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국민'의 입장에서 기성 정치권과 지배 엘리트를 비판하며 전개하는 정치 운동으로서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기 위하여 정치혁신과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한 운동이다. 이는 당연히 기존 파워 엘리트들에 대한 인적 쇄신과 청산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포퓰리즘은 고정 지지층을 넘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 행위의 형태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의회라는 대의기구를 우회한다는 점에서 대중영합주의나 인기몰이 정치로 해석될 수 있다. 20세기 중남미에서 포퓰리즘 등장 배경에는 스페인·포르투갈 등 열강들의 식민 지배로부터의 유산인 사회경제상의 압도적인 불평등이 있으며, 1930년대 이후 대지주나 광산주 등의 과두지배에 대항하여 증간층이나 노동자,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조국 정국과 이후의 대규모 집회는 이러한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인식하는 적대와 배제만이 그 공간을 지배할 뿐이다. 조국 사퇴 이후에도 검찰과 법원에 대한 양 지지층의 압박 등 진영 논리는 더욱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집권측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검찰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설정하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공수처 설치를 둘러 싼 대치와 지지자들의 가세로 진영 대립과 여야 대치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 집회에서는 문재인 하야와 탄핵 등의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지 않는 극단적 주장과 극우냉전주의의 색깔론에 기댄 퇴행적 구호가 난무하면서 조국 사태와 연관성이 없는 편향의 동원이 화석화된 정치언술로 굳어졌다. 한국당 지도부는 이에 참여하여 장외정치를 부채질한다.
정경심 석방을 촉구하고 공수처 설치를 요구하는 집회도 마찬가지다. 자신들만의 주장의 당위성만을 주장할 뿐 이에 반하는 어떠한 논리도 끼어들 공간이 없다. 검찰을 한국당을 비호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등 논리적 정합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양대 진영의 적대적 대립에 기인하는 당파적 양극화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조국 사태는 시민사회 내의 대치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당은 한국사회의 갈등구조의 완충지대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시민의 정치적 의사를 조직화하고 표출하는데 실패했다.
한국 정치사회는 세대가 지났지만 현대 한국정치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한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인 <혼돈의 정치>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통합과 연대의 사회적 가치의 실종, 극단의 광장정치에서는 적의와 혐오만이 넘쳐난다. 여과되지 않은 주장과 선동만이 난무하는 광장은 이미 부패한 기득권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원하고 기득권 타파를 외쳤던 남미 유형의 포퓰리즘의 모습도 아니다.
비이성과 몰지성의 여과되지 않은 당파적 주장은 정치 실종을 가져오고, 정치 부재는 다시 극단의 정치를 결과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정치 고리를 단절하지 않고 검찰개혁이 시민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이며, 수능 정시 확대 등 여과되지 않은 임기응변의 정책은 평등과 공정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을 완전히 갈아엎지 않고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정치 실종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내년 총선의 유불리만을 들여다보는 지금의 정치세력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검찰개혁보다 정치개혁에 더 진력하고 선거제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이유이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의석 28석 감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에는 국회의원 정수 동결에 합의하더니 상황변화도 없이 의원 정수 확대를 공론화해서 또 다시 기득권을 챙기겠다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 1인당 국민수가 한국보다 많은 나라는 미국, 일본, 멕시코 정도이니 이론적으로야 330~340석의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 또 다시 정치기득권 집단의 파이를 키우는 작업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금의 정치관행과 정치공간에서 국회의원수의 증가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권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진영논리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담대한 발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대통령제의 숙명인 레임덕은 물론 진보의 가치조차 훼손할 수 있는 진보의 후퇴를 결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당의 수구적 행태는 집권세력이 중도층의 지지를 획득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소수의 목소리로 전락할 것이다.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조국 사태에 대해 송구함을 표현했고, 총리는 예산결산위에서 마지못해 사과했다. 집권당 대표는 조국 사퇴 16일이 지나서야 뒤늦게 사과했으나 울림도 감동도 없다. 제1야당의 여전한 정치 인지감수성 부족이 그나마 민주당에게는 위안이 될지 모르나 중도세력까지 우군화 하기 위해서 지금의 민주당은 무기력하고 노쇠했다. 친문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위선과 위악을 마다않는 중진들의 모습은 이를 더욱 확인시킨다. 다시 촛불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되 진영의 바깥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내년 총선거는 의외로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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