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과 글을 통해 국방비 동결을 주장해왔다. 댓글을 보면 동의하는 사람들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공론화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을 올해보다 8% 늘어난 50조4330억원으로 편성했다.
최근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처음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소식을 접하고 뇌리를 스친 단어가 '예방경제전쟁'이었다. '예방전쟁'은 어떤 나라나 국가군이 앞으로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고 여기곤 이들을 상대로 먼저 공격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무력을 쓴 것은 아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적 선공을 선택했다. 또한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첨단산업을 겨냥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들로 해석된다. 그래서 '예방경제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본의 조치가 얼마나 무모하고 부당한 것인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과 언론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와중에 국방비 동결을 또다시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황당한 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국방비 동결에 '극일(克日)'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공론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국방비를 써오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미 한국의 군사력은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셋째, 내년부터 문재인 대통령 마지막 임기인 2022년까지 국방비를 동결해도 상당한 수준의 군비증강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들 세 가지에 대해서는 <한겨례 21>에 기고한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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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군비경쟁과 일본의 우익
그렇다면 국방비 동결에 극일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주장은 무슨 근거로 하는 것일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대규모 국방비 증액이 남북관계 및 한반도 평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 우익을 돕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은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 및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올해 국방비를 8.2% 늘린 데 이어 내년에도 대규모 증액을 예고하고 있다.
남한의 국방비가 크게 높아지면서 북한의 대남 비난도 높아져왔다. 7월 11일에 나온 북한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이 담화에서 남한의 F-35A 도입을 비난하면서 이는 "상대방을 겨냥한 무력증강을 전면 중지할 데 대하여 명백히 규제한 '판문점선언 군사분야 이행합의서'에 정면도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자기 동족을 해칠 살인 무기를 끌어다 놓는데 순응하는 것이 남조선 당국자가 떠들어대는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창안품인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일 국무회의에서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을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발언한 것을 비꼰 것이다.
북한의 비난이 거칠고도 과도하지만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는 힘이 아니라 이해와 신뢰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 울림은 작을 수밖에 없다. 정작 문재인 정부는 "우리는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는 말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내년도 국방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내세운 목표도 "힘으로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군대 건설"이다.
남북한이 군비경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극일의 최대 원천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요원해진다. 'F-35 등 첨단무기 도입은 일본 등 주변국을 상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핵무력은 남조선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는 북한의 주장만큼이나 공허한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F-35 도입 배경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시 그 명령권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제거한다는 '참수작전'이 똬리를 틀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이를 계승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는 없다. 또한 이미 도입을 결정한 사업을 취소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기 수출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총 40대를 도입하기로 한 F-35는 이제 4대가 들어왔을 뿐이다. 앞으로 '보이지 않는 전투기'가 도입될 때마다 남북한의 갈등이 가시화될 공산이 크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정권이 정기적으로 바뀐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국방비 동결은 남북관계의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남북한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까지는 아니더라도 군비증강을 완화해 그 토대를 닦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남북한의 군비경쟁을 종식하고 화해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일본 우익은 더 이상 한반도의 안보 불안과 남북한의 적대관계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3년간 국방비 동결하면 또 한 가지는 국방비 동결을 통해 절감한 예산을 경제와 민생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앞으로 3년간 국방비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면 정부의 당초 계획과 비교할 때 약 15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10년 동안 동결한다면 약 200조 원을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절약한 예산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과로를 호소하고 있는 집배원과 소방대원 등 공공 부문 일자리 늘리기, 최저임금 인상 보존,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다. 복지와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필요성이 더욱 절박해진 수입대체 산업 육성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득증대와 내수 진작이 이뤄지면 우리 경제도 그만큼 건실해질 수 있다.
일본의 도발로 시작된 경제전쟁의 승패는 결국 우리 경제의 건강성에 달려 있다. 미중무역전쟁에 한일경제전쟁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떨어질 것이다. 장기전이 될수록 부수적 피해자도 늘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내수 진작을 통해 무역의존도를 줄이고 민생과 복지를 증진하는 데에 더욱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방비를 동결해 절감하는 예산은 이를 위한 소중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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