를 잠정 중단키로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두고 '조건부'라는 단서를 달았다. '조건부'라는 뜻은 일본이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할 뜻이 전혀 없다고 하고 있다. 통상 이런 식의 협상의 결과는 양국 정부가 문서로 확인하고 동시에 발표하면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상례인데, 청와대에서 우리 정부가 공식입장을 발표하는 시각, 일본에서는 경제산업상이 간담회 형식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은 수출규제를 철회할 의사도, 백색국가 리스트에 한국을 복귀시킬 어떠한 의사도 밝히지 않은 채 국과장급 실무·정책 논의를 진전시켜 보겠다는 정도로 마무리 했다. '조건'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입장을 깔아뭉갠 것이다. 이미 NHK 등 일본의 주요언론에서는 강제징용문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논의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

이는 우리 정부 외교팀의 실력의 바닥을 드러낸 참담한 결과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발표되고 미국 대선이 1년여 남긴 시점에서 동북아시아에서 한일 지소미아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면 미국의 무게 중심이 일본으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애당초 출구전략도 로드맵도 없이 민감한 대일관계를 '아마추어리즘'으로 처리하다 동아시아 국제정지 소용돌이에 휘말려 좌초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에 '조건부'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되는 조약이므로 당장 일본이 아무런 협조를 해주지 않아도 지소미아를 종료하려면 최소한 내년 8월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WTO 분쟁해결 같은 국제중재재판의 경우 제소국이 사건 진행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해당 사안에 대한 법적 다툼을 취하하고 피제소국을 면책시키는 것에 다름없다. 현실적으로 WTO 제소가 진행돼야 일본도 압박을 느껴서 협상에 나올텐데, 분쟁해결기구 심의절차까지 중단시키면 우리로서는 일본을 통제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버리는 것이다. 일본은 이제 본격적으로 한일관계를 과거로 회귀시키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다. 정말 이러다 "퍼펙트 패배"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외교계에는 "해결되지 않음으로서, 해결된 것으로 갈음한다"는 격언이 있다. 이 알 듯 모를 듯한 한마디에 지금의 한일관계, 나아가 격동의 동북아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의 미래전략을 찾는 열쇠가 있다. 외교는 국가 사이의 고도의 기 싸움이다.

2차 대전 당시 중립국인 스위스 상공으로 진입한 독일 공군기에 대하여 스위스는 독일공군기의 비행 고도에 한참 못 미친 곳에서 대공포를 터뜨린 조치를 취했다. 이는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던 스위스 외교 당국자들의 고심이 배어있는 절묘한 한 수였다. 우리로서는 이런 외교 전략과 외교관의 부재가 아쉽다. 이번 사안에서도 지소미아는 건드리지 말고 수출규제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았으면 미국이 일본으로 기우는 실책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결과는 마치 동네축구를 구사하는 상대팀을 상대로 끝내기 자살골로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 정부 외교팀은 이제 전략도 동력도 다했다. 하루 빨리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를 위한 새로운 외교 진용을 갖출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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