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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마 씨, 당신의 꿈을 위해 더 열심히 할게"

故 이용마 기자의 마지막 길...mbc 상암 문화광장에서 시민사회장 열려

"참언론인 故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상암 mbc 문화광장 전광판에 떠오른 사진 속 고(故) 이용마 기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인이 상암 mbc에 출근한 것은 단 하루. 잘 알려졌다시피 2012년 노조 지도부로 정권의 부당한 외압에 맞서 파업 투쟁을 하다 부당하게 해고됐다.

mbc가 상암으로 온 것은 그 후인 2014년이다. 법원으로부터 "방송사의 공정방송 의무가 방송·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며, 이를 위한 파업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고 2017년 복직하기까지 2100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복직 후 첫 출근이자 마지막 출근이 된 그 날은 환희와 눈물로 남아있다. 훤칠했던 체구는 긴 투병으로 비쩍 말라있었다. 그럼에도 고인은 시종일관 환하게 웃었다.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출근카드를 찍으며 게이트를 통과해 들어가는 그 길엔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나와 고인을 맞이했다. 그의 복귀를 환영하는 노란 슬로건과 꽃들,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새 스튜디오에 들어선 고인은 모든 이의 기억에 남아있는 자신의 클로징 멘트로 인사를 남기기도 했다.

"MBC 뉴스, 이용맙니다."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문화광장에서 故 이용마 기자의 시민사회장이 열렸다. ⓒ프레시안(조성은)

▲23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문화광장에서 故 이용마 기자의 시민사회장이 열렸다. ⓒ프레시안(조성은)

▲23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문화광장에서 故 이용마 기자의 시민사회장이 열렸다. ⓒ프레시안(조성은)

23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mbc 문화광장에서 고 이용마 mbc 기자의 영결식이 시민사회장이 치러졌다. 이날 문화광장에는 500여명의 시민과 고인의 선후배가 모여 고민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고인은 지난 21일, 암투병 끝에 별세했다. 시민사회장에 앞서 유족들은 영정 사진을 들고 MBC 사옥 내 보도국으로 이동했다. 이용마 기자의 어린 쌍둥이 아들도 영정 뒤를 따랐다.

문화광장에 차려진 고인의 영정 오른편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있었다. 고인은 2012년 파업으로 해직된 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mbc 정상화와 고인을 비롯한 부당 해고자들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당선에 실패하면서 약속은 뒤로 미뤄졌다. 문 대통령은 암투병 중인 고인을 2016년과 올해 2월 두차례 병문안 하기도 했다.

왼편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주로 김재철 전 mbc 사장 퇴진 투쟁을 할 때였다. 영정 속 밝은 웃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상 속 시간이 흐를수록 고인은 점점 말라갔다. 2016년 복막암 판정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영상 속 고인은 눈이 움푹 패이고 주름이 깊어졌지만, 여전히 '공영방송 정상화'를 외쳤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언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2016년 겨울 촛불 광장에서는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시민들이 이렇게 광장에 나올 일이 있었겠느냐"며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 언론을 비판했다. 2017년 복직 후에도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나왔던 그 때를 잊지 말자"며 당부했다.

▲故 이용마 기자의 아내 김수영 씨 ⓒ프레시안(조성은)

▲최승호 mbc 사장 ⓒ프레시안(조성은)

최승호 MBC 사장은 고인을 "맹렬한 운동가이자 지략가였다"며 "당시 노조구호였던 '다시 국민의 품에 돌아가겠습니다' 또한 이용마의 작품"이라고 회상했다.

"그때 우린 승리하지 못했고 이용마는 해직됐습니다. 병을 얻고 요양원에 있는 그를 보며, 그때 싸우지 않았더라면 아들들에게 오랫동안 살가운 아빠로 살았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2016년 겨울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할 때 그에게 물어봤습니다. 우리 싸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때 그는 아들들에게 유언처럼 남길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싸움은 기록만으로도 의미있다'고 했습니다.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는 그것이 의미있는 일 이라고 말입니다."

최 사장은 "(고인은) 다시 복직한다면 시민을 배려하고 억울한 사람 없는 따뜻한 뉴스를 만들겠다고 했다"며 "용마 씨,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게"라는 말로 조사를 마쳤다.

고인의 동료인 김효엽 MBC 기자는 영정을 향해 깊이 허리숙여 인사한 후 단상에 올랐다. 지난 3월 후배 신입 기자와 고인을 병문안 갔던 것을 이야기하며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지만 함께 간 막내를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2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사회부 막내 시절 형이 말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힘있는 사람들은 기자를 무서워해. 감출게 많아서. 힘없는 시민들은 안 그래. 그런데 많은 기자들이 힘있는 사람들 앞에서 조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가르치려해. 우리가 할 일은 그 힘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힘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거야' 참 멋있었습니다. 늘 한결같던 사람입니다. 피하지 않았습니다. 취재할 때부터 투쟁하고 해고당하고 병마와 싸울 때에도 한결같이 피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길 포기하고 세상이 아닌 나를 바꿀 때,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던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랑했고 공동체를 사랑했고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굳게 믿던 사람입니다. 형에게 빚을 진 게 아니라 형의 꿈을 나눠가졌다 생각하겠습니다. 멈추지 않고 한 걸음 씩이라도 걸어가면 조금 늦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고 이용마 기자의 아내 김수영 씨는 "오래 준비한 이별"이라며 고인의 오랜 투병생활을 함축했다. 2016년 여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고인은 1년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김 씨는 고인의 마지막을 "착하게 자다 편하게 가셨다"며 "몸 안에 암덩이를 가지고 함께 떠나셨지만 이용마가 남긴 메시지는 꼭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故 이용마 기자의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최승호 사장이 헌화하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인터뷰 중인 김민식 PD ⓒ프레시안(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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