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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올 여름 전기요금 '한턱', 실상은…

[함께 사는 길] 왜곡된 전기요금 정상화가 먼저, 6.18누진세 개편안을 개편하라

작년 여름 무더위 때문에 힘들었고 산호의 미래에 대한 우려로 불편했다. 2018년 폭염 속에서 세계 최대의 산호 군락지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산호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 명백한 떼죽음은 대기권 안의 인류보다 우주 공간에서 먼저 관찰됐을 것이다. 수온이 2도만 올라가도 산호는 하얗게 백화되어 쪄죽는다. 죽음의 위기에서 산호는 생명을 위협하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형광성 자외선 차단물질을 생성한다. '죽어가고 있다!' 산호들의 절박한 형광색 SOS가 발신되는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밤바다를 생각하면서 나는 이대로라면 우리 인류 또한 산호의 운명을 뒤따르지 않을까 싶어 두려웠다. 다시 여름, 또 얼마나 기후변화의 후폭풍이 지구를 강타할 것인지 걱정하는 차에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이 발표됐다.

역방향 선회는 개편 아닌 개악

정부 발표는 고려해오던 3개 개편안 가운데 제 1안(누진구간 확대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남은 절차는 권고안을 한전 이사회가 의결하고 산업부가 승인하는 요식 절차뿐이다. 확정된 최종안의 핵심 내용은 누진이 붙는 구간을 더 여유롭게 넓힘으로써 누진요금을 감당해야 할 가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즉, 폭염 때 1600여만 가구에 1만 원 정도, 평상시엔 1500여만 가구에 9500원 정도 전기요금을 깎아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1973년 석유파동이 계기였다. 전력설비도 부족한데 연료 가격마저 널을 뛰니 에너지 절약이 절실했을 테다. 그렇게 최초의 누진제가 3단계, 1.6배율로 설계되었다. 이후에도 누진제는 여러 차례 개편을 거듭했다. 2차 석유파동 이후엔 12단계의 구간에 19.7 배율이었던 적도 있다. 그러다 2016년, 현행 3단계 3배수 체계가 들어섰다. 0~200KWh, 201~400KWh, 401KWh 이상으로 구간을 획정하고 단계별로 KWh당 93.3원, 187.9원, 280.6원으로 각각 요금을 설정했다. 겉보기에는 누진제가 매우 심플해진 것이다. 그런데 왜 3년 만에 누진제 개편 얘기가 다시 나오고 정부가 TF팀까지 꾸려 개편안을 들고 나온 것일까.

기존 누진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언제나 있어왔다. '전기요금 폭탄'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부터, 에너지 복지 문제가 현행 누진제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비판까지 논리도 다양했다. 비싼 신형 가전제품의 전력 효율이 좋다 보니 오히려 저소득층이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1인 가구가 1인당 전력사용량이 더 많음에도 오히려 4인 가구가 높은 구간에서 비싼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과 불만은 전기요금 누진제를 지속적으로 흔들어왔다. 올여름에도 무더위가 예상되고, 전력사용량은 줄지 않을 테니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하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행위의 동기를 이해하는 것과 행위의 결과물을 수용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요컨대 발표된 정부의 누진제 개편안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식이다. 왜 그런가?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전기요금 인하'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논의해온 3개 개편안은 각기 정책 효과는 상이하지만 '총할인 추정액'을 제시하고 누구에게 얼마를 깎아 줄 수 있을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했다. 누진제에 대한 비판을 일단 바겐세일 방식으로 무마하려는 의도를 3개 개편안 시나리오가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충돌하는 개편안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는 누진제의 문제는 물론 왜곡된 현재의 전력가격체계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런 사정을 정부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산업부)는 이틀 연속 전력가격과 관련된 정책안을 발표했는데, 하나는 '누진제 개편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었다. 누진제 개편안에서는 노골적인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겨냥했고, 에너지기본계획은 원가변동 요인과 외부비용이 반영되는 '합리적 비용'으로 전기요금이 책정되어야 함을 명백히 밝혔다. 이런 방향성의 충돌이야말로 정부가 독일, 덴마크 등 선진국에 비해 과도하게 저가로 책정된 전기요금이 수요 시장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한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누진제 개편안이 개악안인 것은 그래서 더욱 명백하다. 에너지 관련 최상위 국가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의 골자를 뒤집는 요금 감면안이기 때문이다.

