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건 국무총리와 부안군민 사이의 전격적인 대화 합의로 부안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가운데, 청와대에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 나와 정부의 대화 의지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총리실과 청와대 비서실 사이의 '갈등설'까지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문희상 비서실장, "정부 백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은 4일 "정부는 (위도)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백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이제 대화의 문이 열렸고, 학생들 등교 결정이라는 첫 결실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유인태 정무수석도 "일본의 경우 소각장 한 곳을 건설하는 데도 주민 설득을 위해 6~8년이 걸린다"면서 "몇년이 걸리더라도 참여정부가 끝날 때까지 주민 동의만 얻어내면 대성공"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일련의 발언은 지난 4일 경향신문 창간 57주년을 맞아 문희상 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 이병완 홍보수석, 조윤제 경제보좌관 등 청와대 참모 6명이 경향신문 부장단과 '국정현안 토론회'를 가진 자리에서 나왔다.
이런 청와대 비서실의 잇따른 발언은 고건 총리가 부안군민들에게 3일 '조건 없는 대화'를 하기로 약속한 바로 다음날 나온 얘기라서 일각에서 총리실과 청와대간 갈등설이 제기되고 있다. 프레시안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총리실의 입장은 이와 전혀 다르다.
***고건 총리, "군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아니냐"**
지난 3일 고건 총리와 만났던 부안대책위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고건 총리는 이날 '전제 조건 없는 대화'를 약속하는 자리에서 "군민들이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아니냐"면서 "이 문제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백지화'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이날 참석자들에 따르면, 총리실은 이번에 구성된 대화 기구에서 백지화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의제로 놓고 대화할 수 있도록 하고, 대화기구에서 백지화로 의견이 모아지면 그것도 수용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건총리는 이날 '5인 대화기구'를 구성키로 합의하면서, 그 구성을 정부측 인사 2명, 부안대책위측 인사 2명, 그리고 위도 핵폐기장 반대 입장을 밝혀온 최열 환경운동연합이 추천하는 중재인 1인 등으로 하기로 해 사실상 백지화를 위한 수순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강한 관측을 낳았다.
따라서 4일 문희상 비서실장 등의 발언은 이런 고건 총리와 총리실의 입장뿐만 아니라 부안대책위 등의 인식과도 전혀 다른 것이어서, 해결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란 게 일반적 분석이다.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이같은 총리실과 청와대간 '엇박자'가 최근 최낙정 해양수산부장관 해임과정에 고건 총리가 강력히 최장관 해임설을 건의해 관철시키는 등 노무현대통령의 민주당 탈당후 총리실의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총리실의 백지화 의지가 관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책위, "정부의 속내 무어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희상 비서실장 등의 발언을 접한 대책위는 6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편에서는 대화하자고 얘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상 강행' 방침을 주장하는 것은 대화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름없다"면서 "대화를 약속해 놓고 바로 온갖 행정 지원책을 강행했던 김두관 행자장관이나 윤덕홍 교육 부총리 등의 그간 모습과 뭐가 다르냐"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문 비서실장의 발언 때문에 정부의 대화 의지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지만, 일단 이번 주로 예정된 실무 협상에는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문 비서실장이나 윤 수석의 발언처럼, 정부가 시간을 끌면서 부안군민들을 회유하고 핵폐기장을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언제든지 대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안군민, "등교 거부 철회"로 대화 의지 보여**
한편 이같은 총리실-청와대간 갈등 양상에도 불구하고 부안군민들은 고건 총리의 약속을 믿고 4일 "등교 거부 철회"를 선언했다.
4일 부안군 학교운영위원장단과 부안대책위는 학생들의 등교 거부 철회를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는 부안 지역 47개 학교중 28개 학교운영위원단 총 32명이 참가했다. 이 결정에 따라 학생들은 6일부터 부안 지역 47개 초·중·고교가 일제히 정상 수업을 시작했다.
부안대책위와 학교운영위원장단은 회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등교거부를 정리하고 학생들의 면학분위기 조성에 온 군민이 힘을 모을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등교거부 투쟁의 성과로 정부와 대화가 모색되고 있고, 교장단과 교사들이 '핵폐기장 백지화 투쟁에 함께 뜻을 모아 동참하겠으니 학생들은 학교로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철회를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대책위는 그러나 "정부가 앞으로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고, 핵폐기장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학부모, 학생, 교사를 포함한 2차 등교 거부를 벌여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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