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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휴먼 라이츠 브리핑] 국제앰네스티 2019 세계 총회: 다시 "HUMANITY"로 돌아가자

Because we‘re human,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8월 2일부터 3일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전 세계 앰네스티 지부의 대표 300여 명이 모인 연례 총회의 백드롭에 걸려있던 문구입니다.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은 "160여 나라에서 58년간 700만 명이 함께 하는 인권운동"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언론에서는 세계 최대 인권운동 단체라고 하죠. 99% 재원을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없이 전세계 개인 기부자와 회원에 의해 조달하는 희귀한 조직입니다.

앰네스티의 국제이사회를 비롯한 주요 리더십 직위와 국제운동의 주요 정책은 1년에 한번 모든 지부의 대표가 모이는 연례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됩니다. 여기 모이는 각 지부의 이사회 대표는 대부분 직장이 있는 생활인들이며 자원 활동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휴가가 몰려있는 여름철에 주말을 끼고 열립니다.

올해 총회에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권 현실을 성찰해 보았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브라질의 볼소나로, 인도의 무디, 필리핀의 두테르테 등 권력자들이 앞장서서 전 세계적 도덕적 패닉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위그르족 등에게 인권 침해를 자행하는 중국 정부, 로힝야 족에 대한 미얀마 군부의 범죄에 침묵하는 아웅산 수지도 포함됩니다. 그녀에게 수여되었던 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은 철회되었으며, 사진은 앰네스티 벽에서 내려진지 오래입니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되고 인권 침해자들이 인권 옹호자들을 오히려 악마화하는 담론이 힘을 얻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보통사람들의 연대와 행동으로 “모든 이들에게 인권과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모인 이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어벤저스' 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앰네스티는 1948년에 성립된 UN 세계인권선언을 옹호합니다. 그렇다면 이 선언문이 그때가 아니라 지금 21세기 인류 앞에 과제로 떨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앰네스티가 연례 총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홍콩에서는 100년 만의 총파업이 일어났고, 베네수엘라에서는 텅 빈 마트의 식품 칸과 정전된 병원 중환자실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필리핀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허울을 쓰고 경찰에 의한 즉결 총살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은 2년 연속 조용하게 앰네스티 총회가 시작하는 날,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일본의 사형집행은 본인에게도 몇 시간 전에야 예고됩니다. 가족에게는 사후에야 통지됩니다. 일본 정부는 언제 사형을 집행하는 게 효과적인지는 면밀히 연구한다고 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오직 이날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순전히 우연일 수도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는 행위일수도 있습니다. 사형은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법한 처벌이라든지, 범죄를 예방하는 수단이 된다든지 하는 명분은 이미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판명 났습니다. 어떠한 나라의 사법체계도 사형 제도를 감당할 만큼 완벽하지 않습니다. 사형집행 후에 최종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명되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많습니다.

시야를 세계적 흐름으로 돌려 전 지구적 현상을 주목해 봅니다. 그 중에 세 가지 중요한 도전이 떠오릅니다. 불평등의 확대, 공포스러운 기술의 폭주, 그리고 기후변화입니다. 경제적 차이는 권력의 격차를 너무 심하게 벌려놓아서 이미 건너갈 수 있는 다리마저 파괴되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난민과 이민자들이 부자나라의 언저리에서 죽어 나가는데 우리가 어떻게 인류라는 같은 이름으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데이터와 통신기술은 이제 누가 선거에서 당선될 지를 결정하는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정보통신 타이탄들의 눈에는 개인은 그냥 조작할 수 있는 데이터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개인의 존엄성, 인간의 자율성, 사회적 합의 따위는 깃털처럼 가벼운 얘기가 되어버립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환경문제가 아닙니다. 생존이 걸린 인권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북극곰 뿐 아니라 사람의 생존이 위태롭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올해 앰네스티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모이기로 결정한 데에는 넬슨 만델라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를 기억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는 남아공의 악명 높은 국가가 주도한 인종차별 정책을 기억할 겁니다. 온갖 폭력과 핍박을 이기고 차별과 인권침해가 법이고 제도였던 나라에서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삶 자체가 '변화는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해 보인다'라는 말의 증거입니다.

평생을 남아공 인권운동에 바치고 대법원 판사를 지낸 모세네카는 '우리는 혁명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인권을 위한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남아공 헌법은 전세계 최초로 LGBTI 권리를 규정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 문화에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차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남아공 법원에서는 주거권, 의료접근권 등 경제사회적 권리에 대한 역사적 판결이 내려졌지만, 현실에서 집행되기에는 요원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어만 좀 바꾸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입니다.

이 인권투쟁의 한가운데에서 평생을 싸워온 은퇴한 법관은 여전히 시민사회 운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만델라에 대한 로맨틱한 기억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단언합니다. 힘들고 긴 여정이겠지만,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인권은 우리를 모든 인간과 연결합니다” (Human Rights are what connect us to all humans") 인권은 사람들 간의 연결이고, 연대입니다. 앰네스티 (Amnesty)라는 이름이 'HUMANITY(인간성)'를 대표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의 결론은 인권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입니다. HUMANITY는 인류가 가진 가장 소중한 글로벌 자산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HUMANITY를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꺼내 놓고 연대와 행동을 시작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인권학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한 <휴먼 라이츠 브리핑>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인권과 관련 있는 여러 학문의 최신 동향과 연구자들의 성찰을 독자들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담론이 풍부해지고, 인권현안을 깊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늘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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