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 잭 니콜슨이 주연한 <어퓨굿맨>(A few good man)이란 영화가 있다. 꽤 지난 영화지만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왕따 신병에 대한 가혹행위로 유죄를 선고 받은 두 해병 병사 중 후임이 불평을 한다.
"우리는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왜.."
그러자 선임 병사가 이렇게 타이른다.
"우리는 약한 사람을 보호해야 하는 본분을 지키지 못했어."
지금 MBC 계약직 아나운서 문제 자체는 이 영화의 상황과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서 내게 떠오르는 것은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이다.
지난 촛불항쟁에 이어 2017년 겨울까지 이어진 KBS, MBC 두 공영방송 노조의 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을 지지 지원하는 시민사회 대책기구의 일원으로서 회의와 집회에 참석하고 파업 현장을 지지 방문하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하면서 내가 이해했던, 동의했던 파업의 의미, 취지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두말할 것도 없이 모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세상이고, 그 세상을 실현하는 데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위해 싸우고 탄압 받는 노조원, 방송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투쟁에 동참하지 않았다(못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세상이 정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본분은 해병대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정상화를 위해 싸우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목표요 공감대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MBC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바라던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아나운서들은 파업대체인력으로 채용됐던 것이 아니다. (파업대체인력으로 채용된 이들은 따로 있다. 정작 이들이야말로 지금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혹시 이들은 애초부터 '정규직'인 파업대체인력으로 채용돼서 전혀 못 건드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계약직 아나운서들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존경하는 최승호 사장은 이들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비록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파업대체인력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었을지라도) 애당초 파업대체인력으로 채용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방송 경영진과 노조는 이들이 일부 대중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도에 넘치는 비난, 조롱에 대해서는 분명히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더구나 언론이 아닌가.
법원의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인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창고 같은 별도 사무실에 모아놓고 아무 집기도 주지 않고, 매일매일 아무 일도 없이 앉혀놓는 가혹행위를 하는 MBC라니. 나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방송사 노조의 파업을 지지 지원했던 시민사회가 작금의 사태에 경악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처사가 (자발적으로 파업대체에 동의하고 채용된 소위 시용직원들과 달리)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업대체에 동원당했던 약자로서의 신입 아나운서들에 대한 처벌 또는 보복으로 비친다는 점 때문이다.
설령 일선 조합원들 중에 지난 정권에서 당한 탄압과 가혹행위 등에 대한 즉자적 감정적 반감을 잘못해 이들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쏟는 분위기가 있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경영진과 노조는 이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기대하고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엇그제 올라왔다는 손정은 아나운서의 글을 뒤늦게 읽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안타까웠던 것은, 평소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방송을 통해 접해왔던 손 아나운서의 모습과 달리, 앞뒤가 맞지 않는 서투른 논리와 견강부회가 뒤섞인 이 글을 도대체 왜 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자발적으로? 어떤 섣부른 의무감이나 강제가 개입해서?
개인적 글이긴 하지만 아마도 현재 MBC 내에서, 방송정상화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분들 중 어느 정도는 공통된 문제 의식과 인식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서로의 이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대화를 시도하는 의미에서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문제의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제외하고 제작거부에 참여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신분, 조건 등이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이 감당했어야 할 부담과, 방송사의 얼굴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로 더 큰 주목과 회사 측의 압박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감당했어야 할 부담이 비교 가능한 동급이었다는 주장은, 그런 사정을 더 잘 알 사람에게서 듣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억지로 들린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배포한 홍보물에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지시, 언행 등의 일상적 사례를 대표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꼭 무슨 엄청난 폭력만이 괴롭힘의 대표 사례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아가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직장내 갑질 중에 M방송 계약직 아나운서들이 겪는 괴롭힘이 예컨대 평균 이하라고 가정한다고 한들, 그것이 이들의 고용노동청 진정이 소위 '오버'라고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될까?
더구나 최소한 나의 판단력도 우리 사회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 MBC 사례는 평균을 넘어 대표적 사례 중 하나로 거론하기에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시사인>에 이 사안을 다룬 기사를 읽어봤다.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면 다시 또 국면이 바뀌어 언제고 누군가가 회사를 흔들려고 하는 데 선례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 MBC 노조 조합원은 이처럼 깊은 갈등의 골을 ‘공포’로 정의했다. 정권이 바뀌고 경영진이 바뀌면 회사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9년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구체제'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노조를 유지할 수 없게 할 방법으로 계약직을 뽑았다. 사람 뽑는 걸로 장난 친 거다. 당사자들은 안타깝지만, 이들을 받아들이면 경영권을 쥔 사람이 또다시 회사를 흔들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 될까. 앞으로 모든 직종을 이런 식으로 뽑을 거다."
어쩌면 이 내용이, 외부에서 볼 때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MBC의 태도를 그나마 가장 이해할 수 있게(동의한다는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말해주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기왕에 방송을 포함한 사회적 시스템이 왜곡되고 파괴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문제와, 이들 아나운서의 문제를 동일시해서 연결시키는 것은 궁색한 논리다. 손 아나운서는 이들 후배들의 직장내 괴롭힘 진정을 '언론플레이'라고 규정했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 듣기에 부적절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이다. 본인들이 입장을 밝히는 것은 본인들의 자유다. 이를 '언론 플레이'로 규정하는 것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표출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손 아나운서의 글에는 감정의 과잉 표출이 계속된다.
"시대의 아픔이 있고, 각자의 입장이 있고,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을 터인데, 너희가 사인한 비정규직 계약서와 진정으로 약자의 터전에 선 자들에 대한 돌아봄은 사라지고, 너희의 '우리를 정규직화 시키라'는 목소리만 크고 높구나. (...) 너희의 고통을 직장괴롭힘의 대명사로 만들기에는 실제 이 법이 보호해야할 대상이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직장내 괴롭힘'은 직장의 우선 순위를 두는 법이 아니다. 큰 회사의 작은 괴롭힘과 작은 회사의 큰 괴롭힘은 모두 '괴롭힘'일 뿐이다. 이 대목은 우리가 흔히 7~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군사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일면으로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아간다'고 자조했던, 그 역사적 경험의 반성을 뼈저리게 상기시킨다.
백보 양보해서,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고통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에는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판단, 표현은 제3자가 해야 한다. '정규직 아나운서'로 '노조'의 보호를 받고 '회사'의 보호를 받고 있는 손 아나운서가 할 말은 아니다. 이토록 날을 세우고 만약 1심에서 회사가 패소하면, 진심으로 "더 많이 대화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도 너무 많은 생채기는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MBC 경영진과 노조, 조합원들의 진지한 고민이, 그리고 언론 관련된 시민사회 내 제단체, 나아가 전체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중재가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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