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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50대의 '원치 않는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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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50대의 '원치 않는 동거'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청년 실업자, 눈높이를 낮추라고요?

외출 준비에 바쁜 아침 시간인데, 오늘 아침 트위터에 올라온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의 글이 못내 아른거려 외출 준비를 미루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바쁜 손을 놀립니다.

남윤인순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공개된 공간에 올린 글이니,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다시 옮겨 씁니다.

"오늘 딸애가 대학 졸업했어요. 이제 부모가 해야 할 기본 의무는 한 듯 싶은데…실업자 대열에 들어선 딸애가 안쓰럽네요. 전국민 고용보험제 절실해요!"-남윤인순

"축하합니다. 저도 지난해 이맘 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대졸자들의 실업 문제는 더욱 절박합니다. 다행히 취업해도 저임에 고강도 노동이라 사회적 기업이 절실합니다." -나의 댓글


140자 이내의 짧은 댓글로 공감의 뜻과 제 심정을 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다른 엄마들 심정도 비슷할 것 입니다. 20대 중반 젊은이들에게 전국민 고용 보험을 비롯해 안정적인 직장이 너무도 절실한 때입니다.

저 역시 지난 1년 동안 큰 아이 취업과 관련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해 1월, 큰 애가 한 회사의 필기 시험과 면접 등 4차례에 걸친 관문을 통과하고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바로 그날, 회사 측으로부터 '채용 무기한 보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아연실색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나 저나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취업 세계에 대해 참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어렵더군요. 그 무렵에 <프레시안>에 쓴 칼럼 글입니다.

"(…) 최근 정부가 적선처럼 벌이는 행정 인턴은 그들에게 못할 짓일 수밖에요. 그 젊은이들이 문서나 복사하고 시간 때우며 빈둥대려고 죽어라 토플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뭘로 보고…. 직장을 달라는 것이지, 용돈 주듯 적선을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어 떳떳이 자립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한 것이지, 정부로부터 몇 달 용돈이나 얻어 쓰려고 스펙 높이며 공부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 사업에 명운을 걸지만 대학 진학률 83퍼센트, 대졸 실업자가 지천이고 청년 실업자가 300만 명인데 대운하를 건설한다고 해도 청년 인력이 다 건설 현장으로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잘못하다간 건설 현장에서 아버지 세대가 노동하여 청년 실업자들이 아버지 세대에 얹혀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운다 해도 그들의 경우 받은 월급을 본국으로 송금하느라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 활성화는커녕 건설사 좋은 일만 시키게 될 뿐 경기 부양과 무관해지고 젊은이들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4대강 개발 예산을 교육과 연구 사업에 돌려 재투자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육 복지로 이름난 스웨덴은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금융 위기를 거쳤으나 교육과 연구에 집중적인 투자로 국민 소득 4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연구와 교육에 국가 명운이 달린 것입니다. 일제고사로 교육이 획일화되는 지금 이대로 가다간 한국 교육과 한국 경제는 동반 몰락할 것입니다. 한국 경제 불황과 청년 실업을 겪는 한국 부모들의 속은 두서없이 타들어갑니다."


비단 저와 남윤인순 대표뿐만이 아니라, 20대 중반의 자녀를 둔 이 땅의 엄마들 대부분은 속이 타들어 갈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친한 친구 두 명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모두 자녀 '취업 축하 턱'이었습니다. 요즘은 엄마들이 자녀가 취업하면 '취업 턱'을 내러 식당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곤 합니다. 물론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해도 엄마들이 식사 대접을 해왔지요. 대한민국 국민에게 명문대 입학과 취업은 통과하기 어려운 '인생 과업'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겁니다.

젊은이들이 문서나 복사하고 시간 때우며 빈둥대려고 죽어라 토플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되어 떳떳이 자립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한 것이지, 정부로부터 몇 달 용돈이나 얻어 쓰려고 스펙 높이며 공부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뉴시스

오늘은 저희 집 작은 애가 새로운 대학에 학적을 옮겨 맞이하는 첫 오리엔테이션 날 입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곧이어 발부된 등록금 고지서는 만만치 않더군요. 며칠 전 나는 작은 애 한 학기 등록금으로 입학금을 포함해 621만3000원을 냈습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아이는 대학에서 배우는 것도 없다며 대학을 안가겠다고 강변했지만, 부모인 나는 대학 졸업을 고집했습니다. 비록 그 애들이 대학에서 변변히 배우는 것이 없고, 몇 년 후 맞이할 졸업식 날이 곧 실업자로 출발하는 날이 된다고 해도, 한국의 엄마들은 이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생활비의 반 이상이 들어가는 사교육비 지출도 멈추지 못합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사람 대접 받기 어려운 세상이 점점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의 장래가 너무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남윤인순 대표가 트위터에 남긴 글처럼, 대학 졸업장을 쥐어주는 것이 부모의 마지막 도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말끝마다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미국에 비해 싸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보다 저렴합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바로는, 주변에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한 학생도 없었고, 가난해도 장학금 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생의 수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았다는 겁니다. 한국처럼 자녀 등록금 마련 때문에 목을 매 자살하는 부모들은 절대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 무슨 비교가 가능합니까? 더구나 왜 하필 등록금이 비싼 미국과 비교 합니까? 핀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한국과 두 나라는 조세 부담률이 다르다고 하지만, 핀란드나 한국이나 교육비 총 비중은 국민총생산의 7퍼센트 정도로 비슷합니다. 한국은 이를 공교육에서 4.9퍼센트 정도 낮게 부담하고, 2.1퍼센트를 사적 영역에서 지출하기에 달라 보이는 것뿐입니다. 결국 학부모로서 지출하는 교육비는 거의 비슷한데, 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낮은 것이 한국의 현실 아니었던가요?

▲ 젊은이들이 눈이 높아서 취업을 못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젊은이 앞에는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비정규직인 '비호감 3종 세트' 일자리가 바늘구멍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레시안(허환주)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꿈을 펼칠 공간도 없이 실업자로 직행해도, 대부분 유권자들은 '잘살게 해 주겠다'며 '747'을 외친 대통령의 말을 아직 믿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과 돈'을 국민 제일의 가치로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은, 속이 타들어가는 이 땅의 엄마들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하려나요? 대통령 말대로, 많은 대학생들이 '스펙'을 높이고 자격증을 따고 내가 무조건 남보다 우수하면 취업이 잘 될 것 같아, 젊은 혈기에 데이트도 미루며 공부에 매달려왔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눈이 높아서 취업을 못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젊은이 앞에는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비정규직인 '비호감 3종 세트' 일자리가 바늘구멍처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의 엄마들은 세종시가 뭔지, 왜들 그러는지, 박근혜 씨와 이 대통령 중 누구 말이 맞는지,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시끌벅적한 동계 올림픽 금메달에 눈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오직 40~50대 엄마와 20대 실업자 자녀와의 어색하고 미안하고 불안한, 원치 않는 24시간 동거 기간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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