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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와 보호무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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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와 보호무역주의

[민미연 포럼]

일본이 지난 7월 4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분야인 만치 규제가 본격화하면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생산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일본은 규제품목을 더 확대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으니, 일본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엄중한 사태라고 하겠다. 이에 일본에 대한 국내 여론이 상당히 나빠지고 있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일본은 왜 갑자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했을까? 일본인들은 표면상으로는 안보상의 이유를 들고 있다. 안보에 민감한 소재들이 북한을 비롯한 적성국가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면 규제를 풀 것 같이 말을 흘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유가 일제 강점기 징용자들의 배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작년 10월에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를 징용한 일본 기업들에 대한 배상책임을 최종 확정판결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이 문제가 1965년의 한일협정에서 청구권협약을 통해 해결되었다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다시 들고나오니 답답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며 이미 지난 3월부터 일본에서는 한국 내 해당 일본 기업의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의 경우 경제보복을 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수출규제는 바로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적 사실의 합법, 불법을 둘러싼 두 나라의 정반대 견해차에서 나온 것이다. 아시아에서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1951년, 한국은 유감스럽지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전쟁 당사자로서 참가하지 못했다. 따라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나 그에 따른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1945년 이후 계속 좋지 않았던 한일관계는 냉전의 진전에 따라 한일 사이의 협력 중요성을 느낀 미국 정부의 주선에 의해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한일협정 체결 과정에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당장 돈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역사적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식민지배의 불법 문제를 얼버무린 채 넘어갔다. 그리고 '부속 청구권 협약'에 의해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받아 모든 청구권을 해소하는 것으로 결말지었다.

그 결과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한국과 합법이라는 일본의 견해 차이는 수면 아래 잠겼다. 당시 한국과 일본이 역사 문제를 이렇게 미봉한 채 적당히 넘어갔지만, 한국 측에게 이에 대한 불만이 계속 남아 있었고,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었다.

잠복했던 이 문제는 일제 강점기에 징용을 갔다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여러 피해자들이 1997년에 과거 자신들을 고용했던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미지불 임금과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냄으로써 다시 불거졌다.

이들은 일본의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고, 국내에서도 부산고등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하여 별로 승소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2012년 5월 한국의 대법원은 돌연 국내 고등법원들의 판결을 뒤엎고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반전을 가져왔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은 그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뼈아픈 것이다. 이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함으로써 일본인들에게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한일협정을 뒤집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 불법적인 식민지배의 결과인 수많은 징용피해자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배상책임도 안아야 했고 언젠가 있을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지금의 일본은 극우파 정치인인 아베 총리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이다. 아베는 지금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과거의 역사를 미화하고, 주변 국가들과 지속적으로 영토분쟁을 일으켜 온 문제의 인물이다. 또 아베 일파의 가장 큰 정치적 목적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일본을 재무장함으로써 일본을 이른바 '보통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을 다시 한번 자기 마음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제적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일본인 자신의 역사관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온다. 지금껏 조선 병합을 조선인의 자발적인 양여로, 즉 합법적인 일로 자기들 역사에 기술하고 젊은이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신성시해왔던 메이지 국가 자체에 도덕적 낙인을 찍는 결과가 된다.

또 보통국가화의 논리에도 상당한 부담이 생긴다. 남의 나라를 침공하여 식민지배하고도 지금껏 뭉개고 있다가 재무장한다는 사실을 반길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 여론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지금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이다.

그러면 한국 대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그것은 한국이 더는 1965년의 가난하고 무력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적 궁핍 속에 국민들의 지지도 별로 받지 못하고 미국의 눈치도 봐야 했다. 그래서 한일협정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력도, 군사력도 강대국들에 미치지는 못하나 다른 나라들이 함부로 할 수준이 아니다. 또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과거와 비할 바 없이 올라갔다.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우리 국민 누가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대법원은 이런 자각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해 너희들이 과거에 저지른 조선의 식민지배는 불법적인 일이며, 그에 대한 배상책임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힌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면서 대법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는 잘못된 태도로 본다. 대법원의 태도는 한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었고 한일관계의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의 한일갈등은 당장은 여러 어려움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최첨단 소재를 대체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일본의 소재나 부품에 대한 한국산업의 의존도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한국이 당장 망하기나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일본의 경제규제도 어느 선을 넘을 수는 없다.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가 지나쳐서 미국이나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지고 세계 IT산업이 타격을 받게 되면 부정적인 국제 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압력을 가하거나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미국 정부에 매달리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본의 공격이 전방위적으로 계속되고 미국도 나 몰라라 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대응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으로 한국은 경제적인 손실을 각오하고, 중국이나 북한에 대한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뛰쳐나간다고 선언하면 된다. 지금 일각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한일군사정보공유협정 파기 같은 것이 단초가 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이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따라서 지금과 같은 최악의 국면을 지나 양측이 냉정을 되찾으면, 서로 타협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이미 '1+1안'(일본기업과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한국기업들의 분담금으로 배상금 지불)을 내놓았고, 참의원 선거가 끝나자 일본 측에서도 타협하려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도 명분 있는 퇴각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할 타협은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과거의 한국이 아니며 존중해야 하는 상대라는 것, 식민지배는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상황에서 무턱대고 정부를 비난하고 당장 일본과 만나 무릎을 꿇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내부에서 총질해대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할 태도이다. 외교 문제에서는 국민 여론이 분열되어서는 안 되고, 정치권에서도 생각은 다르더라도 여나 야나 협력하여 힘을 모아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부가 힘을 가지고 교섭에 임할 수 있다.

이번의 한일갈등은 어떤 면에서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행운이다. 물론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에서이지만. 지금까지 20년 동안 한국인은 신자유주의에 세뇌되어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좋고 이상적인 것이며 또 언제까지 계속될 일상적인 상태로 여겼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국경제에 대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은 신자유주의가 저물고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에도 한국인들은 그것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자유무역이 시한부의 환상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세계경제가 점점 침체 국면으로 빠지는 상황에서, 또 지금 닥치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자유무역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제부터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은 뻔하다. 자유무역주의를 이끌던 미국이 그것을 내버리고 보호무역으로 갈아탔는데 자유무역주의가 계속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넋 놓지 말고 이번 기회에 경제의 자립성에 대해 철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 체질로 보호무역주의 시대를 헤치고 나갈 수 있을지. 수출에만 의존하는 한국경제가 수출이 안 될 경우 과연 생존할 방법이 있을지. 20%대에 불과한 지금의 식량 자급률로 지구적인 식량위기에 과연 대처할 수 있을지도. 나아가 지금까지 내팽개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까지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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