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민주혁명의 진정한 진로, 결코 탄핵규탄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얻어야 할 바는 “민족의 역사적 요구를 배반하지 않을 권력”**
2004년 3월 중순의 한반도 남쪽에는 탄핵규탄의 물결이 노도(怒濤)와 같이 출렁이고 있다. 누구도 감히 막을 수 없는 <민주혁명>의 예비 된 전열이 부패한 냉전수구세력의 반동적 바리케이드를 향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돌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탄핵은 역설적이게도 대통령 궐위에 따른 헌정중단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민중의 손에 의한 새로운 헌정의 창출을 열망하게 하고 있다.
사유도 제대로 성립할 수 없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고리로 권력에 대한 수구적 장악을 기도한 한나라당과 정파적 생존을 위해 이와 누추하게 결탁한, 과거의 전통적 정체성을 대부분 상실해버린 민주당 등 야당의 각 방어진지는 지금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함락되기 직전의 공황상태에 놓여 있다. 미리부터 승패가 결정된 싸움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반동적 바리케이드를 돌파하는 민주 혁명의 진군**
실로 역사의 주도권은 민주혁명의 진영으로 급속하게 이동 중이다. 탄핵의 칼을 보란 듯이 잡은 손이 스스로의 명운을 비극적으로 재촉하고 있다. 민주혁명의 진군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진군의 최종 목표는 탄핵규탄과 노무현 정권의 제도적 복권을 실현하는 지점에서 결코 멈출 수 없다. 그렇게 되는 것은 이 존엄한 민주혁명의 대열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것에 일차적 목적을 가진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의,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기획에 기만적으로 이용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혁명의 역사적 대의가 그런 식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
기억에도 선명하지 않은가? 2002년 겨울, 자주와 평화를 뜨겁게 외치면서 노무현 체제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저 찬란한 촛불행진의 대오가 일단 집권에 성공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 의해 어떻게 파괴적으로 분열되어갔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나서 노무현 지지 세력들의 적지 않은 수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정치권력의 쟁취에만 몰두한 세력과 이들에게 더 이상 이용당하기를 거부한, 사회혁명의 역사적 목표에 헌신한 세력의 분리가 이루어진 출발점이었다.
하여 이를 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혁명은 그 순결한 역사적 의지가 또다시 권력논리에 따른 정략의 간계(奸計)에 의해 유린되지 않도록 비상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해야 할 일이다. 지난 1년간, 노무현 정권으로 말미암은 민족적 진보와 개혁 전선의 교란이 가져온 폐해는 얼마나 심대했던가.
이번 탄핵결정을 두고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은 냉전수구세력의 정치적 결사체 한나라당과, 한때 평화개혁세력의 일 분파였던 민주당의 “반역사적 결탁”이라고 지탄하고 있다. 그 지탄은 당연히 옳다. 그러나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 이미 이라크 침략전쟁 동조 파병, 농민경제의 파탄을 가져올 한-칠레 자유무역협약(FTA) 조인, 죽음을 불사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처리하는 일과 관련하여 한나라당과 적극적 결탁을 통해 이 나라의 민족적/민주적 기반을 심각하게 붕괴시켜왔다는 것 역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뿐인가? 냉전수구세력 한나라당과 정치적 결탁을 통해 이들에 대한 정치적 선물 운운으로 대북 송금 특검을 밀어붙여 6.15 남북 정상회담의 민족적 성과를 짓밟은 노무현 정권이야말로 “냉전수구세력과의 반역사적 공조체제를 가동시킨 원조”가 아닌가. 냉전수구세력의 방해로 노무현 정권이 도저히 해내지 못한 민족사적 결정, 또는 민중적 정책의 선택이 있었던가?
이에 대하여 정치적 합리화에 몰두해온 그의 추종세력들이 일체의 반성도 없이 오늘의 탄핵국면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확산의 기회로 삼으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열한 행위이다. 열린 우리당은 민주혁명의 정치적 성과가 자신들에게 헌납될 수 있다는 기대로 부풀어 있는 모양인데 민중의 역사 의지는 이제 그렇게 호락호락 장악되지 않을 것이다.
***탄핵규탄이 노무현 정권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부패한 냉전수구세력이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해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의 그간 저질러 온 역사적 죄과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 정당 내의 정치인 개개인의 질적 차별성이 엄존하고 있기에 자칫 집단적 매도에 흐를 위험이 있다는 점을 십분 감안하고라도 우리는 오늘날 정치적 기득권을 가진 정당정치가 너나 할 것 없이 얼마나 정치 윤리적 파산의 지경에 이르고 있는지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심판자는 엄연히 오늘의 민주혁명, 그 중심에 있는 민중들이다. 이들을 자신의 권력 옹위를 위해 줄을 세우려는 생각을 추호라도 먹으려 든다면 그것은 자기 무덤파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재차 강조하건데 오늘의 시국에서 진정한 민주혁명은 그 혁명의 동력을 탄핵규탄에만 집중함으로써, 그동안 민족의 중대한 역사적 요구와 인류적 가치를 거듭 배신하거나 거부해온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 자리매김할 수가 없다. 또한 탄핵규탄의 거대한 함성이 자칫 노무현 정권과 열린 우리당에 대한 반사적 옹호에 따른 정치적 지지에 복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심각한 과오마저 이 기회에 그대로 덮어져 버리고 마는 사태를 결연히 막고, 이 나라 민중이 진정한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서 권력의 참된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감당해야 할 민주주의 투쟁의 본질이다.
