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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

[기고] '더 나쁜 현장실습' 도제학교 법제화를 반대한다

'같은 제도 다른 이유, 더 나쁜 현장실습 도제학교'라는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 : 값싼 청년 노동으로, 기업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

글에서 나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도제학교를 과거 추진했던 산업체특별학급과 비교·설명했다(도제학교는 재학생에게 산업체에 일하게 하는 제도, 산업체특별학급은 산업체 재직 중인 재직자에게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과정). 그 과정에서 도제학교는 3학년에 국한되었던 직업계고 현장실습을, 2학년(운영의 미를 살려 1학년 겨울방학)부터 운영하게 되는 '더 나쁜 현장실습'이라 규정했다.

박근혜 정부부터 추진했던 도제학교가 문재인 정부에서 법제화되려 한다. 소위 '도제학교법'을 제정해 도제학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하고 있다.

나는 왜 법적 절차를 마련하고자 함을 칭찬하지 못하고 비판할까. 이 정책이 산업체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져야 하는 학교 노동교육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구조에서 중소기업의 직장 내 개별구조화(훈련교사와 훈련생) 방식은, 별도 공간에서 고도의 훈련된 교사와 최신 장비를 활용하는 '공적체제'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8월 도제학교를 운영 중인 특성화고를 방문, 학생들의 실습모습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제교육은 무엇인가?

중세 시대의 도제교육은 장인과 견습공 사이 인격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 기술교육과 인간교육이 병행하여 이루어졌다는 점, 장래의 지위를 보장하는 교육이었다는 점으로 우수한 측면을 있다고 주장한다. 중세의 도제교육은 기술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적 전문성뿐 아니라 성숙한 인격과 인생의 지혜와 통찰을 갖춘 진정한 장인을 키웠다고 한다.

나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초기에 나타는 '길드'는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다. 소수의 기술을 소유한 장인들이 특정 몇 명에게 제한적으로 기술을 전수하였다. 기술력이 없었던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점하여 부를 독점할 수 있었다. 그런 기술 전수 형태의 훈련과정을 지금 '도제교육'이라는 근사한 허상을 만들어 놓고 있다.

최초로 한국에서 독일 도제를 모방한 시기는 1997년 '독일학교' 분교 설립으로 추정된다(브라이테 국제 길드학교 한국분교가 개교하여 제빵, 직물, 목공, 양조, 금속 길드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과정에 견습, 직공, 장인 단계로 훈련 단계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한 마이스터고 정책이 대표적인 독일 도제의 예다.

서양의 도제훈련을 사실상 기술독점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마이스터고는 특별재정 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 특권학교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빈곤층 혹은 차상위계층의 유능한 청년이 마이스터고를 졸업해 대기업 숙련기능직으로 성장함으로써 빈곤을 탈출할 수 있다는 점을 들며 사회 통합의 기제로서 마이스터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수십 억 원의 별도 예산이 마이스터고에 지원되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그런데 2012년 마이스터고 졸업자의 중소기업 취업비율은 42.3%, 대기업 취업 비율은 46.6%, 기타 공공기관 취업 비율은 11.1%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 예산 지원을 받는 정책연구보고서에서는 "마이스터가 중소기업 기능 인력 양성이라는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고 있어 마이스터고의 직업교육 체제를 전반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교육부는 왜 독일은 잘 운영되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독일 도제의 예인 마이스터고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꾸준히 받아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세금을 투입되고 있다. 독일과 우리 사회는 분명하게 다른데도 말이다. 외국 사례를 소개하고 한국이 후발 산업국으로 이를 모방하던 시기는 지나지 않았는가.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이 분리된다. 그리고 우리의 중등학교 시점에서 직업훈련을 하는 나라다. 독일은 유구한 산업화 역사를 지닌 국가로 산업자본주의 토양이 튼실한 나라이다. 또한 노동자의 권리 신장 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다. 장기간 산업화 과정을 거친 결과다. 연평균 낮은 노동시간, 낮은 산업재해율 등 고용이 안정적이고 높은 노동생산성을 갖춘 나라기도 하다. 여기에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다수 존재하고 직업에 대한 차별이 낮은 국가다. 그렇기에 장인과 견습생이라는 개인 간 구조화 하는 기술 전수 방식이 잘 맞을 수 있다(통일된 독일의 현재 상황은 이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옛 동독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학력·직업에 따른 차별이 서서히 커지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직업훈련이 내리막 길을 보이고 있긴 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동이 열위에 놓여 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는 자본이 항상 노동보다 우위에 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오면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세력 불균형은 더 켜졌고, 이후 자본은 노동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분배율(생산된 소득 가운데 노동에 분배된 몫) 추이를 살펴보면 1970년 39.5%에서 1997년 62.0%을 정점으로 2010년 59.1%, 2013년 61.5%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에 취업자 중 노동자의 비율은 계속 상승해(노동자수/취업자수 비율이 1970년 38.9%, 1997년 62.7%, 2010년 71.2%, 2013년 73.7%)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의 상대적 지위는 실질적으로 후퇴했다.

