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윤 이사장 체제의 영남공업고등학교에는 학생 성적 관련 ‘3대 비위 사건’이 있다. 학생 500여명 성적 삭제, 카누 체육특기생 성적 조작, 학생에게 대리 채점 지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맞을까’ 싶은 성적 비위 사건이 영남공고에서는 단 2년 동안 3번이나 일어났다.
허선윤 이사장 아들 교사의 잘못을 덮기 위해 학생 500여명의 성적을 일방적으로 삭제해 논란이 거센 가운데, 이번엔 영남공고 김OO 전자기계과 부장교사(현재는 전자기계과 소속 평교사)가 2016년경 고3 학생들에게 서술형답안을 대리채점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 교사가 대리채점을 지시했던 학생은 최소 3명에서 최대 5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학생들은 정규 수업시간에 교무실(전자기계과 사무실)로 불려가서 대리채점을 했다.
이는 교사의 책무를 어기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한 행위로, 김 교사는 형사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학생에게 대리채점 지시한 김OO 교사는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전 교장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영남공고 이사회는 학생에게 대리채점을 지시한 그를 최근 교감 후보로 지명했다. 하지만 김 교사는 교육청 심사 중 평가기준에 미달해, 올해 교감 후보에서 탈락했다.
김 교사는 후배 교사들을 뒷조사해 사찰 노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전 교장이 여성 교사 술접대 강요, 노래방에서 교사 갈취, 상납 등 사학 비리의 대명사로 떠오르면서, 영남공고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도 단순히 개인적 일탈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올해 초부터 감사를 진행한 대구시교육청은 김OO 교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김OO 교사는 1988년부터 영남공고에서 전자기계과 교사로 근무 중이다.
김OO 교사는 지필평가 이후 성적 채점 때면,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꼼수를 부렸다. 교과 담당교사들은 OMR 카드에 작성된 서술형답안을 일정 기간 내에 직접 채점해야하는데, 김 교사는 서술형답안 채점을 학생에게 지시했다.
대구교육청에 따르면, 학생들이 대리채점한 과목은 2016학년도 1학기·2학기 중간고사 ‘선반가공’ 교과 등이다. ‘선반가공’ 교과는 기계 분야 중 가공에 대한 이론 지식과 실무능력을 훈련하는 과목이다.
그렇다면 대리채점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대리채점을 지시받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진술한 채점 방식은 이렇다.
우선, 김 교사는 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불러 모았다. 그가 지목한 학생 수는 출제한 서술형문항 수와 동일했다. 예를 들어, 서술형문항 수가 3개면, 대리채점을 지시받은 학생도 3명이었다.
그는 정규 수업시간에 그 학생들을 데리고, 기계과 사무실로 향한다. 학생들에게 서술형문항의 정답을 공유한 후 학생 별로 서술형문항을 하나씩 배분시켰다.
학생들은 그 답에 맞춰 오답 여부를 OMR 카드 위에 동그라미 혹은 사선 모양으로 표시한다. 서술형문항 별 세부 점수는 김 교사가 매겼다. 즉, 학생들이 채점한 결과에 맞춰 김 교사는 세부 점수만 매긴 셈이다.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채점한 서술형답안으로 학생 개인별 성적 검토도 진행했다. 지필평가 이후 첫 수업시간은 학생 개인별로 서술형답안을 직접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데, 김 교사는 학생들이 채점한 서술형답안으로 확인하곤 했다.
이후 김 교사는 대리채점 지시받은 학생들을 다시 투입했다. 학생들은 서술형문항의 세부 점수를 합한 총합 점수를 OMR 카드에 기재하고, 마킹까지 해야 했다. 여기까지가 학생들이 투입된 대리채점의 절차다.
김 교사의 지시로 서술형답안을 채점해 본 강하나(가명) 졸업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OO 교사의 지시 아래 '선반가공' 과목 등의 서술형답안을 총 2회~3회 대리채점 했습니다. 주로 정규 수업시간에 전자기계과 사무실로 불려가곤 했습니다. 김OO 교사가 같은 공간에서 제가 채점하는 걸 지켜볼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정규 수업시간에 학생에게 부당한 업무를 지시해 학습권을 침해한 상황. 김 교사는 학생들을 교무실(기계과 사무실)에 홀로 남겨두기도 했다. 원칙적으로는 채점 기간 동안은 학생들의 교무실 출입은 아예 통제된다.