하늘이 준 기회를 낭비해서는 아니 된다. 주어진 공간을 헛되이 저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민주혁명의 현장에서 우리는 탄핵규탄과 함께, 파병철회의 깃발도 높이 들어야 한다.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에 대한 질타도 아울러 외쳐야 한다. 부안 핵 폐기장 사태 해결과 관련한 권력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권리가 더 이상 유린되지 않는 현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절규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과 관련한 부패와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중단되지 못하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굴종적인 대미정책의 자주적 전환을 뜨겁게 공론화해야 한다. 6.15 남북 정상회담의 정신에 따른 남북 협력과 주체적인 한반도 정책의 추진을 큰 목소리로 거론해야 한다. 민주혁명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육성들을 모두 또렷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누가 민주주의와 개혁의 명분 뒤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의 정체를 은폐한 채 정치적 제스처에 몰두하고 있는지 알아내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누가 진정 이 나라의 민족적 현실과 민중적 현안에 대하여 절박한 심정을 안고 헌신하려는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파병철회,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 지탄, 노동자의 현실 개선 등의 요구 모두 외쳐야**
이번 탄핵국면이 극단적으로 전개된 상황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반동적 정치의식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그에 못지않게 측근 비리 문제,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통해 자기변명으로 일관한 채 사태수습의 근본적 의지를 전혀 발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파국을 막는 정치적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한 국회의장의 거듭되는 대화제의도 “피곤하다”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 한 마디로 외면함으로써 결국 탄핵정국을 정략적 대결국면으로 몰아간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매섭게 묻지 않을 수없다. 그러한 태도는 좋게 보아주어 정치적 무능력이거나 아니면 탄핵국면의 최대수혜자가 되려는 기획의도가 숨겨졌다는 의혹을 받기에 족하다.
어느 쪽이든 무서운 일이다. 민족적/국가적 사안을 가볍게 여기거나 또는 정략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그의 자세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은 현명하여 탄핵국면의 이면에 있는 정략적 차원의 가능성을 드디어 날카롭게 주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탄핵규탄이 곧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민중은 애초의 흥분과 열기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냉철하게 오늘의 사태가 가야할 역사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고 정리하며 발언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반노 대 친노”나, “민주 대 반민주” 또는 “탄핵 대 탄핵규탄”의 국면을 넘어서서, 진정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절박한 역사의 요구를 담아낼 권력의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놓고 혁명의 진정한 진로를 결정해나가는 노력을 집중시켜나갈 것이다.
***탄핵정국,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력인가, 기획의도가 담겨 있는 선택이었는가?**
탄핵행위를 규탄한 결과가, 가령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조하여 우리의 청년들을 장래에 이국땅에서 희생시킬 준비를 하고, 이 나라를 아메리카 제국주의 전범체제의 하수인으로 만든 정권의 강화와 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세력의 의회장악으로 이어진다면 오늘의 민주혁명은 실패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 노동당 권영길 대표가 이번 탄핵정국의 초점을 보수정치 심판과 민생을 위한 정책대결의 장으로 만들자는 목소리를 낸 것은 정당하다. 진보정치의 대안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마치 이것이 존재하지 않은 듯이 여기도록 만드는 언론들의 태도는 경악할 일이다.
탄핵규탄과 대통령직의 원상회복이 민주주의의 진전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회복된 권력이 무엇을 하려는가가 보다 의미 있는 질문이자, 이에 대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대안, 즉 진보정치의 역사적 의의와 그 실천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내세우는 세력의 존재가 정치적 지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더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아울러 짚을 것 하나는, 진보언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한겨레신문마저도 탄핵정국을 맞이하여 과거 냉전수구세력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국가안보의 불안, 대외 경제신인도 동요 등의 이유를 내걸고 헌정중단의 해석에 접근한 사실이다. 이는 향후 언론의 역할과 관련하여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지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논조는 권력 논리에 휘둘려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을 확고히 믿고 나가려는 의지의 박약을 드러냄이요, 이 나라가 그동안 길러온 정치사회적 역량을 모멸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기만 당할 수 없는 민주혁명, 그 2막 그리고 진보정치**
실로 이제 우리는 매우 극적으로 맞이한 민주혁명의 전면적 공세국면에서 참된 역사의 진보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의 과제 앞에 서 있다. 냉전수구세력도 척결해야 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의 기득권도 청산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민족적, 민중적 요구도 정치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이는 지난한 작업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는 상당히 유리해졌다. 그동안 이 땅에서 피 흘려 쌓아온 민주주의 투쟁의 유산이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르게 계승하면서 새로운 유산을 만들어내야 하는 <혁명의 제2막>이 올랐다.
다시는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참된 민주혁명의 봄을 오게 하기 위한 우리의 명민한 역사적 각성과, 권력의 논리에 기만당하지 않는 사심 없는 순결한 의지, 그리고 뜨거운 민족애와 인류적 사명감이 있다면, 역사는 오늘날 우리를 무한히 축복해줄 것이다. 그 축복의 자리에 우리가 함께 서 있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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