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제는 임기 말의 권력누수 현상으로 지지율이 급전직하하면서 국정동력이 급속히 저하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임기 초의 지지율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각 71% 수준이었다. 노무현도 70% 수준으로 높은 지지율이었다. 이명박은 50% 초반대, 박근혜는 42% 정도를 기록했다. 집권 3년차에는 대체로 30% 대에서 40% 후반대를 기록했다.(김영삼은 20% 후반대, 이명박은 40% 후반대. <한국갤럽>)
문재인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대체로 40% 초반에서 중반을 횡보하고 있으니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에 비해 수치상으로 결코 낮은 지지율이 아니지만, 임기 초 80% 수준임에 비추어 볼 때 반토막이 났다.
박근혜 탄핵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민심은 급속도로 이반할 수 있다. 광장 민주주의의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을 박근혜 정권과 비교한다는 것은 전제가 틀렸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집권세력이라는 공통분모라는 관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가치는 충분하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2014년 11월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당시는 집권 2년차 후반이었다. 박근혜 국회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정윤회가 비선실세로서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정기적 모임을 갖고 국정에 개입한다는 이른바 '비선실세 파동'이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이 부하 직원에게 지시해서 작성된 이 문건의 외부유출을 '국기문란'이라며 일벌백계를 지시하는 등 파문이 일었다.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 문건을 보고받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이 사태를 키웠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는 사실무근으로서 '지라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박근혜는 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 프레임으로 압박을 가하고 국회를 비판하는 등 민심과 멀어지는 행보로 최순실 국정농단을 불렀고, 민주주의의 퇴행은 결국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탄핵은 권력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은 필연적 귀결이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사태를 호도하기 바빴고 청와대 참모와 여권 실세들은 대통령 심기 경호로 일관했다.
두 달 이상 이어진 '조국 블랙홀'이 그의 장관직 사퇴로 파국은 넘겼으나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와 국면, 정치공학, 선거 등 숱한 이슈의 이면에 드러난 집권세력의 강고한 단일대오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검찰이 무리하게 정치에 개입하려고 했다고 보는 시각,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카르텔'의 무리한 수사 등, 관점의 옳고 그름 여부를 떠나 분명한 것은 집권세력의 정치적 행위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이기는 자유한국당도 예외가 아니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은 집권세력이 지는 게 맞다. 진영에 갇힌 이번 사태에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조국이어야 한다는 비상식의 허구가 혼돈의 공간을 지배했다.
진영논리의 첨예한 충돌, 21대 총선, 노무현 죽음의 기시감과 검찰개혁 등의 변인들이 맞물리면서 여권의 일사불란한 대응의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민주당 내의 소장그룹이 작동하지 않고, 친문진영 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무리한 동어반복의 모습 등은 박근혜 집권세력 내부에서 건강한 견제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칭송을 아끼지 않았던 초선 의원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윤석열을 직격하는 행태에서 한국정치의 처연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집권진영 내에 조국 사수가 정권의 이행에 사활적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해도 다수 여론이 이에 반대한다면, 민심에 화답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다. 결국 여론의 흐름이 조 전 장관의 사퇴를 가져왔다.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그 말의 적절성 여부를 넘어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이다. 박근혜 때 가장 많이 지적되어 온 말이 '국정운영 방식의 폐쇄성'이었고, 이를 바꿔야한다는 비판이었다. 즉 청와대와 여당의 대등한 관계로의 변화를 국민은 요구했고, 그들은 듣지 않았다. 결과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한국 대통령제의 치명적 약점은 임기 말 레임덕(권력누수)에서 연유하는 식물정권으로의 몰락이다. 복합적 원인이 있겠으나 기본적 동인은 권력 내부의 경직성이다. 동맥경화에 걸린 인체가 건강할 수 없듯이 권력 내부의 긴장과 견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심에 대한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는 작동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여당의 권력 핵심에게는 군사정권에 저항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일구는 데 선봉에 선 자부심과 수구냉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제1야당에 대한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배다. 검찰수사의 '무리함'에 동의하고 조국 전 장관 수호가 정권의 이해에 직결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는 시민들이 있다. 반면에, 검찰개혁에 동의하지만 조국만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도 서초동 집회 시민들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고 무리한 논리로 상황을 호도했다. 보다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정권이 성공할 수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상호관용이나 제도와 같은 규범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집단은 물론 정치인과 시민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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