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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이상한 경기', 북한은 왜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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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이상한 경기', 북한은 왜 그랬나?

[정욱식 칼럼] 김정은의 '무관중' 선택, 우리 정부 탓은 없나

15일 평양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두고 영국의 BBC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라고 표현했다. 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한 축구 대표팀의 경기인 만큼 국제적인 관심이 컸을 터인데, 북한이 남한의 응원도 생중계도 불허하면서 '코리아 더비'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 경기장의 풍경은 더 이상했다. 4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경기장을 꽉 메워 일방적인 응원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경기장이 거의 비어 있었던 것이다.

국제 축구계에서 평양 원정은 악명이 높았다. 2005년 북한이 이란에 패배한 이후 14년 간 무패를 기록할 정도였다. 북한보다 순위가 훨씬 높은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도 북한에 패배하기도 했다. 그래서 의문이 커진다. 왜 북한은 홈 이점마저 포기한 것일까?

일단 북한이 남한의 선수단과 지원 인력을 제외한 응원단과 기자단의 평양 방문을 불허할 것이라는 예상은 꽤 있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올해 들어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이번 경기를 계기로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북한의 셈법은 달랐다. "남조선과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작심한 것이다. 그래서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풀리고 있다는 여지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게 남북관계의 현주소이다.

'역대급 환대'와 '역대급 냉대' 사이에서

북한이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기장에 북한 주민이 가득 찼다면, 아마도 그들 가운데에는 작년 9월 19일 능라도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약 15만 명의 일부도 있었을 것이다.

1년여 전에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막말을 쏟아부어왔고 여러 매체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전해왔다. '무관중 경기' 역시 이러한 선전전의 연상선상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9월 19일의 '역대급 환대'와 올해 10월 15일 '역대급 냉대' 사이의 극적인 대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당수 국내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노딜과 스톡홀름 노딜의 분풀이를 남한에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 관련 기사 : '역지사지' 하려면 '국방비 동결' 고려해야)

본질적인 이유는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언'이 무시당해왔다고 여기는 탓이 크다는 데에 있다. 김정은은 7월 2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 군사 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김정은의 권언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8월에 실시된 한미군사훈련에는 '수복지역 안정화 작전', 즉 '북한 점령'까지 포함되었고, 문재인 정부는 역대급 군비증강 계획을 발표했다. 최고 지도자의 권언이 무시당했다고 여긴 북한 매체와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남한에 막말을 쏟아냈다.

거듭 묻는다. '내 탓'은 없는가?

스톡홀름 북미 실무회담의 전후 남북관계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선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한이 또다시 남한에 막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막말 행진은 스톡홀름 회담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도 남한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와 관련해 "향후 3년간 계획을 밝혔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북한은 남한의 무기 구매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던 터였는데,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3년간 미국제 무기 도입 계획'을 공개한 것이다.

또한 정부는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에 F-35를 공개하고, 최근에는 경항공모함 및 핵잠수함 건조 계획까지 언급하고 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상 최초로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는데, 역대급 군비증강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김정은으로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작년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군부 실세들을 총출동시켜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게 했었다. 그 의미는 판문점 선언에 "단계적 군축" 추진키로 한 것에 담겨졌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 군부를 비롯한 주류 세력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지적이 북한의 언행을 두둔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취지이다. '남 탓'이 유행하는 현실에서 '내 탓'은 없는지 자문해보자는 것이다. 역대급 군비증강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묻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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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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