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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왔어? 그럼 싸구려 모텔에서 촬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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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왔어? 그럼 싸구려 모텔에서 촬영하자

이주민이 본 한국의 다문화 예능 "차별의식 깔려 있다"

"어이구, 순댓국도 먹을 줄 알아?(굳이 꼭 반말을 한다.)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
"좋아하는 음식이 국밥? 한국사람 입맛이네!"

TV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에 이런 내용의 콘텐츠가 많다. <대한 외국인>, <이웃집 찰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다문화 고부열전>, <아빠 찾아 삼만리> 등 다문화 배경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외국인'이 한국적인 것을 이해하면 감탄하고 좋아하는 한국인의 모습. 적잖은 한국인이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거나 적극적으로 즐기지만, 과연 이주민 역시 그럴까.

"처음에는 '한국사람 다 됐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어요. 한국에 오래 살면서 이런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나는 나인데 꼭 한국사람이 돼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고 느낀 달까요. 저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데, 이런 분위기(매운 걸 먹어야 인정받는다는 분위기)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고교생 두 자녀를 둔 장동희(일본) 씨는 한국인의 '동화주의'에서 폭력성을 가끔 느낀다. 고교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키우는 이레샤(스리랑카)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의 칭찬하는 마음을 알아요. 재미를 추구하는 방송의 속성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방송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주민 1세가 될 테고, 제 자녀는 2세인데, 1세에게 취하는 태도가 2세에게도 그대로 내려와요. 답도 항상 같아야 하죠. 저는 한국에 산지 20년 되는데,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있으면 '김치 잘 먹는다'는 말을 들어요. 다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18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사소하지 않은 차별'이라는 제목의 토크쇼가 열렸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토크쇼는 이주민의 눈으로 한국의 다문화 예능, 교양 프로그램을 바라봐 우리 안에 내재한 차별의식을 되새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토크쇼에는 이레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 대표와 장동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일본어 통번역지원사, 정혜실 이주민방송 MWTV 대표(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이 참여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았다. 토크쇼 참가자들은 지난 3개월간 이주민, 혹은 외국인 관광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TV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후, 해당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한국인의 차별의식을 주제별로 나눠 이야기했다.

▲ 명절이 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종교 폭력의 전시. 한복 입은 외국인의 노래자랑 쇼(명절), 이주민 여성의 김장 연출(연말)도 빼놓을 수 없다. ⓒ연합뉴스

20년째 '한국인 다 됐다'는 말 들어보세요...

가장 먼저 거론된 주제는 한국인의 동화(同化)주의였다. 앞서 예시된 "한국인 다 됐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확인하는 장면이다. 외국인이 한국 관련 콘텐츠를 업로드한 상당수 유튜브 콘텐츠가 비슷한 맥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대한외국인>에서 외국인 출연자가 "국밥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한국인 출연자가 "한국사람 다 됐다"고 말하는 장면, <이웃집 찰스>에서 순댓국에 양념장과 들깻가루를 넣는 학생을 향해 한국인 진행자가 "제대로 먹는다"며 감탄하는 장면을 토크쇼 관객과 함께 봤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3개월간 모니터링한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정혜실 대표가 한국인의 동화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 동화주의의 문제점은 공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이 다문화 사회를 표방한다'고 하면서 실은 동화주의를 채택한다. 순혈적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놓지 못한 상황에서, '너희 외모는 다르지만, 한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따르라'는 관념이 저변에 깔린 것 같다"고 그는 전했다.

한국과 반대의 경우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대외적으로 강력하게 동화주의를 공표한다. '너희를 차별하지는 않겠지만, 프랑스 문화에 무조건 적응하라'는 식이다. 학교 내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원칙이 대표적이다. 다문화 사회에서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지 않게끔 원칙을 정하려는 조치이지만, 부작용도 생겨난다.

