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둘러싼 기후위기 환경이 심상치 않다. 온도상승 효과로 인한 영향이 과거 평가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소재한 기후변화 연구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은 지난달 29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상시 침수 피해를 입는 인구가 약 3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기존 예상치인 7900만 명의 3.8배에 이르는 수치로,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의 위기가 더 빨리 닥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9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채택한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고서는 해수면 상승과 해양 온난화의 속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졌고 열대 폭풍과 고수온 현상의 빈도가 잦아지고 그 강도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한 해안 도시의 경우 현재 100년에 한 번 겪을 만한 극한현상을 2050년 즈음에는 매년 겪게 되고, 2100년 해수면 상승치가 2014년 IPCC 보고서가 예측한 것보다 보다 10㎝ 높은 1.10m에 달할 수 있다고도 전망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파국을 향한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사회의 발걸음은 그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에 지구촌 전체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우려할 만한 처지가 되지 못한다. 2009년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도 2017년 현재까지 온실가스 배출의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준비하기는커녕, 지구촌의 기후 파국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정부는 2차 기후변화대응기본계획 확정을 발표하며 8대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여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공식화하였다. 석탄발전 감축과 부문별 수요 관리 강화, 전기차와 수소차 등 저공해차 보급 확대 등의 세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전과 달리 종합 평가를 강화하고 배출실적 공개를 통해 실질적인 감축 정책 효과를 높인다는 보완책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정책의 진일보를 이루기는 하였다. 그러나 지난 시기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 기여도를 생각하면 정부의 이번 계획은 국제적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OECD 국가 전체 배출량이 8.7% 감축하는 동안 24.6%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보였다. 현재 계획으로는 당분간 우리는 배출 증가에 기여할 전망이다.
우리의 현재 기여도를 고려하면 최근 몇몇 국가들에서 선언한 '2050 온실가스 순제로(net zero) 배출' 목표를 우리 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넷 제로 배출)은 IPCC가 2018년에 발표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 나온 바 있다. IPCC는 온도상승 1.5℃와 2℃가 주는 영향 차이가 현저함을 여러 데이터로 제시하면서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순제로 배출 도달로 1.5℃로 온도상승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였다. 배출 감축에서 나아가 인위적으로 배출된 대기 중의 온실가스를 기술적, 혹은 자연 흡수 방식 등을 통해 대기로부터 제거함으로써 순배출 0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자면 각 국가가 에너지 수요의 절대적 감축, 전기 생산의 탈탄소화, 에너지 최종 소비의 전기화, 농업 배출 획기적 저감, 지질학적 탄소 저장 방안 개발 등에 나서야 한다고 IPCC는 제안한 바 있다.
최근 넷 제로 배출을 공식 목표로 채택한 국가들이 하나 둘씩 증가하고 있다. 영국의 비정부기구인 Energy & Climate Intelligent Unit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을 선언한 국가는 16개국에 이르고 준비하고 있는 국가도 4개국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2019년 6월 영국은 '2050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 목표를 2008년에 제정한 '기후변화법' 개정안에 명시하여 순제로 배출을 법제화한 최초의 G7 국가가 되었다. 영국 이외에도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가 넷 제로 법을 갖춘 국가가 되었고, 칠레와 뉴질랜드가 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핀란드, 덴마크, 포르투갈과 코스타리카와 아이슬란드 등에서는 법을 갖추지는 못했으나 이행 정책을 수립하였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와 아일랜드도 넷 제로 목표 공식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과거 감축 정책보다 온실가스 직접 감축 강화, 온실가스 흡수원 확보, 순환경제 정착 등을 강조하여 기존 정책 강화 및 정책 영역 다변화를 보여준다. 영국은 순제로 배출 달성을 위해 2017년 마련한 ‘청정성장전략’ 내용을 수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석탄화력 발전소 감축, 기존 화력 발전소의 바이오매스 활용 발전소로의 전환, 2025년 10월 1일부터 탄소포집저장기술을 미적용한 발전소 전면폐쇄 계획, 2035년 휘발유 디젤차 판매 금지, 2020년까지 가정 내 화석연료 난방 설치 단계적 중단과 열 펌프 또는 전기 활용 난방 확대 정책을 수립하였다. 아울러 저탄소 농법 빛 개량을 통한 농지 이용 개선, 재활용율 증가 및 탄소 포집 기술 개발 투자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순제로 배출 목표 설정을 고려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경우, '2050 탄소 중립 전략안'을 마련하여 유럽 에너지 공급의 탈탄소화, 완전한 순환경제를 통한 산업 근대화, 바이오경제 강화와 흡수원 확보, 스마트네트워크 인프라 확충 등을 계획하고 있다. 영국은 이행 정책이 다만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 혁신, 신산업 창출로 '청정 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충남도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선언을 한 바 있다. 다가오는 기후위기는 지자체 단위에서만의 선언이 아닌 국가 단위의 2050 온실가스 순제로 배출 정책 이행을 요청하고 있다. 화석 발전소 폐쇄 및 연료 전환의 획기적 가속화, 재생에너지 확대 가속 및 온실가스 제거 기술 개발, 순환 경제 정착 등의 순제로 배출 정책 이행에 하루라도 빨리 나서야할 것이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화석체제의 고착성은 강화될 것이고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행 비용을 우리에게 요청할 수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 페달을 더 밟고 아직 시작하지 못한 전부문의 탈탄소화 정책 이행에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를 향한 시간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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