학생들이 한 번 동원될 때 대리채점한 규모는 어떻게 될까? 강하나 졸업생은 기억을 더듬었다.
"제가 2반~3반 정도를 맡아서 대리채점 했습니다. 저희 반 학생들 서술형답안도 제가 직접 채점한 게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서술형답안도 제가 직접 채점을 했더라고요. 김 교사는 제 채점이 잘못됐는지 확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제게 ‘본인들의 점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리채점을 지시받은 학생들은 부당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대리채점을 지시받았던 또 다른 졸업생 박재욱(가명)씨는 3년이 지난 지금, 당시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학생이 대리채점을 하는 건 굉장히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남공고 전자기계과 부장 선생님 눈 밖에 나면, 취업이 어렵거든요. 취업을 생각하면, 선생님한테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재욱 졸업생은 김OO 교사의 대리채점 지시가 상습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저는 2015년, 2016년 김OO 교사가 담당한 과목 수행평가 점수 채점에도 관여했습니다. 김 교사가 학생 별로 수행평가 점수를 불러주면, 제가 점수를 받아 적었습니다. 제가 김 교사한테 ‘이 학생은 수업 태도가 좋으니 수행평가 점수를 높은 점수로 달라’고 요구하면,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 성적 평가와 처리는 매우 엄격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어기는 건 사실상 중대 범죄에 해당된다. 대리채점을 지시받은 학생의 의지에 따라 성적조작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히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남공고 김 교사는 성적 평가와 처리 등에 학생들을 수시로 동원했다. 이 황당한 사건은 영남공고 교사들도 인지하지 못했다.
2016학년도 당시 전자기계과 담당교사 고상준(가명) 씨는 "김OO 교사가 학생에게 대리채점을 지시한 건 올해 교육청에서 감사를 진행한 후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2차 검토'도 허술하게 진행된 걸로 보인다. '2차 검토'는 같은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들끼리 서술형답안에서 틀린 문항을 재검토하는 걸 의미한다.
영남공고 다수의 교사들과 졸업생은 김OO 교사의 평소 생활을 고려하면, 학생에게 대리채점 지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강하나 학생의 대리채점 모습을 목격했다는 고윤주(가명) 졸업생은 김OO 교사에게 겪었던 당황스러웠던 경험을 말했다.
"2015년경에 김OO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던 저를 대뜸 교실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러곤 제게 ‘팔씨름’을 강요했습니다. 본인 수업 시간에는 잠도 자주 잤습니다."
영남공고 다수의 교사들도 “평소에도 김OO 부장은 후배 교사들을 사찰해 허선윤 이사장 등에게 보고하는 일만 열심히했지, 수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 교사는 후배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뒷조사해 공책에 적곤 했다. 취재진이 확인한 건수만 8건이다.
2015.11 입시홍보 부장이 중학교 간다고 공개적으로 교장선생님한테 항의함.
2016.01.15 기계과 친목 협의회 참석여부 조사시 참여하느냐 전화해서 ‘보류’한다고 해서 오지 말라고 함.
학생에게 대리채점을 지시하고 교사들을 사찰까지 한 당사자 김OO 교사의 입장은 무엇일까. 어렵게 연락이 닿은 김OO 교사는 취재진에게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김 교사는 최근 기존에 쓰던 개인 휴대전화를 폐기하고, 전화번호도 변경했다. 9월 4일에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도 포맷했다. 경찰 수사를 앞두고 증거를 은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OO 교사는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전 교장의 최측근이다.
허선윤 이사장과 이상석 전 교장은 수업 중인 여교사를 불러내 술접대를 강요하는 등 '사학 비리의 왕'으로 통한다. 교직 경력이 거의 30년 가까이 된 김 교사는 영남공고 전자기계과 내부에서 '서열 1위'로 통한다.
김 교사는 허선윤 이사장이 지목한 교감 후보였다. 하지만 교육청 심사 중 평가기준에 미달된 그는 올해 교감 후보에서 탈락했다. 그는 2020년 명예퇴직을 신청해놨다.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초부터 김OO 교사의 대리채점 사건을 감사했다. 교육청은 김OO 교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대구 수성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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