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어느 거지가 자신의 面子(체면, 미엔즈) 자랑에 나섰다. "정말이야. 어느 동네의 갑부가 나를 아는 척하며 먼저 말을 걸어올 정도라니까." "그 갑부가 뭐라고 했는데?" "내가 문 앞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더니 나를 보며 '꺼져'라고 했어."
우리나라에도 체면이라는 단어가 있다. 중국에도 체면이 있다. 중국의 체면은 우리와는 달리 훨씬 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고, 동적이며, 변화무쌍하다.
"중국을 통치하는 세 여신이 있다. 面(체면), 命(운명), 恩(보은). (임어당(林語堂))" 역시나 체면이 으뜸이다. 임어당은 체면을 두고 '이치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관례에 순종하는 것'이라 했다.
'상해탄'으로 유명한 청방 보스 두월생도 한마디 했다. "내 평생 가장 먹기 어려운 면('얼굴 면' 자와 '국수 면' 자의 발음이 같다)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체면(脸面), 인정(情面), 상황(场面)이다"라고 했다. 암흑가의 보스도 체면 관리가 가장 어려웠던 것.
저자 류재윤은 중국통이다. 중국통이 생각하기에 중국인과 인간관계의 핵심이 바로 '중국식 체면'이다. 그래서 권하기를 중국인의 체면 관리를 단순히 허례허식이나 형식주의라고만 이해하면 절대로 안 된단다. 중국인의 전통 사유 바탕에는 체면에 대한 복잡하고 확고한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타이완 문화학자 뽀양은 "중국인은 예의를 따질 뿐이지 합리를 따지지 않는다. 중국인과 합리를 따지는 것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어렵다. 중국인의 예의는 바로 체면이다"라고 할 정도다.
물론 중국인 중에도 일부는 체면이 갖는 지나친 겉치레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거나 고려하는 것이 단순히 겉치레인지 아니면 배려인지, 최소한의 자존감의 표현인지, 또는 문화인으로서 지켜야 할 겸손 같은 예의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차라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중국식 체면을 따르는 것이 낫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국통다운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책은 지독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동시대의 중국인을 이야기한다. 키워드를 8가지로 택해 또박또박 분석했다. 키워드는 문자, 체면, 의리, 꽌시, 충성, 정보, 파벌주의, 현지화 등이다. 강조하자면 키워드를 바탕으로 중국인의 속옷을 벗겨 탈탈 털어낸 느낌. 살아있는 중국통의 날생선 같은 책.
꽌시(关系)에 대한 멋진 문장 하나. "多一个朋友, 多一条路(친구가 한 명 더 생기면 길 하나가 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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