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통일부 장관)이 북미 실무회담 결렬에 대해 "북한이 처음부터 판을 깨려고 했던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 수석부의장은 7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행동을 다시 복기해 보니 '이번에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할 필요 없다. 좀 더 압박을 가하자. 그러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나오지 않겠나' 하는 판단을 한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부의장은 그 근거로 "(현지시간 지난) 4일 오후에 차석 대표끼리 예비 접촉을 했고 5일 10시부터 본회담 실무협상을 시작한 것 아니냐"며 "김명길 대사가 점심시간에 2시간 반이나 대사관에 있다가 돌아갔고, 회담을 끝내고 나오면서 30분 만에 대사관까지 들어가서 10분 만에 인쇄된 성명서를 읽었다"는 점을 들었다.
정 부의장은 "그 장면을 보고 '이것은 점심시간에 평양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다'라고 봤다"며 "아마 평양의 입장에서는 최선희, 리용호 그리고 최종적으로 김정은까지 '미국이 지난번보다는 조금 낫기는 한데 이거 가지고 안 되겠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을 써서 금년 중에 미국의 태도 변화를 확실하게 유도하자. 그러려면 오늘은 대충 그 정도에서 끝내라'(고 했을 것)"라고 해석했다.
정 부의장은 "북한 입장에서 '모양새는 안 좋지만 이번에는 결렬되는 식으로 끝내고 오라', ' 아직은 정신을 덜 차렸구나. 그러면 세게 쪼아라' 이렇게 되지 않았다 한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지금 트럼프가 몸이 달았다고 볼 것이다. 탄핵 때문에 그걸 비껴가거나 누를 수 있는 뉴스밸류(보도가치) 가 있는 사건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 부의장은 이어 "이번에는 (북한이) 지난번 하노이에서 할 때보다 요구 조건이 높아진 것 같다"며 "안전권과 발전권을 보장하라는 이야기다. '안전권'은 군사적으로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하고, '발전권'은 경제 제재 해제하면 그때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라고 북한의 의도를 분석했다.
정 부의장은 그러면서 "종국에는 (미국이) 북한의 요구사항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급하다. 지금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외교 분야에서는 업적이 없다"고 했다.
정 부의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에 대해서도 "(실무협상이) 연말까지 안 가고 11월 초중반까지 성과를 내고 북미 정상 회담이 이뤄지면 (북미대화가) 속도는 날 것"이라며 "그러면 그 토대 위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도 필요로 하게 될 거고 그러면 부산에 올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 김대중 대통령 대북특사였던 무소속 박지원 의원은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판은 깨지지 않은 것 같다"는 전망을 했다. 박 의원은 "(북한이 언급한) 2주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올 연말을 제시했기 때문에 아마 11월 중에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미국 측의 제안은) '영변 플러스 알파'에다 고농축우라늄(HEU) 등을 생산하지 말라, 근본적으로 핵 원료를 생산하지 말라는 것을 요구했을 것이고 또 북한에 주는 것은 섬유나 석탄 제품의 수출을 약 36개월간 유예해 주겠다는 것(이었이라 본다)"이라며 "미국 정부에서는 부인했지만 <뉴욕타임즈> 보도 같은 것은 신빙성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 제안했지 않는가, 그리고 북한에서는 아무래도 체제 보장에 좀 강조를 둔 것 아닌가"라고 회담 상황을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NSC 행정관을 지낸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회담 상황에 대해 "계산법의 차이인 것 같다"며 "북한은 미국에게서 원한 것은 제재 완화가 아닌 것 같다"고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김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경제제재 완화는 미국이 들고 나갔는데, (북한은) '그런 것 필요 없고 내가 원하는 건 다른 거다. 그것은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것)"이라면서 "한미연합훈련, F-35 스텔스전투기 전략자산 등 북한 자신들에 대한 적대행위가 계속되고 있어서 이런 안보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고 있는 게 북한의 지금 프레임"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반면 미국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이 어느 시점에 '영변 플러스 알파' 즉 영변에다가 추가 시설까지 더 핵사찰을 허용한다면 경제 제재를 완화해 주겠다는 안을 들고 나간 것"이라며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을 이야기하는 게 북한식 셈법이고, 미국의 셈법은 안보와 경제를 교환하는 셈법인 거니까 이 두 개가 서로 안 맞았다"고 회담 결렬 원인을 분석했다.
김 의원은 다만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런 상태에선 열리기가 힘든데, 역으로 실무회담이 깨져도 판 전체가 안 깨지는 것은 정상외교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실무회담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나 정상외교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직까지는 톱-다운 방식 정상외교로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는 프레임은 살아 있다. 또 친서가 오고가고 정상 간에 또 회담 타진하는 것으로 당분간 오히려 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 박 의원과 김 의원은 김 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은 "어렵다"(박지원), "물 건너갔다"(김종대)라고 정 부의장과는 다소 결이 다른 전망을 했다. 김 의원은 "이렇게 또 교착상태로 가고 협상 결렬됐으면 결국은 한국에 오는 것도 따라서 물 건너가는 것"이라며 "특히 남측에게도 책임론을 이야기하고 김 위원장이 또 우리한테 화풀이를 한다(고 본다). 그런 것들은 결국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그래서 당분간은 북한과의 경색도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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