정 대표는 특히 혼인 이주여성에게 명절 제사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제사문화는 유교 의례다. 필리핀에서 이주한 가톨릭 신자, 스리랑카에서 이주한 불교도나 무슬림에게 이는 타종교 강요 행위다. 정 대표는 "한국의 다문화센터가 명절 마다 언론에 홍보하는 모습이 이주민 여성에게 한복을 입힌 후 제사를 가르치는 모습"이라며 "강력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다문화'라는 단어가 오용되는 사례도 토크쇼의 주제로 올랐다. <이웃집 찰스>의 한 장면이 언급됐다. 다문화를 배경으로 꾸려진 '글로벌 프렌즈' 팀이 한국의 중학생 팀과 농구 시합을 했다. 시합 후 한국 방송 카메라가 한국 태생의 아이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다문화가정 애들이랑 농구하니 느낌이 색다르고 좋았어요." 꾸밈없이 밝은 미소로, 학생이 방송에 의례적으로 할 법한 대답을 들려준다. 왜 문제일까?

'다문화(multiple culture)'와 '다문화가정'은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사용된다. '다문화가정 아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맥락에는 쉽게 말해 '가난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여성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라는 뜻이 깔려 있다. 아예 법적으로도 차별 정신이 내재돼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아예 '결혼이민자와 대한민국 국적자로 이뤄진 가족'만을 지원 대상으로 못 박고 있다. 법부터 '다문화', 곧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제한적으로 정의하는 셈이다. 결국 이는 구별, 차별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인은 누구냐'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나? 국적자면 한국인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이른바 '순수한 한국인'만이 한국인인가? 한국인은 '특정 가족'을 기준으로 한국인은 정상, 나머지는 비정상으로 가른다. 우리 단체가 (다문화가족)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아이들은 그저 '내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혜실)

정 대표는 나아가 '다문화가족'이라는 단어에 얽힌 차별적 함의도 지적했다. 그는 "적잖은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문화가족'이 범주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서부유럽, 일본에서 온 사람은 글로벌한 사람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여성이 있는 집이 '다문화가족'이 된다"며 "방송이 국가별 위계, 돈에 따른 서열화를 부추기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PD인 이채훈 정책위원도 한국 방송 프로그램의 차별의식을 인정했다. 이 위원은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다문화'를 '다양성'으로 바꾼다 해도 결국 다름을 전제한다"며 "당장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지만,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인 듯하다"고 언급했다.

▲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 기념관에서 한국의 외국인 대상 프로그램의 차별 의식을 논하는 토크쇼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 이레샤 이주여성 단체 톡투미 대표, 장동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일본어 통번역지원사, 정혜실 MWTV 대표, 이채훈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프레시안(최형락)

'다문화' 배경에는 'GDP 차별'

특히 토크쇼 출연자들은 세 번째 주제인 '고부갈등' 부문에 들어서 EBS의 <다문화 고부열전>에 분통을 터뜨렸다. 토크쇼에서 이 프로그램의 두 꼭지가 살짝 보였다. 일하다 늦게 집에 들어온 베트남 출신 며느리 때문에 밥을 굶었다며 역정을 내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한 편, 짧은 반바지를 입은 며느리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며 굳이 '사부인'에게까지 반말을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한 편이었다. 토크쇼 참가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이레샤 대표는 단호한 목소리로 "모니터링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을 처음 봤는데, 제작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며 "이 방송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이레샤 대표는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한 며느리에게 오직 한국 법만 따르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제가 있는 단체에서 하루 열 명 이상의 이주여성과 상담하는데, 그분들로부터도 이 방송을 성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방송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일단 이 프로그램은 EBS의 인기 콘텐츠다. 이채훈 위원은 "EBS가 한국의 고령층 시청자에게 영합하려다 이주민 여성의 정서를 소홀히 한 듯하다"며 "고부갈등을 선명히 부각하려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연출을 하는 것 같다. EBS 내부에서도 비판이 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정혜실 대표는 이처럼 이른바 '나쁜 며느리'와 '전통적 시어머니'의, 이제는 한국 여성이 거부하는 고부상이 여성 전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 프로그램에서 주로 등장하는 연출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마구 무시하고, 결국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화해'하는 모습이다. 이제 한국 며느리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모습을 고령 시청자가 내면화하게끔 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나아가 "'이주여성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존재'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만드는 문제도 있다"며 "결국 시청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살던 여성'보다 (방송을 보는) '나'의 우월한 위치를 내면화하게 된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언급했듯, 이제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단순히 피부색 차별이 아닌, GDP 차별이다. 우리가 얼마나 경제 위계 질서로 사람을 판단하고 국가를 판단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다문화 고부열전>"이라고 지적했다.

