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 재개 움직임과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가 엇갈리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끝난 이후에 실무회담 재개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김정은 위원장이 편지에서 매우 정중하게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만나서 협상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나도 김정은을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기를 고대한다"며 밝혔다.
그러자 북한도 11일 '외무성 권정근 미국담당국장 담화'를 통해 "앞으로 대화에로 향한 좋은 기류가 생겨 우리가 대화에 나간다고 해도 철저히 이러한 대화는 조미사이에 열리는 것"이라며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반면 북한은 남한에 대해서는 악담을 계속 늘어놓고 있다. 이번 담화에서도 한미군사훈련과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비판을 문제삼으면서 남북대화 불가 방침을 거듭 밝혔다. 특히 "바보는 클수록 더 큰 바보가 된다"거나 "그렇게도 안보를 잘 챙기는 청와대이니 새벽잠을 제대로 자기는 코집이 글렀다"는 등의 표현을 동원해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러한 기류를 종합해볼 때, 북미대화는 한미군사훈련이 끝나는 8월 20일 이후에 재개될 가능성이 높고 남북대화 단절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대남 비방 및 대화 불응은 최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노이 노딜' 이후 일관된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의 한 수'가 사라진 남북관계
북한의 대남 비방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자처한 북미관계의 중재자, 혹은 촉진자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불만도 있을 것이다. 미국 주도의 제재에 막혀 남북경협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을 터이다.
동시에 군사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작년에 영화와도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선보인 남북관계에 있어서 '신의 한 수'를 뽑으라면 군사 분야 합의와 이행이었다. 남북 정상들이 부전(不戰)의 맹세와 불가침 약속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 실현, 그리고 불가역적인 남북관계 발전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기실 군사 분야는 유엔 및 미국의 대북 제재가 촘촘하게 짜여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 즉 남북경협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 햇볕정책의 핵심 기조였던 선경후정(先經後政, 경제협력을 먼저 추진해 정치군사 문제의 해결도 도모한다는 의미)이 선정후경(先政後經)으로 전환된 것이다. 하여 군사 분야 합의와 실천은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전환이자 '신의 한 수'라고 할 법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군사 분야는 올해 들어서는 남북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그 씨앗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단계적 군축 추진" 합의에도 불구하고 올해 국방비를 전년도보다 8.2% 인상한 데에서 뿌려졌다. 북한의 대남 비방도 이때부터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박근혜 정부 때 도입이 결정된 F-35도 올해부터 인도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약속한 '한미군사 훈련 중단'도 '축소'된 형태로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평화관도 문제이다. 문 대통령은 6월 중순 유럽 순방 기간 동안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대화"라거나 "평화란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국방부는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며, 내년도 국방예산안으로 올해보다 8% 늘어난 50조 4000억 원을 제출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불만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에 잘 담겨 있다. 그는 7월 25일 실시된 미사일 발사를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 무기반입과 합동 군사 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부득불 남쪽에 존재하는 우리 국가안전의 잠재적, 직접적 위협들을 제거하기 위한 초강력 무기체계들을 줄기차게 개발해나가야 한다"며, "남조선 당국자가 사태발전 전망의 위험성을 제 때에 깨닫고 최신무기 반입이나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는 권언을 남쪽을 향해 오늘의 위력 시위 사격소식과 함께 알린다"고 덧붙였다.
남북한 군비경쟁 격화되나?
북한은 김정은의 발언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최근 시험발사를 통해 단거리 발사체를 집중적으로 선보였다. 여기에는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기존 방사포의 개량형인 대구경조종방사포, 신형 전술 지대지 미사일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 단거리 3종 세트의 공통점은 저고도 및 회피 기동이 가능해 요격이 쉽지 않고, 사거리도 크게 늘려 남한의 대부분에 다다를 수 있으며, 고체 연료를 사용해 신속한 발사가 가능하다는 점들이다.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막말에 맞대응을 자제하면서 북미대화 이후를 기약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 단거리 발사체보다 더 우수한 무기가 있다는 점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8월 12일 "북한에서 실험하는 정도의 무기는 우리도 다 갖추고 있다"며 "오히려 그보다 몇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올해 국방비 증가율이 8.2%였다는 점을 환기하면서 "박근혜 정부 때는 평균 4.1%. 이명박 정부 때는 5.2%였던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국방 예산이 들어가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의 연이은 단거리 발사체 발사를 둘러싸고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안보 위기론에 제기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작년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잃어버린 10년을 "불가역적으로" 만회하자고 다짐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들 정부 때보다 훨씬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회복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미대화 후 남북관계 개선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북미대화가 열리면 남북관계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개선은 있을 수 있지만, 지속적이고 본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군비경쟁을 종식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군비경쟁이 지속되면 비핵화는 물론이고 평화체제 구축도 어려워진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군비증강을 억제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 호응을 받긴 어렵다. 최근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극일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남북한의 군비경쟁을 종식시키지 못하면 문 대통령의 천명해온 '평화경제론'은 공허한 말로 끝나고 말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극일도, 일본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초대하는 일도 어려워진다.
당장 군축이 어렵다면, 내년부터 국방비를 동결하는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인 3년 동안 국방비를 동결해도 40조 원이 넘는 방위력 개선비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정도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상상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 상상력을 동원해 <한겨레21>에 쓴 글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0년부터 2022년 3년간 국방비를 동결하겠습니다. 일각에선 대대적인 군축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우리는 대화와 신뢰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적절한 수준의 국방비 확보를 통한 튼튼한 안보에도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올해 46조 7000억 원에 달한 국방비를 3년 동안 동결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취지에 부합합니다. 이를 통해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한 남북한의 역사적 합의에 첫발을 내딛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적정 수준의 군사력도 계속 보강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초 계획과 비교할 때 3년간 약 15조 원의 국방비 절감이 가능해져 '국민을 위한 평화'에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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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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