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석 달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유일무이한 이슈는 조국 사태였다. 일부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끝내 조국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집토끼마저 놓칠 우려"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검찰 개혁의 창'처럼 이미지메이킹된 조국을 버릴 경우 '집토끼'를 놓칠 위험이 있고, 다소간 '산토끼'를 버릴 위험이 있더라도 밀고나갈 수밖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정치 논리에는 장기적인 가치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성패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논거이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정의당의 약점
한편 정의당은 '조국 사태'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조국 장관 인선 과정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던 정의당 지도부는 9월 7일, 갑자기 장관 임명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조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는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고, 부와 지위가 대물림되는 적나라한 특권 사회의 모습은 청년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었다"고 첨언하긴 했지만, 결론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꿋꿋이 개혁의 길로 나가신다면 정의당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개혁의 선두에서 험준 고령을 함께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 고 노회찬 의원
당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애매모호함은 정정되지 않았다. 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조국 사태를 관통하는 가장 중대한 쟁점은 회피하면서, '검찰개혁'만을 이야기했다. 심지어 박원석 정책위원장은 <채널A>에 출연해 정경심 옹호에 부질없이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의당의 이런 모호성에 '변죽만 울린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전부터 정의당은 "노회찬의 6411 버스를 잊지 않겠다"고 말해왔지만, 중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는 이런 오락가락한 모습으로 6411번 버스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형용모순은 정의당의 사상적 곤경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드러낸다.
10월 14일 조국 전 장관의 사퇴와 24일 정경심 교수 구속으로 '조국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레임덕을 점치는 것은 섣부르지만 현 정부에 대한 '산토끼', 중도층 및 20대의 이탈은 명백해 보인다. 10월 셋째주에서 넷째주로 이어지면서 이탈이 완화되긴 했지만, 냉소로 돌아선 상당수가 돌아오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정의당의 지지율은 일정한 하락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국 사태 최대 피해자는 여당이 아니라 정의당"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내년 총선 교섭단체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바른미래당에게 지지율을 추월당한 현재 상황에서 "죽 쒀서 개주는 것 아니냐"는 소리마저 들린다.
조국 가족을 옹호하던 김어준·유시민 등 정치 유튜버들의 논리는 날이 갈수록 옹색해지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표창원·이철희·백혜련 의원 등을 중심으로 자성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의당 내에서도 청년 당원들을 중심으로 당지도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당 지지율이 1년 만에 반토막 났지만 지난 판단이 오류였다거나, 방향을 수정할 여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실용'이라는 알리바이
정의당의 이런 모순적 행보는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이라고 평가된다. 어떤 결단을 하던 당내 분열이 예기된 상황에서 수치적으로 덜 치명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얼마 전 한 대학에서 열린 특강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조국 사태에서 보인 지도부의 오판에 대해 청년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마치 '산토끼'는 민주당의 진보적 지지층이며, '집토끼'는 전통적 진보층·노동운동 등으로 묘사하면서 "산토끼를 잡기 위해선 그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의 현실정치우위론은 자기 혁신을 꺼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핑곗거리다.
기성정치의 단골 비유인 '집토끼냐 산토끼냐'의 문제를 살펴보자. 정의당의 집토끼는 과연 누구인가? 몇 년 전 조사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43%가 정의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대선 울산에서 유독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편 유권자를 연령대별로 조사한 결과, 20대에서의 득표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조국 사태를 경과하며 보여준 정의당의 행보는 실용주의적 선택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정의당 내 청년당원그룹 '모멘텀'은 "정의당은 조국 정국 내내 집권여당에 끌려 다녔으며, 결국 조국의 자진 사퇴로 생겨난 거대한 해일에 정의당마저 휩쓸리게 만들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현실'이라는 논거는 아주 쉽게 '정치적 감각' 혹은 '경험 우위'의 논리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이런 논리는 필연적으로 중장기적 통찰력을 놓치게 만든다. 지난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에서 종종 일부 진보 정치인들은 이런 '현실'에 기대 고립적인 선택을 취했다. 그리고는 이어진 정체성 혼란과 지지층의 균열, 진보정당의 실패에 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 정치적 오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실수에 대해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평가한 바 없다. 거꾸로 '운동권 정당 탈피' 등의 허수아비 때리기에 집중하며 자신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런 인식론적 결함은 모든 곤란을 애매모호하게 '현실정치의 폭력성 탓'으로 돌리게 한다. "넌 너무 현실을 몰라"에서 '현실'은 객관적 정세분석이나 국민적 요구에 기반하기보단 일종의 '만들어진 사실'에 불과할 뿐이다. 요컨대 정의당이 조국 임명을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누군가 "현실을 너무 몰라"라는 보이지 않는 논거로 눌러버렸다고 하자. 지금에 와서 봤을 때 그때 현실을 몰랐던 것은 과연 누구인가?
심상정 대표는 지난달 31일 있었던 국회 연설을 통해 정의당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과오를 인정했다. 여론이 크게 어긋나 있음을 매우 뒤늦게 인정한 것이다. 버스가 아직 떠나지 않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는 정세를 판단하고 정치를 사유하는 기준부터 뒤엎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지금의 곤란을 기존의 '현실정치론'을 무기삼아 비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만약 당장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판단된다면, 그것이 진보정당의 가치를 역행한다고 할지언정 따라야 할까?
그것은 너무도 주관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진보정당으로서의 가치를 모조리 상실해버릴 위험이 있다. 또, '과감한 혁신'을 도모해야할 때조차도 기존의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부재하는 '이념·사상', 정의당과 사회운동 사이 넓어진 간극을 정치인 몇 명의 '현실적 판단'과 '여론 정치'로 메울 순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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