'동남아 출신'이면 일단 반말?

토크쇼 출연자들은 '가난한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가 수년 만에 가족과 감동적으로 만나는 모습을 연출'하는 EBS의 <아빠 찾아 삼만리>로부터 가난을 전시하는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특히 이 방송의 한 꼭지에서 한국의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네팔 출신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슬리퍼를 신고 왔다가 추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지나가는 여성이 양말 사 신으라고 돈을 건네는 장면을 설명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 대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심지어 제작진은 '아빠의 고생하는 모습'을 연출하겠다며 아이들을 싸구려 모텔이나 공장기숙사에 재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찍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방송이 알려주지 않는 문제를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빠 찾아 삼만리>에서 흔히 나오는 연출은 먼 한국으로 가족을 두고 돈을 벌러 온 아빠가 수년 만에 가족과 감동적으로 재회하는 모습이다.

정 대표는 "실상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한국에서 가족을 만날 수 없다. 법무부가 '내 아버지를 만나러 오겠다'고 해도 비자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방송은 이런 제도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오직 '좋은 사장을 만나서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가 가족과 잠시 만나 감동적 모습을 연출한 후 헤어지는 그림'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못 사는 나라 노동자'에게 무례한 한국인의 언어 습관 역시 문제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아빠 찾아 삼만리>가 대상이 됐다. 공장 기숙사 벽에 한글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쓴 출연자에게 제작진이 물어본다. "무슨 뜻인지 알아요?"

모르는 말을 적어놓을 리가 있나. 한국인이 대상이었다면 당연히 "왜 붙여놓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심지어 질문자는 자신의 무례함을 인지하지도 못 한다"고 혀를 찼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적잖은 한국인이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게 갑자기 말을 놓는 화면도 자주 잡힌 바 있다.

이레샤 대표는 해당 장면을 보고 씁쓸함을 표했다. 그는 "저는 한국에 산지 20년이 됐는데, 지금도 '안녕하세요' 하면 '한국말 잘 한다'는 말을 듣는다"며 "한편으로는 우리(이주민)의 잘못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질문에 언제나 한국인이 바라는 답을 하니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출연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이채훈 정책위원은 "오늘 거론된 문제는 방송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나아가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방송이 반걸음이라도 앞서가야 하는데,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날 토크쇼는 분쟁 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김영미 피디도 지켜봤다. 분쟁지역 취재를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김 피디는 "저의 경우 여러 나라를 다니다보니 그 지역 사람과 공감코드, 동질감을 찾을 것부터 찾는데, 한국 사회는 구분짓기부터 하는 듯하다"며 한국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 모습, 과거 '38따라지'라고 하며 북한 이주민과 나머지를 구분한 사례 등을 들어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피디는 "한국이 너무 심한 경쟁사회라서 어떻게든 나의 우월함을 찾으려는 생각이 차별코드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모두가 함께 살려면 차별 대신 공감 코드부터 찾았으면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관객석에서 토크쇼를 지켜보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장재혁 책임피디도 한 마디를 거들었다. 장 피디는 특히 해당 프로그램에서 '부유한 나라의 남성이 주로 출연하는 모습'에 대한 비판을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아무래도 저희 제작사가 상업방송사(엠비시에브리원)이다 보니 시청자의 선택을 맞춰갈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를 극복하려고 제작진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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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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