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열린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은 '정경유착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각 재벌그룹 별로 경영권 승계 작업 지원(삼성), 면세점 특허(롯데), 기업결합 승인(SK) 등 그룹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거액을 후원한 정경유착 범죄였다는 사실이 인정됐다는 것이다.
3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참여연대 등 3개 단체 주최로 국정농단 사건 대법 판결을 비평하는 긴급 좌담회가 열렸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지난 29일 대법 판결의 의의와 향후 남은 과제 등을 짚어봤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국정농단 수사를 시작하면서 정경유착으로 인한 뇌물이 아닌 재벌들이 대통령에게 겁박당해 어쩔 수 없이 후원금을 제공했다는 '직권남용' 프레임을 설정했다"며 "이 프레임에서는 재벌들이 피해자가 되므로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관련 2심 재판을 두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가 징역 10년 이상을 적용하는 것과는 달리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기 때문에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무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삼성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에게 제공한 말 세 필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 판결은 그런 프레임이 적용된 것이라고 김 부회장은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2심 판결이) 뇌물죄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을 박근혜 정권의 겁박에 의한 거액 후원으로 본 것"이라며 "따라서 삼성그룹에서 이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가 없었고 이러한 내용의 부정한 청탁도 없었다는 판단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삼성의 영재센터 출연금은 뇌물이지만 미르재단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다?
반면, 대법원은 삼성이 정유라 씨에게 지원한 말 세 필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도 삼성의 경영권승계 현안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지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 재단에 지원한 제3자 뇌물죄에 관해서는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영재센터의 경우 '단독면담 자리에서 대통령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가 있었고 '삼성그룹만이 직접적으로 후원'했지만 미르·K스포츠 재단은 전경련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삼성만이 아닌 다른 재벌그룹과 함께 출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단이 갈렸다.
노승화 금속노조 법률원은 "대법원의 박근혜 판결에 따르면, 청와대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할 기업의 법위와 전체 출연 규모 등을 정해 전경련에 전달했고 전경련은 다시 후원금을 모으는 방식으로 기업들에게 출연금을 정해줬다"며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이 삼성에만 요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3자 뇌물공여죄의 성립에 필요한 '부정한 청탁'을 부정하는 주요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노 변호사는 "대한승마협회장이자 삼성전자 사장이었던 박상진이 K스포츠재단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문자도 이재용 등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하면서도 "삼성그룹이 모두 합쳐 22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지원하면서 재단의 실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롯데그룹 신동빈은 같은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추가로 출연했다가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다시 반환받은 사실이 오히려 뇌물공여 사건에서는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해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상태"라며 "출연 시점의 차이는 있으나 롯데는 알고 있었던 재단의 실체를 삼성은 몰랐다는 것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 변호사는 또 "삼성이 출연 당시 재단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지배구조에서 견제와 감시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2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그렇게 쉽게 집행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총수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재벌개혁이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 나아가 전경련과 같은 단체가 정경유착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포인트는
김남근 민변 부회장은 "대법원의 판례취지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적어도 3년 이상의 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실상 집행유예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주장도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특경법 상 50억 이상의 횡령, 이것이 5년 이상의 징역이기 때문에 판사 재량의 작량감경으로 그 절반인 2년 6개월을 선고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 되어 집행유예가 가능하다"며 "두 가지 모두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그는 "사법부가 결국은 경제상황의 어려움과 삼성그룹의 적극적은 투자계획, 거액의 사회 환원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며 "그러나 최태원 SK 회장의 구속 사례나 CJ 등 여러 그룹 총수의 구속 사례, 이전의 이재용 부회장이 상당기간 구속됐던 사례 등에 비춰봤을 때 총수의 구속여부와 그룹 실적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전망과 △이재용 부회장의 향후 거취 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의 경우 전날 대법원에서 삼성그룹의 승계 작업을 위한 그룹 차원의 조직적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수사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 등의 유죄판결을 받은 임원은 피해기업에 취업이 제한되는 법률이 적용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상훈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에는 특경가법에 따라 취업이, 삼성생명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원 자격이, 삼성물산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임원 자격이 각각 제한된다"고 예상했다.
이번 좌담회는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 김남근 민변 부회장, 노종화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 이상훈 참여연대 실행위원,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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