임금 패리티(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노동자의 상대적 처우를 나타내는 지표로 국민경제 전체 취업자 중에서 노동자의 대우를 추정하는 값으로 '100'이 중간점을 의미함)는 1970년 101.5, 1997년 99.0, 2012년 83.0, 2013년 83.05로 노동자의 상대적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

우리의 노동 관련 물적 토대는 독일에 못 미친다


노동의 열위와 더불어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 현상도 발견된다. 한국 노동자의 절반만이 정규직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의 60% 정도의 보수를 받고 있다. 또한 사내 복지에서도 배제당하고 있다.


세계은행 ‘세계개발보고서 2012’에 따르면 2010년 1인당 국민총소득은 스위스(70,350달러), 독일(43,330달러), 한국(19,890달러)이다. 대부분의 부자 나라에서는 일주일에 35시간 일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 그렇지 않다.(일본 42시간, 한국 44시간, 싱가포르 46시간).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은 부자 나라의 노동자보다 긴 시간 일한다(주당 평균 55시간).

전체 노동력 중 너무 과도하게 오래 일하는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인도네시아(51%), 한국(50%) 등이다. 이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러시아(3%), 몰도바(5%), 노르웨이(5%), 네덜란드(7%) 등이다.

노동환경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연간 노동시간은 중요한 지표다. OECD회원국들 중 2011년 연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네덜란드, 독일, 노르웨이, 프랑스인 것에 비해 긴 나라는 한국, 그리스, 미국, 이탈리아였다. 187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네덜란드는 현 선진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로 '가장 게으른' 나라가 되었다.

임금노동자의 한국과 독일의 공식 실노동시간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1983년에는 한국(2714시간), 서독(1621시간)이었다. 1990년에는 한국(2514시간), 독일(1583시간)이고, 2000년에는 한국(2474시간), 독일은(1381시간)이었다. 한국과 독일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시간의 양극단 보여주고 있다. 격차가 줄기는 하였지만 1000시간은 4개월에 해당하는 삶의 시간이다. 이런 격차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이 아니라 구조적 격차라 할 수 있다.

생산력 증가 정책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한다. 그저 직업훈련 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작업 생산성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격차가 생겼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단편적인 노동자의 직무수행능력을 키운다고 해서, 전체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의 물적 토대는 독일에 못 미친다. 정리하면 우리 경제 구조의 모습은 대기업-하청기업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1) 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직무 수행기술이 대부분 낮은 단계다. 2) 장시간 노동으로 장인의 역할을 할 노동자가 훈련지도과정에 투입될 여력이 없다. 3) 장기간 기술 전수 방식은 직업의 안정성 측면과 기업 문화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 기업의 고용 기간은 처참한 수준이다. 또한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입지단계의 청년 노동자들이 퇴사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서울 모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실. ⓒ프레시안(허환주)

일학습병행제 법으로 '학습노동자'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환경과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면 현장실습(도제학교)이 잘 운영될 수 있을까. 학생과 노동자 신분의 모호함을 일학습병행제법으로 소거했다고 교육부는 주장한다. 일학습병행제법은 학습 공간에 기업을 넣는 것, 즉, 공장에서 일하는 것도 인정하는 것 이외에 진전된 내용도 없다.(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어 현장실습을 '수업'형태로 규정지어 놓고 수업 받는 공간을 학교 외로 풀어놓은 규제 완화정책, 현장실습 활성화 정책, 기업 인력채용 활성화 정책, 고졸 취업활성화 정책). 혁신적인 방안이라고 보기에는 참담하다.

그 동안 현장실습생에게는 노동 관련 법률이 적용되었다. 교육부는 이들 현장실습생을 '학생'이 아니라 '근로자'로 대했다. 심지어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공언하고도 그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관료들에게서 나온 일학습병행제 법률안에는 2년 후 '내부/외부' 평가를 통해 (현장실습생의) 입사를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이를 비정규직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고용(신비정규직)이라 볼 수밖에 없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

어떤 문제를 특정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 된다. 운이 좋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못'이라면 손에 쥔 '망치'가 안성맞춤 도구일 수도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숙고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해결하려는 저급한 방안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한 노동 관련 법률에서 차용한 일학습병행제는 단편적인 방안일 뿐이다.

일학습병행제는 학생을 ‘학습노동자’라고 규정짓고 법적 지위를 근로기준법에 준용하여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을 기반으로 현장실습이 잘 운영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우리 사회는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법이 서 있는 지반이 허약하면 법의 실효성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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