비단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여타 모든 상품의 가격체계를 손볼 때 가장 첫걸음은 당연히 그 상품의 '원가'가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문제는 전력 원가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기업인 한전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그런데도 전력요금을 깎아주는 누진제 개편안이 나온 것이다. 적자 한전이 현재의 왜곡된 전기요금체계를 정상화시키기는커녕 당장 올여름부터 요금 감면이라는 '한턱'을 내게 생겼다. 원가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전기요금을 개편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전이 전력생산 에너지원의 국제시세에 따라 생산비가 싸지면 흑자, 비싸지면 적자에 빠지는 경영실적을 오간 것은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를 시가로 요금체계에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기본계획이 전력의 원가 변동 요인을 반영하는 합리적 생산비용 책정이 필요하다고 짚은 이유도 거기 있다.

이번 누진제 개편안이 결여하고 있는 또 다른 비용도 있다. 발전과정에서 수반되는 환경과 보건 피해 등 외부비용이 그것이다. 현행 전기요금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외부비용을 제대로 반영한 요금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운동을 하는 모든 시민사회기구의 주장이었고 이러한 주장은 에너지기본계획에 수용되면서 정당화되었고 정식화되었다. 기후변화를 부르는 온실기체의 증가, 미세먼지 오염의 심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증가, 상시적 원전 사고 위협 등의 안전 문제에 대처할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돼야 마땅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서 부가되고 있을 뿐이다. 사회·환경·안전 등 외부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나아가 에너지전환에 수반하는 비용에까지 반영해야 할 마당에 요금을 깎아주는 데 집중한 누진제 개편안이 정향의 정책 변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이번 개편안은 기후변화의 위기 심화와 에너지 전환의 지체라는 장기비용으로 시민들에게 되돌아오게 될 우려가 크다.

누진제 개편으로 요금 인하를 시행하는 것과 요금체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장기계획이 병행 가능하다고 믿는 건 자기 기만적인 발상이고 억지다. 치킨 게임을 하듯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전력가격 정책은 필연코 충돌해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미 누진제 개편안은 값싼 전기요금을 당연시하는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정부도 이번 정권 내에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누진제가 전력 수요관리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발언들의 언로는 막히고 있다. 이것은 넘칠 정도로 충분한 잘못된 정책신호이고 시민들은 '싼 전기를 쉽게 쓸 수 있다!'는 신호로 누진제 개편안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기후변화 완화에도, 미세먼지 오염 저감에도, 에너지전환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수요관리기능 강화할 수 있게 재설계해야

매년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과 급증하는 멸종위기종의 목록은 자연의 변덕 때문이 아니다. 에너지 남용으로 인한 기후변화,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이를 막는 바른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화석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에너지체제를 햇빛과 바람 등 재생가능에너지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누진제는 애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국내 전력생산과 소비구조가 가진 에너지 안보상의 불안전성을 줄이기 위해 나온 정책이었다. 단적으로 경제적인 목적의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설계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누진제는 에너지전환을 보조하는 에너지 수요조절정책의 현실적인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가지게 됐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보자면 누진제는 이전보다 더욱 전력 에너지 다소비자들에게 고율의 요금을 부과하는 수요관리기능을 다하도록 재설계돼야 한다. 정부의 개편안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을 겨누고 있다.

원가변동비용과 외부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해 합리적 요금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수요관리 원칙이 효과적으로 적용되기 힘든 용도별 체계(가정용, 산업용, 상업용)가 계시별 요금제, 피크 요금제로 전환돼야 한다. 전기요금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건전한 요금제 담론이 형성될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누진제를 비롯한 모든 에너지 정책들이 에너지 전환을 향해 조직돼야 한다. 누진제 개편안을 백지화하고 수요관리 기능을 상실하지 않는 선에서 재개편하는 게 옳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기후변화의 바다 속에서 백화의 운명을 걸어가는 산호들은 피해자의 결백함을 주장할 수 있지만, 알고도 그 길을 걸어가는 인류에겐 면죄부가 없다. 이 무슨 비약이냐고 반문해선 안 된다. 싼 값의 전기! 그것을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맨 얼굴이기 때문이다. 싼 값으로 마음껏 쓸 수 있는 전기는 없다. 사실을 직시하고 정책 왜곡의 현실을 바로잡을 용기가 필요한 때다. 에너지전환의 길에 전기요금 정상화가 전기요금 인하일 수는 없다. 6.18 누진제 개편안은 다시 개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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